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사랑의
꿈을 꾸었다. 다시 중학생이 된 기분. 외출하려는데 아빠가 태워다 준다고 한다. 가까워서 혼자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알았다' 하시고는 쨘, 나타나서 나를 데려다주는 아빠. 깨고 나서도 따뜻했는데 왜 이런 꿈을 꿨을까 했더니 임진아 작가님의 <진아의 희망곡> 덕분이었다. 90년대생 작가의 80~90년대 가요에 얽힌 추억 에세이를, 그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찬찬히 읽었다. 좋았던 부분이 많았는데 <노는 게 남는 거야> 편을 언급하고 싶다.
"이제 중학생이니 팬클럽에 가입하는 게 어떠니."
가난한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나온 저 말은, 작가님의 아빠가 하셨다는 말이다. 너무 근사하지 않은가? 중학생 됐으니 팬클럽 가입하는 건 어때, 하는 아빠라니. 그 말을 기억해 글로 쓴 작가님도 따듯해 책에 느낌표를 그려두었다. 참 신기하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한 사람이 구성된다는 게. 내게도 그런 사연은 많을 텐데, 일단 생각나는 것은 고등학생 때 내 영어 단어 수첩에 적힌 아빠 글씨다. 한 권을 다 채운 단어장이라 뿌듯했는데 언젠가 넘겨보았더니
'사랑한다, 내 딸'
적혀있었다. 내가 이렇게 공부한 걸 아빠가 봤구나, 메시지를 써주셨구나 찡했다. 늘 다정한 아빠는 아니었어도 그런 작은 순간들이 아주 단단하게 내 안에 자리 잡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사랑을 받았는데, 나는 어떤 사랑을 주고 있을까 돌아보게 된다.
오늘 일이다. 추석이라고 시댁과 가족 식사를 했다. 헤어지는 시부모님의 얼굴에 서운함이 가득해 마음이 짠했다.
큰애가 필요한 게 있다고 해서 근처 대형서점엘 갔다. 찬찬히 책도 구경하고 맛난 커피도 한 잔 하고 싶은데 중학생 둘째는 연신 '언제 가?'만 말한다.
"아, 비가 안 와서 그렇구나. 축구하고 싶어서?"
하고 아들 마음을 헤아린다. 도빵이는 여전히 주말이면 축구하러 나간다. 체육대회를 하고 일찍 끝난 목요일에도, 그다음날인 부슬비가 내리던 어제도 그랬다. 큰애랑 남편에게 도빵이 축구하고 싶대, 우리 얼른 가자 했다. 돌아오는 길 차 안, 비가 내린다. 아까는 한두 방울만 떨어졌는데 꽤 많이. 비 와서 축구 못하는 거 아니냐, 친구랑 연락은 했느냐 얼른 연락해 봐라. 축구 안 갈 거면 우리 그냥 카페에 가서 맛있는 빙수나 사 먹자 했다. 가타부타 말없는 아들.
오랜만에 넷이 나온 건데 아쉬운 마음이었다. 집에 와서 각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고 말았다. 아들이 나가려나 싶었는데 방에 가보니 잠들었다. 헐, 이럴 거면 빙수 먹으러 갈 걸 싶었다. 얄미웠지만 이불을 덮어줬다. 어제저녁 축구화 말리게 꺼내 두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다시 보니 그대로다. 윽, 냄새가 장난 아니다. 그때 내 마음에 든 생각은, '이놈 자식 축구 못하게 축구화나 빨아야겠다'였다. 왜 내 마음엔 이렇게 심술이 있는가. 불만을 한가득 안고 축구화며 축구화 가방, 스포츠 가방 등을 빨았다. 이불을 덮어주고, 축구화도 빨아주고 하면서도 내 마음이 사랑만 가득한 게 아니라는 게 당혹스러웠다.
철없는 엄마일까, 나쁜 엄마인가. 여전히 사춘기 호르몬에 반응하며 지낸다. 발끈하고 변덕을 부리면서 말이다. 크게 반항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막내가 내는 짜증이 가끔 큰 타격감을 준다.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집 주변을 산책하고 돌아와서도 여전히 억울함이 가시질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결국 나는 또 쟤를 위해주고 아껴줄 거니까.
시부모님을 떠올려 보니 자식으로서의 나 또한 많이 부족하다 느낀다. 오랜만에 만나 더 오래 시간을 보내고 싶으셨을 텐데 우리는 매정하게 돌아섰다. 우릴 위해 준비해 주신 마음만 고스란히 받고 말이다. 친정 부모님도 마찬가지, 내일 방문할 우리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하고 또 하고 계실 거다. 나는 조금만 하라고 말만 하고, 막상 가서는 만족스럽게 배를 두드리고, 내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며 흐뭇해할 것이다. 자식의 마음이란 이런 것인가.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진다는 말이 생각난다. 결국 부모가 지는 게 맞겠지.
임진아 작가님은 이렇게 썼다.
"나의 엄마는 돈이 없어도 배가 고프게 내버려 두지 않던 사람, 나의 아빠는 듣고 부르고 춤추며 노는 걸 응원한 사람. 그렇게 자라서 아무리 슬퍼도 웬만해선 밥을 굶지 않고, 무기력할 땐 더욱이 노래를 듣는다. 입맛이 이 없을 때 무얼 먹어야 괜찮아지는지를 알고, 울고 싶을 때 어느 노래에 기대앉아야 할지 아는 어른이 된 데에는 그 두 사람의 몫이 분명하다는 걸 인정하고 싶다."
- 임진아, <진아의 희망곡>, 마음산책
나는 부모로서 어떤 유산을 남길 수 있을까. 얄밉고 억울한 마음으로 이불을 덮어주고 축구화를 빨았다는 건 몰랐으면 좋겠다. 포근하게 이불을 덮어주고 아들의 축구생활을 위해 빨래를 해준 엄마이고 싶다. 서울에 가기 전에 동대문에 있다는 축구용품점, 합정에 있다는 축구선수들 유니폼이 많은 빈티지샵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이게 다 아들을 위한 엄마의 마음이라는 걸 둘째는 알아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아이의 사랑을, 아이가 어렸을 때 나는 실컷- 무서울 정도로 많이 받았다. 이 작은 아기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게 내맡기지 않았던가. 내가 어떤 사람인줄도 모르는 채. 그러니 나의 못난 마음을 신형철 평론가의 글에 기대어 반성하련다. 태어난 지 아홉 달 된 아들에게 하는 말이다.
"나는 누군가의 자식으로 45년을 살았고 누군가의 아버지로 아홉 달을 살았을 뿐이지만, 그 아홉 달 만에 둘의 차이를 깨달았다. 너로 인해 그것을 알게 됐으니, 그것으로 네가 나를 위해 할 일은 끝났다. 사랑은 내가 할 테니 너는 나를 사용하렴."
- 신형철, <인생의 역사>, 난다
저 마지막 문장을 품고 지내야겠다.
"나로 하여금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