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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Jun 14. 2023

[에세이]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누군가의 그늘을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는.

부끄럽지만 코다의 의미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의 인생을 말하는 단어의 뜻조차 몇 년 전까지 나에게는 생소한 말이었다.

CODA는 children of deaf adults의 약자로 이 책은 코다인 이길보라 작가의 책이다.


지난 6월 초 축구를 좋아하는 작은 아이를 위해 전주로 축구 나들이를 떠났다.

이 날 전북과 울산의 경기가 있었기에 아이는 아이대로 기대에 부풀어 있었고, 나는 내내 궁금했던 전주의 동네 서점을 들여다볼 생각에 설렜다.

축구 경기는 오후 늦은 시간이었기에, 우리는 먼저 전주 시내로 나가 카프카의 서재라는 서점을 들렀다.

서점 안의 책들과 카세트테이프, LP음반들을 구경하며 책산책을 하던 중, 나는 이길보라 감독의 책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이라는 책의 제목에

시선을 빼앗겼다. 아니 날카로운 제목에 살짝 베인 기분이었다.


6월은 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는 때라, (그렇지 않은 때가 있는가 싶기도 하지만,,) 최대한 가벼운 책을 사고 싶었다.

아름다운 풍경처럼 볼 수록 마음이 비워지는 책, 문장이 길지도 어렵지도 않으며 술술 읽히는 에세이나 단편 소설집을 사고 싶었는데,

어쩐 일인지 이길보라 감독의, 읽고 나면, 마음이 무거워질 수도 있는 그 책이 내내 눈에 밟혀

결국 집어 들고 와 버렸다. (네 물론 계산하고요;;)


나는 일하면서 사실 다양한 그리고 많은 사람을 만나는 편이다. 지금 있는 학교는 비교적 비슷한 가정환경에 또 비슷한 직장과 비슷한 경제 수준을 가진 아이들이 많지만,

이렇게 비슷한 아이들이 많을수록 나는 안다. 이런 비슷한 환경이 아닌 사람은 더욱 소외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는 것을

내 딴에는 그런 아이들까지 배려하고, 혹여나 그들이 느낄 어려움을 최대한 공감하려 노력했는데, 이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고통에 공감한다는 것은 과연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한 것인가. 하는 생각에 머뭇거리게 된다.


책에서 이길보라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의 장애를 전면에 드러냈고, 그래서 때로는 분에 넘치는 칭찬을 또는 도움을 받기도 했다고 하지만 더 많은 경우 동정과 차별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쉽게 농인의 자녀라 어려웠던 점은 없었냐고 묻고, 좋았던 점을 말할 때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며 비장애인들의 편협함을 무심하게 고발한다.

장애인의 아이이니까 불쌍하고 어렵게 컸을 거라는 단순한 편견에 근거한 납작한 공감이 장애부모를 돌보며 성장하는 그녀에게 뾰족한 가시를 돋게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부장님이 생각났다. 아이들은 우리 아이들보다 약간 컸지만, 고작해야 초등학생이었는데, 부장님은 오랜 고민 끝에 사표를 내고 캐나다로의 이민을 선택하셨다. 그냥 여기에서 지내지 그러냐는 말에, 사람들이 나를 우리 아이들을 불쌍하게 보는 것에 지쳤다고, 우리가 남들보다 슬픈 일을 겪기는 했지만 우리 가정에는 그래도 남은 행복이 많은데 이곳에서는 뭔가 불쌍한 아이와 여자가 되는 것만 같아 아무런 편견이 없는, 너희 아버지는 어디 계시냐고 묻지 않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처럼 우리는 무심코 타인의 그늘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것 같지만, 온전한 이해 없는 공감과 위로는 오히려 공허함만 낳는 것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불평등과 무심한 차별의 대상이 장애인에서 성소수자, 미등록 이주아동, 재일조선인, 영케어러등 사회의 변두리에서 고통을 이해받지도 진심 어린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는 우리의 주변인들에게로 확대된다.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생각하게 된다.


타인의 그늘을 대할 때, 마음 깊은 곳에서 그늘에 대한 편견이 판단을 지배하는 것 같다. 나보다 어려운 상황의 사람에게 우리는 쉽게 위로를 던지고 동정을 보낸다. 그러나 그러한 무심한 편견이 그늘을 더욱 짙게 만든 것은 아닌가. 그러나 그러한 그늘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보는 풍경은 우리와 다름만 있을 뿐 우열은 없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늘 없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 모두는 다른 명도와 채도의 그늘을 안고 산다. 때로는 그런 그늘 밑에서 누군가가 내민 손을 잡고 싶어지는 때가 있고 그런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가치 있는 인연이 된다. 타인의 그늘에 손을 내밀 때 편견 없는 내가 되기를 바란다. 그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도움을 알아차리며 돌봄을 나누고 서로를 부담스럽지 않게 배려하며 그렇게 서로가 성숙해지는 경험을 나누는 삶의 가치를 만들고 싶다.


이슬아 작가의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로는 안 될 것 같을 때마다 책을 읽는다. 엄청 자주 읽는다는 얘기다. 그러고 나면 나는 미세하게 새로워진다 “

내가 이길보라 작가의 책을 골라든 이유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가. 어쩌면 영원히 그렇다는 대답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조금 그런 사람이 되어가고 있나 싶다가도 이내 부족함만이 눈에 띄는 듯하다. 그리고 언제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래도 이 책을 읽기 전보다는 미세하게 새로워졌다 믿는다. 미세하게 새로워진 세상에서 단순하고 납작하게만 가벼이 공감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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