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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정 Aug 29. 2022

내가 지금 원하는 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일까?

사람 사는 이야기

30킬로 가까이 살을 빼다.

대학교 1학년 때 나는 30킬로 가까이 살을 뺐다. 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학교 1학년 신입들은 매일 저녁 술자리가 있었고,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었던 나는 가자는 대로 따라가 주는 대로 술을 마셨다.

- 지금이야 나이가 들어 덜하지만, 고등학교 때도 매점 가자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쉬는 시간마다 매점에 내려가 있었다. 좀 쉬고 싶을 법도 하건만. 거절에 유독 미안함을 느꼈던 것 같다.


술 먹고 그다음 날 속이 쓰려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생활이 두어 달쯤 지속되었다. 그래. 이 김에 살이나 빼자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30킬로가 빠지고 나니, 내가 내 얼굴이 생소할 지경이었다. 취미로 사진을 찍었던 동기가, 3월 술자리에서 헤롱 거리는 내 모습과, 8월인가? 농활 가서 헤롱 거리는 내 모습을 찍은 사진을 현상해줬는데, 내가 보고 내가 놀랐다.

다른 사람이 되었구나!


고등학교 때는 85킬로 정도 나갔어도, 자연스레 짜장면 곱빼기를 주문했어도, 딱히 내가 뚱뚱하다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 내가 뚱뚱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게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기에 의식을 하지 않았다는 게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외모 경쟁에 끼어들 최소 요건을 갖추지 못했기에, '외모'를 가꾸고자 하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대학을 올라가니 달랐다. 나는 남자와 여자가 섞인 상황에서 뚱뚱한 내 몸무게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나 정말 뚱뚱하구나!"

무난하다 못해 호구 기질이 있었던 성격과 공부를 잘했다는 것, 여고시절 먹혔던 장점이 장점으로 먹히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최소한 남들만큼 보이게 살은 빼야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술독을 핑계로.

좌측 중고딩 시절 / 우측 대학 시절 - 사진을 보니 나도 살을 뺐다만 베프도 많이 뺐구나!
남들 보기에~

남들 보기에 부끄럽다. 이 말이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내가 무엇을 하던, 그것이 무슨 죄가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뭐든 다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거리낌을 느끼는 행동들에 대해서, 그 행위로 말미암아 아무도 피해를 보지 않는다 해도, 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있다고 생각한다. 부언하자면 내가 '그렇지 않은 것'을 잘 지킨다는 의미도 아니다.  지킬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나는 남들 보기에 뚱뚱했던 내가 싫었다. 그래서 살을 뺐다.


세상에는 왜 이리 똑똑한 사람들이 많을까? 독일 철학을 교양으로 들으면서, 논문 수준 리포트를 발표하는 한 공대생에게, 놀라움을 느꼈다. 나와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구나! 지적인 수준으로 나는 저 사람을 이길 수 없겠구나!


그렇다. 나는 내가 이길 수 있는가? 없는가?로 세상을 바라봤다. 나는 살을 뺄 수는 있었지만, 그 공대생처럼 똑똑해질 수는 없었다.


날씬하고, 똑똑한 것. 나는 왜 그것을 추구했을까?

남들 보기에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대학 때 외국인 길 안내 자원봉사를 3년 간 했었다. 옆 집 언니 따라 한 일이다. 자원봉사인데, 교통비도 줬었다. 같이 자원봉사를 하던 대학생들은 대부분 어학연수 경험이 있던 사람들이었다. 인포메이션 부츠에서 교환학생 다녀온 이야기, 어학연수에서 겪었던 낯선 경험들을 들으며, 나도 외국에 나가고 싶다는 열망을 키웠다.


교환학생에 지원했다. 학비 등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냥 영어 시험만 보고 원서를 들이밀었다. 내 원서를 접수받았던, 선배는 "너 이거 국어교육과 내정자 있는 건 알지?"라고 물었다.

난 "일단 그냥 접수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안되면 어쩔 수 없고, 된다면 학비나 비행기 경비는 그때 생각하리라. 일단 던지고 보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교환학생에 떨어지고 나서, 같이 자원봉사를 하던 4학년 언니가 대한항공 승무원 시험을 본다고 했다. 승무원이 되면 외국에 나갈 수 있겠구나? 당시 나는 어떻게든 나를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장강명 소설의 제목처럼 "한국이 싫어서."였다. 한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가난이 싫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대한항공에 입사를 하고 나서, 선배 언니 권유에 따라 싱가포르 항공에 시험을 봤다. 언니는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인데 지금 3년 만에 공고가 떴어. 난 이제 나이가 많아서 어려울 것 같고, 너 한번 시험 볼래?" 그렇게 해서 드디어 한국을 떠났다.


그간 내 삶에서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건 무엇이 있었을까?

남들 보기에 뚱뚱해서 살을 뺐고, 같이 자원봉사를 하던 사람들이 부러워 교환학생에 도전하고, 외국에 나가고 싶다는 이유로 승무원 시험을 보고...

그 선택에 내가 끌렸던 것도, 숨겨진 이유가 있었겠지만, 20대 나는 나에 대해 고민을 충분히 하지 않고 남들 따라 결정을 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너 자신의 이유로 살라."는 책에서는 얕은 욕망과 두터운 욕망을 구분한다. 앝은 욕망은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것이고, 두터운 욕망은 진정 내가 원하는 욕망이며, 그것으로 인해 나와 남이 풍요로워지는 욕망이다.


얼마 전에 '와인 강의&시음회'를 신청했다. 같이 인사 공부를 하는 모임에서 색다른 공부를 해보자고, 와인에 대해 칼럼을 기고하시는 분을 모셨다. 별생각 없이 강의를 신청하면서 또 의문에 빠졌다. 나는 왜 이 모임을 가고 싶어 하는 걸까? 거기 사람들이 좋아서? 와인에 관심이 있어서? 둘 다이긴 하지만 막연했다.


저녁 루틴과 아침 루틴을 흐트러트릴 것이 뻔한데도 불구하고 갈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일까? 고민이 되었다. 내가 단지 와인을 잘 안다는 것이 '멋있어 보여서' 선택을 한 것은 아닌지... 그런데 매사 이렇게 나를 재단해야 하는 것인지? 또 생각은 꼬리를 문다.

<출처 : PIXABAY>

모방 욕망이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에 대한 싸움이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한 싸움과 서로 교차하며 상호작용한다. 그것은 우리의 주의를 두터운 욕망에서 얕은 욕망으로 돌린다. 평등을 향한 욕망이 모방 욕망에 의해 이용당하게 되면 우리는 그저 상상적이거나 피상적인 차이만 보게 된다.

우리는 파괴적인 욕망 사이클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자체로는 치명적인 일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치명적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희망을 품지 않기 때문에 타락하고 정체되었다. 희망은 (1) 미래 (2) 선 (3) 성취하기 어려운 것 (4) 가능한 것에 대한 욕망이다. 네 번째가 중요한데, 욕망을 성취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희망을 품을 수 없다. 따라서 욕망할 수도 없다. 희망은 두터운 욕망이 자라는 토양이다. 비전을 품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소멸되어 간다. 

- < 너 자신의 이유로 살라, 루크 버기스 > 중에서


한 줄 요약 : 타인의 욕망과 나의 욕망을 구분 짓기는 어렵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게 진정 내가 바라는 것인지 우리는 좀 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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