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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Aug 21. 2022

그때 그 사람, 모두가 미워했던 그녀.

사람 사는 이야기

막대그래프로 살펴본 친구와 적의 숫자

<출처: 세상물정의 물리학, p.227>

친구가 많은 사람에서부터 적은 사람까지 줄을 세우고 세로축 양의 방향에는 친구의 숫자, 음의 방향에는 적의 숫자를 표시한 그래프다. 친구가 많은 사람은 적이 없고, 적이 많은 사람은 친구가 없다. 심지어 적이 많은 사람은 구성원의 80%에게 미움을 받는다. 아무리 친구가 많은 사람도 구성원의 30%가 친구인데 말이다. (인용 : 세상 물정의 물리학, p.228)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고 나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에게 미움을 느끼는 것은 보편적인 감정이다. 사람들은 고만고만하다. 나에게 친절하기는 쉽지만 남에게 내가 가진 것을 내어주면서까지 친절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은 대게 받는 만큼 준다. 일부는 남에게 잘한다. 일부는 받기만 하거나, 심지어 해를 입힌다. 적이 많은 사람들은 마지막 부류의 사람들이다.


누구나 미워하는 그 사람

동기 중에 그런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장점도 많은 사람이었다. 열심히 살았다. 싱가포르에 있으면서 만다린어 과외를 받았고, 테니스를 제대로 배우겠다며 한국에 장기 휴가를 가 있는 동안 코치를 불러서 개인 레슨을 받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한국 문화를 알리는 대회가 있을 때는, 궁중 의상을 수백을 들여 직접 구입해서, 본인이 입고 나가기도 했을 정도였다. 소위 SKY 출신에, 말도 청산유수, 자기 PR도 능했다. 무수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누구나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 언니와 비행을 같이 가게 되었다. 나는 친했던 다른 언니에게 그 언니 정말 재미있던데 왜 동기들이 싫어하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언니와 같은 조였던 언니는,

"응, 그 아이가 말 정말 잘하지. 재미있기도 하고. 그런데, 네 이야기는 하지 말고, 조심해야 해."라고 했다. 어리둥절하면서도 그 언니가 나에게 그리 말하는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이 언니는 주특기가 남 사이 이간질시키는 것이었다. A에게 B가 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고 전한다. B에게는 A가 너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각각 서로에 대해 안 좋은 말을 들은 A와 B는 터놓고 말을 할 생각은 안 하고 슬쩍 서로를 피한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되어 펑 터진다. 그제야 둘은 이 언니가 이간질한 사실을 알게 된다. 그때까지 오해는 오해대로 쌓인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동기들 사이에서는 '그 언니가 하는 말을 믿지 말아라. 그 사람에게 네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 불문율로 자리 잡았다.


싫어할만했다.


누구나 싫어하는 사람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인데 왜 저렇게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그걸 즐기는 걸까? 궁금해졌다. 언니는 자기가 최고여야 했다. 이미 잘났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잘되는 꼴을 못 봤다. 이 마음은 이상한 통제 욕구로 발휘되었다. 동기들을 자기가 펼쳐놓은 장기판의 말 마냥 여기 놓고 저기 놓고, 휘둘렀다. 언니는 동기들이 우왕좌왕하고 갈등하고 싸우는 모습을 즐기는 것 같아 보였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 언니를 돌이켜보면, 지독한 나르시시스트가 아니었나 싶다. 동기들에게 했던 것은 소위 가스라이팅, 절반만의 진실을 제공하고, 나머지는 자기 입맛에 맞게 각색해서 전달하면, 순진한 상대방은 절반의 진실에 혹해 자신을 의심한다. 상대방이 일부러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러니 자기 욕을 했다는 동기에게 '너 진짜 내 욕했니?' 터놓고 물어보지도 못한다.


그렇게 해서 그 언니가 얻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너희들보다 위에 있다는 우월감이었을까? 다행히도 나는 그 언니와 가까이 지낼 일이 없어, 내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적은 없었지만 동기들 대부분, 특히나 4개월 교육기간 동안 같이 생활했던 같은 조 동기들은 각기 맺힌 한이 있었다. 그녀는 아무도 연락하는 사람이 없다. 본인이 동기들과 관계를 소중히 어겼으면 애초에 그런 일들을 저지르지도 않았을 테니, 그녀로서도 굳이 이 관계가 아쉽지는 않겠겠지만 말이다.


적을 만들지 말자.


위 그래프를 3년 후에 다시 그리면,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난다. '친구'는 3년이 지나도 70%가 여전히 친구다. '친구'가 '중립'으로 바뀔 수는 있지만(약 30%), '친구'가 '적'으로 바뀌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고 한다.(약 1%). '적'은 더 극단적이다. 3년의 시간 동안 '적'이 '친구'로 바뀐 경우는 단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이 책에 따르면 친구를 적으로 만들 수는 있지만 적을 친구로 돌리는 건 더 어렵다는 결론이 난다.(인용 : 동저, p.229)


그 언니처럼 '얻어낼 것이 없으니, 안 봐도 그만이다.'라고 생각한다면, 굳이 인간관계 좋은 게 좋은 거다 생각하며 참을 이유도 없을 것이다. 사람 간 무조건적인 호혜성도 거래 관계가 반복될  지켜지는 법이.


다만, 우리는 생각보다 좁은 세상에서 살고 있고, 한번 틀어진 관계는 다시 우호적으로 바뀌기가 어렵다. 소한 원한과 적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이미 몇몇 사람을 손절한 경험이 있는 나는 여기서 고민에 빠진다. - 흠, 그래도 손절하기 잘한 것 같다. 내가 있어야 관계도 있는 것이니까. 


끝으로, <운의 알고리즘>에서 말하는 원한과 적을 만들지 않는 간단한 원칙을 덧붙인다.


원한과 적을 만들지 않는 간단한 원칙이 있다.

1. ‘이런 말 해도 될까?’ 싶을 땐 하지 않는다.

2. 뒤에서 남 이야기를 할 땐 좋은 얘기만 한다.

3. 나랑 안 맞는다 싶으면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거리를 둔다.

4. 무시해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늘 기억한다.

5. 상대방이 손해 봤다고 느끼게 하지 않는다.

- < 운의 알고리즘, 정회도 (지은이) > 중에서


적을 친구로 돌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애초에 적을 만들지 말자.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상대방이 손해를 봤다고 느끼게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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