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온도 영하 17도에서 살아남기
세상 사람들은 이 추위에. 하루종일 밖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우리 삶의 곳곳, 건설현장의 펜스 안에는 추위를 딛고 하루를 사는 이들이 있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울 것이라 예보되었던 1월 9일. 팀원 27명 중 7명이 결근했고 전날 “아침에 눈떠서 옥상 가서 담배 한 대 피워보고 출근할지 생각해 볼게요..”라는 형님까지 있을 정도로(이 형님은 결국 출근), 모두들 날씨에 예민한 이들이 웅성웅성. 출근해서 옷 갈아입는 컨테이너에서 가장 나이가 가까운 한 형님은 “악마의 속삭임(출근 안 하겠다는 카톡을 올리겠다는)을 이겼어!!”라며 하루 인사를 전하시네.
암튼, 올 겨울 가장 추운 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루종일 밖에서 일하는, 옥외작업을 하는 우리 직업의 특성은 혹서기와 혹한기가 정말 힘들다. 겨울은 옷을 입으면 되지만 손발이 시린 건 어찌할 수가 없다. 다행히 최근에는 핫팩과 발팩이 많이 보급되어 그나마 손발 시림을 막을 수 있는데, 영하 10도에 칼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난 겨울이 되면 나름의 작업복을 입는 기준이 있는데, 영하 5도가 넘으면 발팩을 하고 현장 은어로 스즈키라 부르는, 상하가 일체로 된 정비복 같은 옷을 입는다. 생각보다 정말 따뜻하다. 거추장스럽고 움직임이 느려지지만, 일단은 살아야 하니까.
am 6:50. 조회를 하러 현장작업자들 모두가 모였다. 조회 시작 직전에 원청에서는 핫팩을 나누어주고, 무엇보다도 하루에 1개씩 주었지만 오늘은 날씨 때문인지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고. 사람들은 50분이 넘자 우르르 나와서 핫팩을 챙기고, 갑자기 센 바람이 쌩 부니 “오~”하는 탄식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가 여러 사람에게 쏟아진다. 여하튼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었다. 친한 형님과는 “시작이 반이고 출근했으니 반은 한 거예요”라고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며 작업을 시작.
오늘 작업은 저수조와 정화조 사이에 좁은 구간에 목재거푸집을 짜서 못질로 고정을 하는 작업으로 시작인데, 물먹어서 온 나무는 꽁꽁 얼어있지, 못질할 곳은 높으니 몇 번을 못이 튕겨져 나간다. 안 그래도 맞추고 잡기에 자세도 안 나오는 공간인데. 역시나 작업시작 10분도 안되어 손은 얼었고 핫팩을 꺼내 잡고 손을 호호 분다.
매일 아침 7~9시가 가장 추운 시간, 이 시간만 버티면 해가 뜨고 조금 견딜 만 하지만, 오늘은 이전에 추운 날보다는 손을 녹이는 횟수가 잦아진다. 다만, 절대적으로 추운 것을 견디게 해주는 것은 사람이 주는 온기인지,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이런 날은 “내 노가다 인생 가장 추웠던 날”에 대한 이야기를 중간중간 나누며, 들어주고 공감하고 망치질하며 하루는 또 간다.
어쨌든, 없는 일 있는 일 짜내어 일하다 오전을 일하고 나서야 집에 가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모두들 밥 먹고 들어가게 되었다. 아침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현장 게이트 쪽으로 옷을 갈아입고 집에 가는 일군의 무리가 보였는데, 옆 공구 단종회사는 조회만 하고 모두 집에 가기로 했단다. 그럴 거면 출근하라고를 말지. 우리 공구의 옆팀도 9시가 되어 집에 들어갔다. 물론 이렇게 춥더라도 회사가 필요하면 일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집에 가는 것. 당장 필요한 일들을 우리 팀이 하게 되어 오전까지 우리는 일한 것이다.
온몸을 버프와 두꺼운 옷, 핫팩과 발팩으로 무장하고 아침을 버티고 해가 뜨니 일을 할만하기는 하더라. 오전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도, 곳곳에는 점심을 먹고 현장에 복귀하는, 또는 옷차림만 봐도 현장일을 할 것 같은 이들이 속속 눈에 들어온다. 세상 누구에게나 그러하겠지만, 특히 사고가 많고 위험한 우리에게 안부를 묻는 인사는 ‘건강하세요 ‘, ’ 안전작업하세요 ‘다. 일자리가 부족하고, 현장의 노동환경이 안 좋아지는 추운 계절에, 현장에 있는 수만의 사람들이 안녕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