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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채영 Dec 23. 2021

내 밥을 챙겨주는 사람

"밥 먹었어요?"

밥심이라는 말이 있다. 밥이란 말만 들어도 왠지 힘이 나고 든든해진다. "밥 먹었어요?"라는 인사치레라도 서로의 안부를 물어주는 것은 작은 보살핌의 표현이다. 그걸 알기에 사람들은 "나중에 밥 한번 먹어요" 라거나 "맛있는 거 사줄게요" 등을 관용적으로 쓴다.


인간에게는 원초적 욕구가 있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먹는 것, 자는 것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알게 되었다. 이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면 사람이 얼마나 피폐해지는.


더구나 엄마, 아내란 역할을 하면서 늘 가족들의 밥을 챙기면서 정작 내 밥은 누가 챙겨주는 사람이 없단 사실에 마음 깊숙하게 때때로 밀려오는 고뇌와 슬픔이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땐 내가 아파도 식구들을 위해 밥을 해야 했다.  밥은 늘 내가 만들어냈으니 성인인 남편 이렇다 할 따뜻한 집밥을 제대로 차려내지 못했다. 그는 자라는 동안 해본 적도 없었고 결혼 전엔 본인의 엄마에게, 결혼해서는 내가 늘 차려준 것을 먹으니 상황을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매일 누군가의 끼니를 고민하고 살피고 챙기는 사람은 그 역할이 너무 당연해져 버려서 아내나 엄마의 끼니는 누구도 물어봐주지 않는다. 우린 늘 물어봐주는 사람이니 이것도 그럴만하겠다 이해를 하면서도 씁쓸하기 그지없다.


오늘은 남편이 집에서 오전 근무를 하고 좀 늦게 출근을 하는 날이다. 온라인 수업을 하는 딸 점심을 생각하다 혹시나 해서 남편에게 점심은 먹고 가는지 어떻게 하는지 물었다.


"약속 있어."


약속 있다는 그 무미건조함에 '늘 그렇지' 싶다가도 '어쩜 저럴까' 싶다. 에 몰입해있을 때는 그렇다 해도 24시간 몰입도 아닐 텐데 그 무심함이 아내들을 뿔나게 한다.


"나도 오늘 점심 약속이 있어"


하니 그제야 누구 만나냐 묻는다. 집에 있는 아내의 점심도 1년의 한 번이라도 좀 먼금해주면 안 될까? 최소한 아내들이 남편의 밥을 물어봐줄 때라도 말이다.


 "난 약속 있어. 너는 오늘 점심 어떻게 해?"


 이 말이 그리 나오기 어려운 말이란 사실에 우리가 정작 해야 하고 필요한 말은 그리 대단한 말이 아니구나  깨닫는다.




결혼하고 첫째를 임신했을 때나  아이 둘을 키우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 원초적 욕구를 참아야 했던 순간이었다. 혹은 감기몸살에 걸려 아파도 가족들을 위해 끼니를 만들어야 했던 일들이었다. 해외에 오래 살았기에 더욱 그랬다.


내가 섭섭하다 하니 어느 날은 남편이 죽이라고 밥에 김을  풀어 만들어줬던 적도 있었지만 정성이랍시고 맛도 없는 걸 먹는 것도 고욕이었다. 그럴 땐 차라리 맛있는 죽을 사 오는 편이 낫다. 이런 걸 일일이 알려줘야 하는 사람이니 이젠 내가 사다 먹고 힘들면 배달을 시켜먹는다. 세상이 좋아졌다.


식당 사장님의 끼니는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는다. 우린 당연히 돈을 내고 먹으러 가니 만들어주는 이의 끼니는 관심조차 없다. 대게 식당 하시는 분들은 손님이 없는 시간에 급하게들 식사를 한다. 집에 살림하는 엄마나 아내도 때때로 마찬가지다.


엄마나 아내가 식당 주인은 아니다. 때때로 가족의 일원으로서 아내의 밥을 한 번쯤 물어봐주면 그보다 좋은 이 있을까 싶다.


남편 같은 '아재'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너무 큰 기대일까 싶지만 그도 언젠가 퇴직을 하고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안일을 하는 시간이 늘어날 거다. 그때 본인 밥을 직접 만들고 가족들의 매 끼니를 고민해보면 그제야 알려나 싶다.


그땐 내가 매일 그래야겠다.


"나 약속 있어"




쓰고 나서

+그런 '엄마'여서 우린 내 밥을 챙겨준 엄마에게 늘 찌릿한 감정이 드는 거겠다 싶다. 또 나 역시 엄마의 끼니를 얼마나 물었던가 반성하게 된다.

+ 맛난 음식을 먹으러 가서 돈을 지불하지만 어쨌든 누군가를 위해 그 따끈한 음식을 만든 사람에게 늘 마음 깊이 감사하며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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