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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Jul 20. 2022

20주년 동기 모임

사람 사는 이야기

20주년이라니!


뉴욕 사는 동기를 만나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 글쎄. 우리가 싱가포르 항공에 입사한 지 20주년이란다. 세상에나!! 20년이라니. 2002년 7월, 천공항에서 만나서 같이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탔던 게 아직 내 기억에 선명한데, 벌써 세월이 그리 흘렀다. 하긴, 내년이면 나 고등학생 엄마지.


같이 만난 동기 언니는 어떻게든 20주년을 기념하겠다는 의지로 충만했다. 자기 소원이  플랭카드를 걸고, 동기들이 오손도손 모여서 리본을 커팅하는 거란다. 언니는 벌써 플랭카드 문구도 정했다. "보석같은 싱가포르항공 17기 영원하라."라고. 언니에게는 30주년 플랜도 있단다. 다 같이 싱가포르 방문하기. 뉴욕 사는 동기는 30주년에 조인하기로 했다.


플랭카드는 어디에 걸고, 리본은 어떻게 자를 것인지, 케이크를 주문할 것인지 말 것인지, 회사 생활에 치인 직장인은 벌써부터 머릿속에 플랜을 짜기 시작한다.라는 말이 무섭게 언니가 연초부터 다 알아봐 뒀단다.


그런데, OO이도 나온대?


갑작스레 단톡방이 하나 꾸려졌다. 동기들 전원이 있었던 단톡방은 조용한지 오래다. 조별 단톡 방만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로 외국 나가 살고 있는 동기들이 한국에 들어올 때 활성화된다.


이 착한 오지라퍼 언니는, 연초부터 20주년을 기념하여, 힐튼 호텔에 가서 뷔페를 먹자고 자기가 만나는 모든 동기들에게 제안을 했다. 

"힐튼호텔이 12.31. 에 문을 닫는대. 거기 주상복합이 들어온대. 우리 거기 꼭 한 번만 다 같이 가자."라고 하면 동기들이 "가야지."라고 흔쾌히 말할 것을 기대했으나.


"그런데 OO이도 나온데?"라고 했단다.

언니는 순간 당황했다고 한다. 헛. 쟤네들이 사이가 안 좋았던가?


20명 남짓 됐던 것 같은데 결국 10명이 모이게 됐다. 톡방은 시끌벅적이다.

"나 늙어서 못 알아보면 어떡해?"

"아니야. 알아볼 수 있어, "

"나, 꼭 알아봐 줘야 한다."

뜬금없는 대화들이 재미있다.


그립네.

간혹 한두 명끼리는 만나지만 이렇게 거국적으로 모이기는 코로나 이후로 처음이. 철없던 그 시절 흑역사가 난무하다. 누구 하나 남자 친구랑 헤어졌다고 하면 우르르 모여서 술을 마셨지. 이사간다고 이케아에서 소파 사서 나르고, 같이 가구를 조립하던 기억도 나네. 할 일 없으면 스케줄 맞는 동기들이랑 밥 먹고 스벅에서 수다 떨고 마무리는 쇼핑으로. 마음 편했던 시절이네.


술 먹고 뻗은 기억에 생각나는 에피소드 하나.

남자친구가 한달 만 서로 떨어져서 관계를 고민해 보자고 한 말에, 한 달을 연락도 못하고 기다렸던 순딩이 동기 언니는, 딱 한 달 후에 차였다. "누가 우리 OO이 마음을 아프게 한 거냐."며 죽도록 마셔보자고 언니 하우스메이트 언니들은 호텔 바에 룸을 잡고 위스키를 시켰다. 못 먹는 술을 꾸역꾸역 마시던 실연의 당사자는 화장실에서 전사했고, 나랑 동기 언니들(하우스메이트들)은 '저 인간을 업어야 해 말아야 해.' 이러면서 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이 와중에 어색한 한국말로, "한국 사람이에요? 저 rain 좋아해요."라고 해서 rain이 누군가? 했던 기억이 난다. 가수인가? 했던 기억. TV를 안 봐 rain이 누군지 몰랐다는...얼마나 좋았길래, 자기 rain이 좋다고 처음 보는 한국인에게 말을 걸었을까. 


단톡방이 늘은 플랭카드를 거네 마네로 시끄럽다.

"플랭카드 호텔에서 안 걸어줄걸? 하지 마. 케이크이나 주문해."

"케이크 호텔 뷔페에 있지 않아?"

"난 플랭카드 꼭 할 거야. 내 몸에라도 두르고 있을 테다."


그립고 그립네.

<출처 : Pixabay>
한줄 요약 : 지나가면 다 그리운 추억, '동기'라는 이름으로 하나 되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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