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이라고는 못한다고 여겼던 나의 학습된 무기력과 이별하기
운동신경이 없는 편이었다. 학교 다닐 때 체육 수행평가(그때는 실기평가였지만)는 모두 최하점이었다. 기본적으로 공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운동의 수가 적었고 뭘 해도 못하니 흥미도 없었다. 그저 가장 좋은 체육시간은 교실 체육이었던 그 시절의 나였다.
그러니 성인이 되어서도 운동에 흥미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전혀 운동하지 않는 삶을 살던 내가 신규 발령을 받게 되었고 아무 생각 없이 친한 동기 선생님들과 ‘스키연수’를 가게 되었다. 추운 것도 싫어하고 운동도 싫어하는 나였지만 운동을 안 하며 살아온 시간이 오래되자 운동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자각이 없던 때였다. 아무 생각이 없던 나는 기나긴 슬로프 위에서 운동 부진아였던 나의 모습을 다시 체감하게 되었다. 함께 연수를 듣던 친구들은 하루가 지나고 레슨을 거듭할수록 실력이 늘어 앞으로 쌩쌩 내려가는데 비해 나는 여전히 아주 느린 속도로 아주 자주 넘어지며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운동을 못하는 주제에 이런 연수를 신청한 나 자신이 미웠다. 사실 내내 팀원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스키 하나도 배우지 못하는 운동부진아인 나 자신이 싫어 몰래 화장실에서 울기도 했다. 무튼 3일이 지나니 내려가는 기술을 터득하게 되어 나도 스키란 걸 타게 되었으나 남들은 하루 만에 깨치는 기술이었던 것을 나는 3일이나 걸렸으니 이후로 나는 사람들과 같이 하는 운동을 아예 끊어버렸다.
이렇게 중고등학교 체육시간의 경험, 신규 때의 스키연수 등은 나는 운동 못하는 사람이라는 무기력을 학습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나는 운동 부진아라는 생각이 나의 내면에 완전히 새겨졌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운동을 전혀 안 하고 살아온 것은 아니다. 사실 아들 둘을 키우며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은 엄청난 체력이 소모되기 때문에 체력 증진을 위해 뭐라도 하긴 했다. 예를 들면 간헐적 식후 걷기, 가벼운 산행. 또 휴직을 하고 있었을 때는 체력이나 길러볼까 하고 수영이나 요가 등을 열심히 다니기도 했다. (물론 수영은 하기만 하면 감기에 걸려 한 달 수업 중 2주 정도는 빠졌던 것 같지만,,, 요가는 못해도 동작이 안 돼도 그냥 사랑했다.)그리고 코로나 때 아들들 기운이나 뺄까 하고 다녔던 산에, 내가 흠뻑 빠져들어 한동안은 열심히 등산을 다니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운동을 꾸준히는 못해도 가늘고 길게 유지하며 살아온 것 같은데 그럼에도 내 내면은 나는 운동을 못하는 사람, 운동 신경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중 학교 선생님들과 크로스핏이라는 운동을 하게 되었다. 길게 하지 않아도 되고, 많이 하지 않아도 운동 강도가 높아 땀도 많이 나고 하고 나면 근육통도 생기는 운동인데 그 운동을 하는 내내 같이 하는 선생님들이 잘한다는 칭찬을 해주는 것이었다.
자세가 좋다. 근력이 좋다. 잘한다. 더 많이 해도 되겠다. 등등의 칭찬은 나에게 진위를 의심하게 했고, 사실 계속 운동을 하게 하려는 동료들의 술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요가를 할 때도 요가 선생님께 비슷한 칭찬을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지금 자세 좋아요. 요가 잘하시네요. 등등.. 또 산에 오를 때도 뒤따르던 남편이 산 정말 잘 올라간다며 칭찬을 해준다. 집에선 가만히만 있던 내가 산에만 가면 날다람쥐가 되는 게 신기한지 연신 사진을 찍어주고 동영상을 찍어준다. 그러나 여전히 운동에 관해서는 학습된 무기력을 지니고 있는 운동부진아는 그런 칭찬을 모두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운동 못하는 사람이에요. 저 운동 신경 없어요를 되뇌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운동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운동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지나온 시간들 사이에 운동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나마 가늘게 해 왔던 운동들이 나를 조금은 성장시킨 부분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여전히 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운동 좀 하는 편이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친한 친구들이 열심히 운동을 한다. 필라테스도 하고, 마라톤도 나가고 등산도 간다. 나 역시 움직이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새벽에 일어나 등산도 가고, 비 오는 날이라 귀찮지만 우산을 펴고 요가를 가기도 한다. 학교에서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이 함께 운동하자며 제안하면 못 이기는 척 나가보기도 한다. 운동이 주는 에너지와 운동을 하고 난 뒤의 개운함을 이제는 조금 알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요가원의 원장님이 하루는 나와 단 둘이 대화를 나누다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회원님은 어려운 프로그램 하는 날 보면 정말 잘해요. 근력이 부족할 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강사의 동작을 다 따라 하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게 잘하고 나선 한 일주일 안 나오세요. 그런데 쉬운 프로그램을 하면 다음날도 나오고 다음날도 나오고…. 그러니까 요가 너무 열심히 하지 마세요. 쉬엄쉬엄 천천히 하세요. 어차피 대회 나갈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내 몸 알아가면서 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랬다. 나는 몸이 부서져라 운동하고 난 역시 운동이랑 안 맞는다며 한동안 운동을 멀리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나에게 있어 중요한 건 어쩌면 느리더라도 꾸준히 하는 것. 잘 해내지 못하더라도 놓지 않는 것. 그래서 천천히 체력을 기르고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었다.
요 며칠 새로운 운동들을 경험하고, 내가 가보지 못한 운동의 세계에 호기심이 생겼다. 알록달록한 단풍을 보니 완연한 가을을 누리러 가을 산을 자연스레 떠올리는 나는 어쩌면 이제 운동부진아가 아닌 후천적 운동인인 것은 아닐까? 운동과 함께 할 나의 내일이 조금 기대가 된다.
(@표지사진은 한라산 등반 후 내려오던 길에 잠시 누워 바라본 하늘. 등산한 사람만 만날 수 있는 평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