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세정 Sep 25. 2022

TMI 하는 이유

사람 사는 이야기

TMI

한 달에 한 번씩 약속을 정해 먹는 그룹이 있다.  이제 둘째가 고3인 선배, 외동이 우리 둘째보다 한 살 어린 동생다. 주로 이야기꾼 동생이 주도를 한다. 나는 주로 듣는 포지션이었다. 그러다, 동생이 '엄마'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가 날 생각하는 건 알겠는데, 아, 진짜. 너무한 것 같아. 1박 2일 속초 가는 데 가서 먹는다고 아침에 시장 가서 복숭아를 한 박스를 사 왔다고."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상한 거 안 넘겨서 다행이지, 뭐. 우리 엄마는 상한 거 줘."라고 말이 나왔다.


아! 또 실수했네. 요새 내가 그렇다. 누가 지나가다 슬쩍 찌르기만 해도 터진다. 여기서 멈춰야지. 지난번 합평회 때는 나도 모르게, TMI 내 이야기를 해서 멤버들이 부담스러울까 걱정이 되었다. 새벽까지 잠도 못 자고 고민하다, '어쩌겠어. 지나간 거,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하고 넘겼다.


살만 해진 건가?


다짐은 이렇게 하지만, 번번이 내 의지를 벗어나 말이 툭 나가버린다. 애초에 굳은 의지가 아니었던 건지, 아니면 쌓인 화가 많은 건지 모르겠다. 사촌언니는 요새 형부가 그렇다고 한다. 그 전에는 잘 받아주다가 시어머니한테 버럭 화를 낸단다.

언니가 "일부러 나 들으라고 그러는 거 아니지?" 농담 삼아 물어보면, 당신과는 상관없는 나와 엄마와의 문제라고 한다. 이 나이 때가 그런 걸까? 남편은 내가 한 달에 2번은 장모님과 싸우는 것 같다고 한다. 여적지 잘 참다가 난 70이 넘은 노인에게 이리 화가 나는 걸까? 이 보다 더한 일이 얼마나 많았는데, 왜 못 참는 걸까? 이리저리 사느라 치였다가 살만해지니까 생각이 많아지는 걸까?


원래 그랬다.


싱가포르 동생이 톡을 보냈다. 별일 없냐는 말에, "응, 잘 지내. 고민하던 게 있었는데, 잘 마무리됐어."라고 답 톡을 보냈다. 동생은 무슨 일인데?라고 물어봤고, 최근 있었던 사건을 주저리주저리 말하기 시작했다.

동생은, "언니는 그때도 다른 사람에 대해 지나치게 경계를 안 했어."라고 말했다.

그때도 TMI였나 보다.


도대체 난 그 사람 뭘 믿고 그리 내 이야기를 해대는 걸까? 상대방이 듣고 싶어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데? 하기야, 말 안 하고 그냥 눌렀으면, 진작에 화병이 나도 났을 거라는 생각도 한다. 내 정보가 어떻게 쓰이던 말던, 난 그냥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조심성이 없는 건지, 안 그러면 터질 것 같아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


난 부당하다 느꼈다. 이 감정 그대로 이해받고 싶었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이 말이 듣고 싶었다.

'당신이 옳다.'에서 정혜신은 자신의 존재가 이해받았을 때, 안정감을 확보한다고 했다. 나는 불안했다. 어떻게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 누가 나에게 이리 말한 것도 아닌데, 내 속은 내가 안다. 내 시커먼 속이 무서웠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당연한 거야, 그럴 수 있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따뜻한 위로였나 보다. 그 말이 듣고 싶어 그리도 많이 TMI를 떠벌리고 다녔나? 이 역시 인정 욕구인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대체 뭘 믿고? 그러는 거니?

<출처 : Pixabay>
자기 존재가 집중받고 주목받은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확보한다. 그 안정감 속에서야 비로소 사람은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하다. 노인이 보였던 뜻밖의 합리성도 사실은 자기 존재가 주목받은 후에 생긴 내면의 안정감에서 나온 것이다.
<출처 : 당신이 옳다, 지은이 정혜신>

한 줄 요약 : TMI를 떠드는 사람은 마음이 불안하다. 불안한 마음을 사람이 아닌, 다른 데서 찾아보자. 뭘 믿고 네 이야기를 떠드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짝퉁 티셔츠를 입는 심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