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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채영 Mar 12. 2024

낭만과 분위기에 잘 취하는 편

신당동 주점




비 오는 화요일,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비가 주는 낭만이라면 우산을 쓰고 걷는 사람들, 물기 머금은 아스팔트, 물감을 푼 듯 불빛이 내리깔린 거리, 내리는 빗소리, 동그랗게 퍼지는 빗물들, 수채화 같은 풍경,  진한 유화 같은 밤의 모습.


맑은 날의 쨍한 가벼움과 대비되는 흐린 날의 무게와 가라앉은 공기가 주는 차분함.


주말에 갔던 신당동 시베. 오늘 같은 흐린 날 가면 더 좋을 듯. 나무로 만들어진 문 앞걸린 그림이 비 오는 날의 낭만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어떤 분위기일까 약간의 기대감을 갖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생각과 달리 깔끔하고 모던한 일본식 주점이 펼쳐졌다. 얇은 유리잔이 클래식하고 예뻤다.  논알코올 모히또 데운 사케 그리고 아기자기하고 뜨끈한 음식.





아직도 그러니까 이 나이 먹도록, 술을 제대로 취하도록 마셔본 적이 없는 나는 술이 아닌 분위기에 취한다. 술이 주는 느슨함과 나른함은 몇 모금이면 족하니까. 애초에 알코올을 못 받아들이는 신체라 어쩔 수가 없다. 한때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이해해 보려 어떤 기분이기에 그리들 좋아하는지 느껴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에든 취기를 느끼면 되니까 난 계속 분위기와 낭만에 잘 취하겠다.


친구 H는 미식가인 데다 술도 어느 정도 하고, 아니 잘 마시지만 무리하진 않는다. 특히 못 마시는 나에게 강요도 안 하니 같이 다니면 참 좋다. 그녀가 말했다. 음식마다 어울리는 술이 있는데 그렇게 한두 잔 하는 게 좋다고. 일본 드라마를 즐겨보는 그녀는 음식과 술에 대한 일상적 이야기들이 재미있다고 했다. 평범한 직장인이 퇴근 후 자신이 만든 음식과 어울리는 술 그리고 어울리는 술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내용. 음식에 잠깐씩 곁들이는 술은 좋다. 미각을 살려주니 음식의 풍미와 재미를 높여주니까.


비가 오는 날, 나만의 낭만을 찾아봐야겠다. 삶의 맛과 풍미를 올려줄 나만의 재미와 의식들을 하나씩 만들고 모아가야지. 소소하지만 큰 행복을 빗소리를 들으며 즐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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