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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Jul 19. 2022

사랑하는 S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사람 사는 이야기

S에게 반하다.


수학여행이었지? 우리가 처음 친해진 게. 학생부장 선생님은 자진해서 술을 내놓으면 용서해주겠다고 했고, 몇몇 아이들은 쭈뼛거리며 챙겨 온 술들을 내놨어. 넌 아무 말 없이 소주를 물통에 담아 조용히 구석에서 마셨지.

예사 실력이 아니더라. 술냄새 하나 안 풍기고 한 병을 안주 없이 다 마시다니.

난 그때 너에게 반한 것 같아. 남에게 휩쓸리지도 않고, 유난 떨지 않고 자기하고 싶은 걸 하다니!

넌 어른이 돼서도 그때 그대로 인 것 같아.


미안해.

널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들어.

내 결혼식에 휴가 안 준다고, 잘 다니던 곳 그만두고 결혼식에 와 줬잖아. 넌 그 이야기를 몇 년이 지난 뒤에 지나가듯 말했어. 그때 미안함과 당혹스러움이라니.

난 너에게 되려 "이런 일로 직장을 그만두면 어떻게 해?"라고 했고, 넌 "내가 가방 들어주기로 했잖아. 그만둘 때 돼서 그만둔 거니 신경 쓰지 마."라고 했지.


아롱이 다롱이 키워준 거. 그것도 미안하고 고마워.

우리 엄마 못 말리는 고집,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자손을 남겨야 한다는 이상한 신념에 결국 깐순이 새끼들을 받았지. 엄마는 (엄마,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역시나 아무 계획도 없었어. 내가 못 키운다고 그리 말렸는데도 결국 낳으시더니 순종도 아니라 키우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결국 내가 데리고 왔었잖아.

시어머니 반대가 심해서 어쩌지도 못하고 있을 때, 네가 키우겠다고 데려가서 아롱이가 아롱옹이 될 때까지 잘 키운 게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 왜 사고는 우리 엄마가 치고 책임은 나도 아니고 네가 진 건지.

네가 원해서 그랬다고 굳이 그런 마음 가질 필요 없다고 해도, 나는 네가 아롱이와 아롱이 자녀들을 돌보느라, 인생에서 많은 기회들을 포기했을까 봐 걱정이 돼.


건강해.

사랑하는 S야.

아롱이가 많이 아파서 어쩌니. 벌써 16살인가? 난소암도 이겨내고, 장수할 것 같았는데... 4살 꽉 채워서 20살까지 장수하면 좋겠다. 아프지 않고 평온하게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좋겠네. 아롱이는 내가 아니라 네가 키워서 그만큼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해.

아롱이와 아롱이 아이들, 냥줍 한 아이들까지 대식구 돌보느라 고생이 많아. 더운데 몸 잘 챙기고, 미안하고 또 고마워.



저의 베프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좋은 사람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입니다.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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