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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May 09. 2023

[에세이]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정부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차로 30분 정도 나가면 산림욕장이 있었다.

당시에는 숙소나 수영장 캠핑장 등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그야말로 산책만을 위한 산림욕장이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그래서 에너지 넘치는 아들 둘의 기운을 빼기에는 최적이었던

우리 가족의 사랑을 받던 나들이 장소였다.


그때 간단한 다과 및 젤리 등등을 들고 산림욕장을 거닐며,, 아니 애들을 뒤쫓으며, 아주 많은 벌레들을 만났다.

대부분은 풍뎅이 종류였는데, 지금은 사실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날, 나무에 앉아 있던 위엄도 가득한 그 특유의 뿔을 뽐내던 사슴벌레를 만났다.

우리는 나뭇가지로 살살 유인해 우리 벤치로 데려와 사진도 찍고 관찰도 하고

그러다 나는 동생에게 사진을 전송하며 이 기쁨과 설렘을 함께 전달했다.

"이 사슴벌레 진짜 멋지지 않니?"

돌아온 답은

"새끼손톱만 한 벌레만 봐도 소리 지르며 도망가던 언니가 벌레가 멋있다고????"

그렇다. 나는 원래 벌레를 지독히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들 둘을 낳아 기르다 보니 이렇게 벌레를 보고 멋지다는 느낌을 갖게 되다니.....

그래서 이 책의 제목만 보고도 나는 바로 공감할 수 있었다.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 나 그거 알 거 같아


"그런데 사람들이 '벌레'라고 할 때는 징그럽다는 뉘앙스도 숨어 있는 것 같다. 물론 내게는 벌레가 그렇게 느껴지지 않지만 그것이 벌레가 예쁘거나 감동적이라는 뜻도 아니다. 벌레는 내 곁에 늘 공기처럼 머무르고 있어서 호불호 자체가 없다. 내게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은 그런 기분인 것 같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은 나를 얼마나 성장시키는가. 얼마 전 티브이에서 정신가 의사가 부부간의 문제를 상담하는 사람에게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서로를 성장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타인을 또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은 내 마음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사랑은 이렇게 나를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이 책의 작가 역시 벌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40이 다 된 나이에 평소 관심 있었던 곤충 공부를 시작한다. 무려 영문학도였던 대학의 전공에서 계열을 바꾼 곤충학으로의 전환이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류하는 선택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의 진심을 전했을테고 또 그로 인해 망설여졌겠지만그런 것을 뛰어넘는 것이 사랑 아니겠는가. 이렇게 사랑은 무모하고도 위험하면서도 대담하다.

 작가 역시 몇 번이나 그만두고픈 마음을 뛰어넘고, 논문을 쓰고 학위를 받고 끊임없이 곤충을 찾아 나서고 이를 연구하는 삶을 계속해서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곤충들에 대한 애꿎은 오해들을 풀기 위해 대중서도 출판하고 그리하여 나 같은 벌레를 단순히 생긴 것만으로 혐오하고 무서워했던 평범한 사람들에게 벌레의 세계를 열어준다.


엊그제 긴 연휴에 가족들이 한 가지씩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시간을 채웠다. 작은 아이가 좋아하는 축구를 보러 무려 전주까지 달려가줬고, 남편이 좋아하는 와인과 소고기로 풍요로운 저녁 시간도 보냈다. 중학생인 큰 아이는 어린이날 선물을 고른다며 인터넷 쇼핑을,,,,,,,,할말하않입니다. 이제 내 차례! 모두가 두려워하는 나의 취미인 등산! 을 다녀왔다. 가까운 빈계산은 적절한 난이도와 정상에서의 풍경이 아름다워 내가 사랑하는 산인데 등산을 해치우려는 아들내미들 덕분에 초고속으로 올라갔다 왔다.

오르내리던 길에 작은 아들이 발견한 길 잃은 풍뎅이를 보기도 하고 아기 대벌레를 만나기도 했다. 어찌나 가느다란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다리로 걸어가는 대벌레를 네 명이 머리를 맞대 관찰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엊그제 본 이 책의 삽화들 때문에 벌레를 멀리 서서 보지 않고 이름을 술술 말하는 나에게 아들들이 어쩐 일인가 하는 눈빛을 보내 이 책을 소개했다. 이 책에 보면, 이런 벌레들이 이렇게 생긴 건 적은 뇌의 용량으로 살아가기 위한 어쩌고 저쩌고~~ 나의 책수다를 가만히 듣던 큰아들이

"엄마 책 다 읽었어?  나도 봐도 돼?" 하며 나를 본다. 뭐지 이 기적은? 당연하지! 물론이지! 집에 가면 당장 줄게!


물론 아직 다 읽은 것 같지는 않다. 뭐 시작 조금 하고 덮을 수도 있겠지만, 벌레를 사랑하는 마음에 관심을 기울였더니 나에게 주어진 작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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