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국수 좋아하세요?

설탕 넣은 콩국수에 입문하며

by 주연

안 먹는 음식이 거의 없는 나이지만 싫어하는 식재료가 있었는데 그건 콩이었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콩을 싫어했다. 엄마는 외갓집에서 콩을 받아왔기에 콩밥을 자주 했는데 콩이 있는 밥솥의 윗부분은 다른 가족들이 밥솥 아래에 있는 밥은 내가 먹었더랬다. 가끔 내 밥에도 콩이 한 두 개쯤 딸려오긴 했지만 그마저도 잘 발라내어 다른 가족(주로 엄마)에게 주었던 나였다. 여러 번 먹어보려 해도 나는 그 콩의 비릿하면서도 퍽퍽한 맛이 좋아지지가 않았다.

그러니 콩맛이 나는 두부나 두유 따위도 내가 안 먹는 음식과 간식이었다. 신선한 콩도 여러 가공 과정을 거친 콩도 나에게는 콩의 비릿한 맛이 느껴져 싫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콩의 유익함에 대한 정보를 들을 때마다 내가 몸에 좋은 식재료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쉬움 역시 그때뿐, 싫어하는 식재료 타이틀을 벗기엔 어려웠다.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음식이 당길 때에도 콩을 싫어하는 나에게 콩국수는 후보에도 없는 메뉴였다. 메밀소바나 냉면 등이 내가 먹는 시원한 음식의 범주였다. 그러던 중 동생이 시댁에 갔다가 정말 맛있는 콩국수를 먹었다며 이야기해 주었는데 다른 먹을거리 얘기를 나눌 때와는 다르게 시큰둥했다. 그런데 동생이 "언니 콩국수에 설탕 넣어봤어? 설탕 넣은 콩국수 얼마나 맛있는데"라는 것이다. 나도 다음에 먹어보마 하며 기약 없는 말로 동생의 콩국수 예찬을 마무리했더랬다.


그러던 중에 가족들과 함께 전주에 볼 일이 있어 전주에 갔다가 점심 식사를 해야 했다. 초여름이었음에도 아주 무더웠던 날이라 시원한 음식이 가족 모두 간절했다. 마침 근처에 콩국수와 소바를 함께 하는 맛집이 있어 약간의 줄을 선 뒤에 들어가 식사를 하게 되었다. '설탕' 넣은 콩국수가 맛있다는 동생의 말이 문득 생각났지만 콩으로 만든 한 그릇 음식을 다 먹을 자신이 없어 비빔 소바를 시키고 남편의 콩국수를 조금 맛보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설탕 넣은 콩국수는 왜 이렇게 부드럽고 달콤하면서 고소한 것인가. 처음 먹어보는 콩의 맛이었다. 물론 그 사이 내 입맛에도 변화가 찾아와 콩이 조금은 친근해졌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콩이 들어간 음식을 잘 먹지 않는 나인데 설탕 넣은 콩국수는 정말 정말 정말 맛있었다. 내 그릇의 비빔소바도 맛있는 음식이었지만 그날 얻어먹은 아니 뺏어 먹은 설탕 넣은 콩국수는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날 집에 오는 내내 그 콩국수 이야기를 했음은 물론이고 몇 주 후 다시 그 식당에 가서 설탕 넣은 콩국수를 시켜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기도 했다. 그리고 무더운 날 입맛이 떨어지는 때에는 설탕 넣은 콩국수가 생각나기 시작했다. 무더운 날 '더워 더워' 하는 말 뒤에 '설탕 넣은 콩국수 한 그릇 먹고 싶다'가 자동으로 붙게 되었다고나 할까.


콩 싫어하던 나인데, 이렇게 콩국수 타령을 하게 되었다니.


그런데 내 인생에서 이런 게 얼마나 많았을까. 그거 내가 싫어한다고 못한다고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못하고 안 했던 일들 말이다. 안 먹고 싫어하던 콩에 설탕 조금 넣으니 이렇게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는데 못하고 안 하던 일들에 설탕 뿌려볼 생각도 안 하고 그저 미뤄두고 치워두었던 일들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이제 못하고 안 하는 일을 만났을 때의 나의 태도를 바꿔보고 싶다. 못한다는 말 대신에, 싫어한다는 말 대신 어떤 설탕을 넣어볼까를 고민하는 사람.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의 목록을 조금씩 조금씩 넓혀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콩국수 글을 쓰면서 내 인생에 어떤 설탕들이 지평을 넓혀주게 될지 상상하게 된다. 그런데 상상하다 보니 이상하게도 달콤한 설탕 넣은 콩국수 한 그릇이 생각난다. 아무래도 주말엔 또 시원하고 달콤한 콩국수를 먹으며 더워서 못하겠다는 말 대신 무더위를 잘 살아내 봐야겠다.


(@표지사진은 지난 전주에서 먹은 콩국수 사진. 내 앞에는 비빔소바가 있는 걸로 보아, 저 날이 콩국수와 사랑에 빠진 날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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