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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채영 Oct 12. 2021

가장 기쁜 순간

새벽 걷기

   재작년부터 새벽 기상을 시작했다. 아이들 도시락을 싸거나 일정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새벽에 일어나기도 했지만, 자발적으로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밤늦게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올빼미라서 매일 새벽 네다섯 시에 일어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며칠 흐름이 끊기면 다시 올빼미 생활도 돌아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점차 새벽의 맛을 알아갔다. 새벽의 신성한 공기와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갔다.새벽은 장미꽃잎이 떨어지는 시간이라고 했던가. 참 우아하고 멋진 시간이다.

   

   올해 6월부터는 걷기를 시작했다. 평소 걷기를 좋아했지만 운동으로 꾸준히 하기는 처음이다. 5시 알람 소리에 일어나 운동복을 입고 물 한잔을 마신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집을 나선다. 이른 시간이라 거리에는 차도 사람도 거의 없다. 시끌벅적 붐비기 전 한산한 거리의 이른 아침 속을 걸어간다.


  그렇게 동네 천변으로 가면 이미 운동 나온 분들이 많다. 같은 시간을 함께하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진다. 그동안 내가 흘려보냈던 시간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구나! 우리는 정말 자기만의 세계 속에 사는구나 싶어 진다.

   보통 한 시간 사십 분 정도 걷는다. 매일 하다 보니 나만의 거리와 루틴이 생겼다. 나무 길을 쭉 걷다가 오르락내리락하면 다시 나무 길이 나온다. 그러다 천변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또 걷는다. 수변 무대가 나오고 계단처럼 앉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나만의 터닝 포인트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스트레칭을 한다. 저 멀리 산이 보이고 하늘 높이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 마음이 시원해진다.

   고개를 들어 목을 뒤로 젖히면 예쁜 초록 잎들이 가득 보인다. 항상 같은 장소에 가지만 날씨에 따라 시간에 따라 자연의 모습은 늘 다르다. 비 오는 날, 햇빛이 쨍한 날, 새들이 지나는 풍경, 항상 비슷한 장소에 있는 고양이들. 매일 같지만 매일 다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바람 내음, 매일 조금씩 다른 날씨를 온몸으로 느끼며 스트레칭한다. 그리고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며 룰루랄라 기분 좋게 걷는다.

   나무, 바람, 새, 고양이, 길가의 이름 모를 풀꽃과 지나는 사람들. 그런 것들을 보는 자체로 잔잔한 기쁨이 차오른다. 진정한 기쁨은 어떤 대단한 것에서 온다기보다 순간의 자연을 느낄 때 찾아온다. 불어오는 바람결에 계절을 느끼는 그 순간, 마음에 평화로움과 행복이 차오른다. ‘아!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구나’를 새벽 걷기를 하고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가족들이 무언가 잘하고, 내가 목표한 바를 이뤄내고 등 일상에서 느끼는 기쁨의 종류는 다양하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기쁨이라면 새벽 걷기다. 잠시 멈춰 서서 불어오는 바람결을 느끼고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그 순간에 비할 수 없다. 그 순간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함께 호흡하는 느낌이 든다. 자연에 폭 안겨서 토닥임을 받는 기분이 든다. 잔잔한 평화와 스며드는 행복감에 기쁘다.


   바람결에 사각대는 나뭇잎 소리, 날갯짓하며 하늘을 나는 새들, 물가에서 물질을 하는 청둥오리의 모습에 나란 존재가 담긴다. 나에게 있어 최고로 기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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