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기간 학생 유형 도감

시험지 앞에서 드러나는 다채로운 캐릭터 관찰기

by 빛별

시험 감독을 하다 보면, 교실이 단순히 '시험 보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인간 군상을 모아둔 작은 전시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시험지와 답안지를 나눠주고 나면 교사는 보통 부정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감시자 또는 학생들의 질문이나 문제 상황을 돕는 조력자라는 두 역할을 오가며 교실을 거닌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학생들의 반응 하나하나를 관찰하게 되고. 똑같은 시험지를 받아 든 아이들이 얼마나 제각각의 방식으로 반응하는지 새삼 흥미로워진다. 교사의 마음도 그들의 파도 같은 반응에 따라 이리저리 출렁인다. 수년간 시험 감독을 하며 마주한 학생들을, 나름의 '시험 응시 태도 유형 도감'으로 정리해 보았다.

1. 무한검토형
이 학생들에게 문제를 다 풀고 남은 시간은 '쉴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 '검토하는 시간'이다. 연필로 문제를 풀고, 파란 펜으로 검토하고, OMR 카드에 예비 마킹하고, 사인펜으로 최종 마킹을 한다. 그 후 다시 마킹한 답안지와 시험지를 교차 검토한다. 보는 사람마저 숨이 찰 정도다. 강박에 가까운 검토 과정을 지켜보며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언젠가 연구실에서, 회의실에서, 또는 회계팀의 장부 앞에서 저 꼼꼼함이 보석처럼 빛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2. 예술가형
시험지의 여백은 그들에게 창작의 무대다. 마지막 장이 비어있다면 금상첨화! 함수 그래프 위에 늘어진 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영어 지문 아래에는 알파벳을 변형한 화려한 패턴이 피어난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순정만화 여주인공 드레스 자락에 과학 공식이 파묻히기도 한다. '이건 교과 시험인가, 미술 시간인가?' 피식 웃음도 나온다. 간혹 OMR 카드에 별자리나 픽셀 아트를 새기다 감독 교사에게 주의를 받기도 하는 그들만의 뚝심과 기개는 묘하게 멋지다. 언젠가 일상적인 사물을 낯설고 신선한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예술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3. 몽상가형
이들이 빠르게 문제를 풀었는지, 답을 찍었는지는 알 수 없다. 시험지를 휘리릭 풀고는 창밖으로 시선을 날리는 학생들이다. 구름, 나무, 텅 빈 운동장... 먼지 낀 창문을 통해 보이는 모든 것이 몽상가의 세계에서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아..."하고 한숨을 내쉴 때, 시험 문제는 이미 그들 곁을 떠난 지 오래다. 시험도 붙잡지 못한 이들의 마음은 파란 하늘을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에, 파닥파닥 작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가는 새에 붙잡힌 듯하다. 그들의 시선을 나도 모르게 따라갔다가 황급히 교실로 되가져오다 보면 그들이 살짝 부럽기도 하다. 어쩌면 이들은 언젠가 소설가, 시인, 혹은 철학자가 되어 세상을 한 뼘 더 깊게, 다르게 바라볼지도 모르니까.

4. 수면보충형
이들의 전략은 간단하다 - 빠른 답안 작성 후 최대한 오래 숙면. 시험지가 손에 들어오자마자 신속하게 답안을 작성한 뒤, 곧장 책상 위에 머리를 파묻는다. 담요나 입고 있던 점퍼를 활용해서 좁고 딱딱한 책상을 최대한 포근하고 편안한 장소로 탈바꿈한다. 그 후로는 시험 종료령이 울릴 때까지 미동도 없다. 다만 간혹 코를 골아 교실의 정적을 흔들거나, 침으로 OMR카드를 적실 수 있으니 눈길을 떼기 어렵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선 '그래, 지금이라도 자야지. 어른이 되면 밤샘 프로젝트나, 야간 근무를 숱하게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지금의 단잠이 그때를 버티게 하는 에너지일지도 모르겠다.'생각하며 그들의 웅크린 등 위로 응원의 마음을 토닥토닥 얹게 된다.


5. 질문공세형
이들은 시험지의 작은 오타도 매의 눈으로 낚아챈다. "선생님, 여기 문제에 쉼표가 빠진 것 같은데요?"처럼 굳이 묻지 않아도 될 궁금증을 던져 긴장된 침묵을 깨기도 한다. 시험 중 질문이 들어왔다는 말에 '문제가 잘못됐나' 싶어 부리나케 달려갔다가 단순 오타 지적일 경우 안도와 허무가 섞인 한숨을 내쉬게 되지만, 간혹 문제의 오류를 정확히 지적하기도 해서 그들의 말을 마냥 가벼이 여길 수만은 없다. 수차례 검토와 교정을 거쳐 완성된 시험 문제이지만, 요리조리 빠져나와 끝내 살아남은 오타나 오류가 있곤 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이 그냥 지나치는 작은 오류마저 잡아내는 이들의 집요함은 훗날 사회에서도 '사소하지만 치명적인 오류'를 지적하는 장점으로 성장할 것 같아 은근히 든든하다.


6. 기도형

이 학생들은 답안을 다 작성하고 나면 펜을 내려놓고 두 손을 모은다. 혹은 조심스럽게 성호를 긋거나,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속으로 무언가를 읊조린다. '내가 맞게 풀었기를', '이 점수가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느껴진다. 시험이 안겨주는 불안과 긴장을 스스로 다스리는 그들의 작은 의식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 순간 교실이 시험장이 아니라 조용한 예배당으로 변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서, 이들은 삶의 어려운 순간마다 기도하며 마음을 다잡고 흔들림 속에서도 자기만의 중심을 세워나가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시험장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험을 치른다. 누군가는 치밀하게, 누군가는 창의적으로, 또 어떤 이는 몽상 속에서 혹은 꿀잠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채워가며 앞으로의 삶을 준비한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라는 작은 산을 하나씩 넘으며 단단해지고, 그렇게 다채로운 모습으로 사회 곳곳을 채워나가기를 응원한다.


얘들아, 시험보느라 고생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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