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감각 놓지 않기

아침 필사와 5년 일기장 쓰기 루틴

by 주연

지난 글에서 나는 글을 더 많이 쓰겠다고 호언장담했었다. 확언의 힘을 믿으며. 우선 내뱉고 내뱉은 말에 책임지며 살아가던 나의 삶의 방식에 따라 일을 저지르는 마음으로 글 더 많이 쓸게요.라고 말했는데.. 한 달에 한 번 쓰지도 못했음을 반성하며 시작하고 싶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글쓰기에 대한 마음이 있었다고 작게 변명해 본다. 바빴던 내 일상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변명같이 느껴져하고 싶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글쓰기에 대한 마음을 한편에나마 가지고 있었음을 내 작은 노력들을 써보고 싶다.


현재 나는 업무 스트레스 강도가 높은 일을 맡아하고 있다. 내가 속한 학교라는 사회는 업무의 분배 방식이 독특한데, 가르치는 업무는 기본으로 플러스의 업무가 있다. 그 플러스의 업무는 업무 강도가 약한 것도 강한 것도 있는데 당연히 모두가 업무 강도가 낮은 업무를 선호한다. 가르치고 담임 업무를 하는 것만으로도 힘들기 때문에. 그래서 나름 공정한 방식으로 매년 업무가 바뀐다. 아니 바꿀 기회를 준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나는 업무 강도가 높은 일을 하고 있지만, 담임업무를 하고 있지 않아 작년에 이어 계속 이 일을 맡고 있다. 이것 역시 내 선택이지만 때로는 스트레스에게 쉽사리 내 일상이 지배당한다. 그런데 이렇게 업무 스트레스의 습격을 받아 주말엔 오직 휴식만 할 수밖에 없어지면 나의 내면은 닳아만 가는 느낌이다. 책을 읽어도 깊이 집중하기 어렵고, 글도 잘 써지지 않는다. 그래도 이렇게 나의 내면을 방치할 수는 없기에 이번 2학기는 학기 시작과 동시에 두 가지 아침 루틴을 정했다.


아침마다 교문 앞에서 등교하는 아이들을 맞이하고 지도하는 일을 해야만 해서, 출근을 빨리 해야 해 아이러니하게도 아침 출근 후의 여유가 있는 편이다. 등교지도 때문에 1교시 수업도 없기 때문인데 이 시간에 주로 공문 처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아침이라 아직 스트레스가 찾아오기 전이니 이 시간을 좀 더 나를 위해 써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사두고 미뤄두었던 오 년 일기장을 꺼내 이 시간에 전날 일기를 쓴다. 일기란 보통 저녁에 하루를 반성하며 써야 하지만 많은 것을 저녁에 하는 내가 일기만은 유독 잘 안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침 일기를 딱 5줄만 쓴다. 어제 있었던 일을 기억하기도 하고 화가 났던 일을 적기도 하고 감사했던 일 감동받았던 일 아무것도 생각 안 나면 그냥 별일 없어 좋은 하루였다고 쓴다. 매일 밀리기만 했던 일기가 아침 일기로 시간대를 옮기니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짧게나마 일기를 쓰다보니 내 일상을 더 들여다본다. 일상을 들여다보니 나를 더 자세히 보게 되고 내 주변을 살핀다 겨우 다섯줄이지만 일기를 쓰니 그렇게 되었다.


또 한 가지를 더 하고 있는데 그것은 필사이다. 평소 책을 읽을 때도 좋은 구절은 옮겨 적는 편이었다. 책을 읽다 좋은 문장들을 수집하는 일을 좋아하는데, 훗날 책 내용은 기억 안나도 그 문장이 기억나 소중했던 경험이 많았기에 읽기만큼 신경 써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바쁜 일상이란, 플래그를 붙여만 두고 아직 옮겨 적지 못한 문장들이 빼곡한 책들을 책장에 꽂지도 못해 책상 위에 쌓아두게만 했다. 그래서 아예 필사 전용 책을 찾아 구입했다. 그런데 필사 전용 책들이란 어쩜 이렇게 목적 지향적인 것일까. 나의 자존감을 높이거나 문해력을 높여준다는 필사 전용 책들은 전혀 구매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국제도서전에서 본 고수리작가의 '쓰는 사람의 문장 필사'라는 책이 떠올랐다. 고수리 작가라면 이전의 전작들을 즐겁게 읽어냈던 경험이 있는 작가였다. 에세이를 주로 쓰는 작가의 특성상 뻔한 문장을 담지는 않았을 것 같아 내용을 별로 살펴보지 못했지만 그대로 주문했다.

나의 아침루틴 친구들


이렇게 문장 필사 책과 5년 일기장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자 아침의 교문 지도 업무가 힘들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등교하는 아이들 맞이가 끝나면 내 자리로 돌아가 좋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하루. 나를 위한 긴 시간이 아님에도 다정한 문장들의 힘으로 나는 일으켜졌다.


사실 결국 나를 일으키는 것도 나를 주저앉히는 것도 나라는 점을 생각하면, 나는 계속 나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나 그러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그럼에도 일상의 많은 것들은 틈만 나면 우리를 주저앉히려 하기에 내 일상 곳곳에 소소한 쓰기로 나를 지켜보려고 한다.


그래서 이런 긴 글을 쓰지는 못했지만 쓰기 감각을 놓지 않기 위해 날마다 조금씩은 버둥대고 있었다는 점을 길게 변명해보고 싶다. 그리고 남은 기간도 이렇게 계속 버둥대며 쓰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마침 우리 주수희가 함께 소설을 쓰기로 했으니 내 안에 새겨진 문장들과 일상의 기록들이 어떤 모습으로 나와 나에게서 빗어질지 나 역시 기대해보고 싶다.



딱 이만큼이다. 생의 모든 계기가 그렇듯이 사실 글을 쓴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런데 전부 달라진다. 삶이 더 나빠지지는 않고 있다는 느낌에 빠지며 더 나빠져도 위엄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되고, 매 순간 마주하는 존재에 감응하려 애쓰는 '삶의 옹호자'가 된다는 면에서 그렇다.

-은유 [글쓰기의 최전선]-


그러니까, 마침 오늘 필사한 부분에서 나한테 딱 필요한 말이 나온다. 읽고 쓰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격려. 그렇게 나는 '내 삶의 옹호자'가 되어보려 한다.

책상에서 책 읽고, 북토크 가고, 글쓰기 모임 친구들 만나는 일상이 나를 내 삶의 옹호자로 만드는 중

(@표지 사진은 지난 김금희 작가 북토크를 갔던 대전 한쪽가게 책방의 한 쪽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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