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아이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낳았다고 저작권자는 아니니까. 아이인생의 저작권자는 스스로가 되길 바라며

by 주연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아이를 낳았을 때인 것 같다. 막 태어난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열 달간 기다려온 생명을 품에 안았다는 벅참과 처음 아이를 만나는 생경함. 아직 회복하지 못한 몸으로도 생의 신비를 감탄했더랬다. 그때, 아이의 삶을 지켜주고 싶다는, 누구보다도 잘 키워내고 싶다는 마음 역시 한 켠에 단단하게 자리하게 되었다.


그러던 아이들이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중학교 교사로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니 내 안에는 바람직한 중학생의 기준 같은 것들이 자리 잡혀 갔다. 그러나 내가 낳은 아들들은 내 안의 기준에 때로는 넘치고 때로는 모자랐다. 넘치는 부분이야 흘려버릴 수 있었지만 모자라는 부분들은 순간순간 나에게 바로잡아주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나 역시 내가 세운 나만의 바람직한 중학생의 성장을 돕기 위해 나는 좋은 엄마가 되어야 했다. 내가 지켜본 잘 자란 아이들을 대체적으로 좋은 부모님 아래 성장했기에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나부터 좋은 부모가 되어야 했다. 과도한 입시 경쟁으로 애들을 내몰지 않기. 학원스케줄로 지나치게 아이의 기운을 뺏지 않기. 부모 역시 사회적 흐름에 관심을 가지고 대화하기. 끊임없이 읽고 쓰기. 등등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나의 노력 역시 녹록지 않았다.


때로는 퇴근 후 지친 몸과 맘으로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쉬고 싶을 때에도 아이들을 살피고 함께 책을 읽거나 공부를 도와주려고 했다. 또 신체 활동은 필수적이니까 힘든 몸을 이끌고 놀이터로 동네 공원으로 나가 아이들의 놀이 에너지를 충전시키려 했다. 이렇듯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노력했는데 노력이 더해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의 행동 결과에 더 연연하게 되었다.


영어 책을 이렇게 읽어줬는데 아웃풋이 없는 모습을 보며 의아해하기도 하고, 어렸을 때부터 독서환경 조성에 참 많이 애썼는데 과목 중 국어를 제일 싫어하는 모습을 보게 되어 실망하게도 되었다. 또 신체 활동을 위해 노력했지만 한 명은 신체 활동만을 하고 한 명은 신체 활동을 전혀 하기 싫어하는 그런 극단적인 다른 모습을 보며 나는 나의 투입과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듯한 허무함을 만나게 되었다.


특히나 중학생이 되자 아이들은 삶의 궤적을 공유하기보다는 자기들만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했고 그것이 당연함을 알면서도 못내 서운해지기도 했다. 내가 얼마나 공을 들여 너희들을 키우고 있는데 하는 못난 생각이 불쑥불쑥 들어 나를 빚을 받으러 독촉하러 온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아이들을 낳아 키우고 있지만 사실 아이들의 인생은 스스로 살아내야 하는 것인데 어쩌면 낳았다는 이유로 내가 아이들의 원저작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나 스스로의 의지로 육아를 잘하기 위해 노력했으면서 나는 성장한 아이들을 보람의 결실로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이 인생은 낳은 내가 아닌 직접 살아가는 아이 스스로가 원저작자가 되어야 마땅한 것인데 말이다.


이런 결심에도 때때로, 아니 자주 나는 아이들의 모습에 실망하게 된다. 책을 많이 읽게 하려고 집의 텔레비전도 치우고 거실 전면에 책장을 들여 책과 가까운 환경을 만들기도 했지만 현재의 독서량은 참담한 수준이다. 또 바른생활 습관 형성을 목표로 일상의 루틴을 만들려 노력했는데 방을 들여다보면 아무렇게나 형편없이 쓰레기를 버려두는 기본적인 생활 습관도 잘 갖춰지지 못한 모습들을 본다. 이렇듯 내 눈에는 모자라고 부족해 보이며 내 노력의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하지만, 아이들 스스로는 내 노력과 시간을 받아먹고 내 기준과는 상관없이 자기의 삶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한 발 한 발 개척해 나가고 있음을 받아들여야겠다.


공부만 하는 것보다는 운동과 공부를 병행해야 효과가 높은 것 같다는 깨달음을 크게 앓고 난 뒤 느낀 첫째는 바쁜 시험기간에도 집 앞 천변을 달리는 시간을 만든다. 참담한 수준의 독서량이지만 자신이 읽은 책은 꼭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하는 모습, 친구들과 알 수 없는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사회적인 화제에 대한 생각들도 교류하는 모습. 새벽에 공부는 안 하지만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새벽부터 부지런히 운동을 하고 오는 둘째. 물론 다녀와선 푹 아주 오래 잔다. 그래도 새까매진 피부로 건강하게 생활하는 것은 대견하다. 사실 부모로서 내가 세운 기준에는 미흡하더라도 자신들만의 기준을 세워 고군분투해 나가는 아이들의 노력을 이제는 그 자체로 예뻐해야 할 것 같다.

함께 전시를 봐주고 카페에서 책도 읽어 주는 아들들 그 자체로도 예뻐해야지


아이들은 결국 어떻게 성장하게 될까. 궁금하지만 그 결과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이들은 이제 알을 깨고 나와 자신의 삶이라는 저작물의 저작권자가 되어 성큼성큼 나아가리란 것이다. 나는 아이들이 깨고 나간 알껍질들과 함께 아이들의 독립을 지켜봐야겠지. 그들이 자신의 인생을 타인이라는 잣대가 침범하지 않도록, 스스로의 고민과 성찰로 채워나가길 응원하며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내 안의 기준을 없애려고 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 인생의 원저작자로 우뚝 서길 묵묵히 응원하는 존재가 진짜 좋은 부모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인생의 저작자로 저작권을 행사할 수 있기를. 그리고 나 역시 부모라는 역할을 가지고 아이들 인생의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기를. 그렇게 서로의 저작물인 인생을 존중하며 좋은 모자 관계가 꾸준히 이어지길 바란다.


(@표지 사진은 저녁 산책 길. 아주 가끔 함께 나가 주는 아들들과의 저녁 산책. 뒤에서 보기만 해도 흐뭇한데 난 무얼 더 바라고 있었던가.)



매거진의 이전글운동 좀 하는 사람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