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발력은 없지만 글쓰기는 있다

글쓰기는 느린 사람의 언어

by 빛별

순발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얼마 전, 글쓰기 모임에서 소설 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저 그래서 관련된 책 한 권 샀어요”라고 말했는데, 정작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이승우 작가님이 쓴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였다.) 급한 마음에 찍어둔 책 사진을 찾으려 사진첩을 뒤적였지만 찾지 못했고 그 틈에 대화 주제는 다른 것으로 넘어갔다. 나중에서야 내가 자기 말만 하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사람처럼 보였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래도록 그 장면이 마음에 남았다.


비슷한 경험이 또 있다. 요즘 두통 때문에 괄사 도구로 관자놀이를 자주 마사지하는데, 그 모습을 본 직장 동료가 “그게 뭐예요? 시원해요?” 하고 물어왔다. 갑자기 받은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문장을 다듬으며 머뭇거리는 사이 동료는 머쓱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나 버렸다. “이건 괄사 도구인데, 이렇게 두피나 쇄골을 풀어주면 피로가 좀 풀리는 것 같아요” 왜 이런 말이 그 자리에서 바로 나오지 않을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질문을 받으면 멍한 눈빛으로 반응하는 걸 ‘MZ stare’라고 부른다는데, 그렇다면 나도 엄연한 MZ인 걸까. MZ이든 아니든, 나는 순발력도 사회성도 이렇게나 떨어진다.


이런 내가 빠른 말솜씨의 압박에서 벗어나, 나만의 속도로 마음을 정리하고 전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글쓰기다. 글을 쓰는 과정은 선명한 감정이나 또렷한 생각뿐 아니라, 그냥 지나쳤던 순간까지 체망에 걸러내는 일 같다. 그 체 위에 남은 조각들을 모아 다시 나만의 언어로 숨을 불어넣는 과정이다.


매일 일기를 써야지 생각만 하다가, '주수희'라는 따뜻한 글쓰기 모임을 통해 간헐적이지만 꾸준히 글을 쓰기 시작한 지 2년이 넘었다. 여전히 매일 일기를 쓰는 일지지부진하다. 그래도 그동안 마음에 맺힌 작은 구슬들을 부족한 솜씨로나마 다듬어 결과물을 만들어왔다. 스트레스 가득한 생활기록부 작성 과정을 재미난 마법 주문으로 바꾸어 보기도 했고, 몰입했던 게임을 소재 삼아 운동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했다. 아주 조금씩 이지만 내 마음의 체망이 더 촘촘해지고 있는 기분이 참 좋다.


이제 글쓰기 모임의 다음 목표는 소설 쓰기다. 이슬아 작가는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계속 글을 쓰다 보면 ‘나는’으로 시작하는 글쓰기가 바닥난다. 자연스레 나에게서 남으로 확장된다. 부지런한 사랑이다.”


나는 아직 ‘나는’으로 시작하는 글이 바닥날 만큼 많이 쓰지 못했다. 하지만 소설을 쓰다 보면, 결국 여러 모습의 ‘나’를 꺼내야 할 것이다. 등장인물과 무대가 결국엔 내가 가장 익숙한 인물과 장소로 귀결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속에서 꺼낸 수많은 ‘나’들을 다른 사람의 마음과 맞닥뜨리게 하다 보면, 조금은 바깥을 향하는 글쓰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거실 햇살 잘 드는 곳에 놓인 초록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몬스테라도, 아글라오네마도 새 잎을 낼 때는 돌돌 말려 올라오고 시간이 흐르며 잎맥을 펼치고 무늬를 드러낸다. 글쓰기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나’라는 작은 잎사귀 안에 갇혀 있지만, 차츰 펼쳐지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과 맞닿을 것이다. 비록 현실에서는 재치 있는 대화를 못하더라도, 글쓰기 안에서는 내 이파리를 천천히 펼치며 누군가를 웃기고 울릴 수 있다면 좋겠다.


글이 안 써질 때면 묵묵한 초록이들을 봐야겠다. 그리고 제목조차 떠올리지 못했던 이승우 작가의 책, 이제는 그 책을 다시 펼쳐 보며 글쓰기와 소설 쓰기에 대해 조금씩 힌트를 얻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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