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안전교육장의 풍경, 혈압

혈압을 못 넘기고 집에 가는 수많은 이들을 봐오며

by 김목수

오랜만에 새 현장으로 들어가는 날, 필요한 공구들과 작업복을 챙겨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11월 말, 서울에 첫눈은 '이거 첫눈이 맞아?'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눈이 내렸고, 몇 걸음을 걸어가다 눈을 한 번씩 털며 버스를 타고 내려 현장으로 향한다. 현장에 도착하니 시간은 아침 6시. 함께 들어가기로 한 형님들은 폭설 때문인지 먼저 현장 게이트를 지나 안전교육장으로 들어가셨다한다. 현장 앞을 지키고 계신 경비노동자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신규채용으로 왔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현장으로 들어간다.


현장으로 새로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일들이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은 배치 전 검사를 받아야 한다. 업체에서 정해준 건강검진 기관에 가서 검사를 받고, 그 다음날 현장으로 가 안전교육을 받은 뒤에 현장으로 투입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129조부터 몇 조 간의 항목에 걸쳐 건강진단과 건강관리에 관한 부분을 담고 있는데, 건설노동자들은 특히나 위험한 환경에 많이 노출되므로 배치 전 검사와 현장에서 이뤄지는 건강검진, 작업환경측정 등을 보장하고 있다. 건강검진이나 작업환경측정 등이 현장노동자들에게 필요한 부분 대로 되어야 하는데, 물론 법의 취지는 근로자의 보호지만, 이것은 사고가 났을 때 "우리는 이런 것을 지켰어"라는 회사를 위한 명분이 되기도 한다. 물론 어떤 의견과 상관없이 그 자체로 당사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제도가 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6시 40분 즈음이 되자, 각 단종(시공업체) 별로 오늘 안전교육 인원을 확인하기 시작하고, 현장에서 지켜야 할 각종 서약서를 작성하고, 근로계약서까지를 작성한 후에 현장이 몇 개 동을 짓고, 어느 정도의 공사규모, 현재의 작업공정, 업체 별로 필수적으로 지켜야 하는 안전수칙 사항 등의 현장 개요를 이야기해 주고 안전교육은 끝이 난다. 이렇게 끝나고 작업을 투입하면 아무 상관이 없는데, 때때로 일을 하러 온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바로 혈압 때문이다.



매번 첫 출근마다 가장 떨리는 순간

회사에 제출하는 이런저런 서류들 뒤로, 혈압을 측정치가 인쇄된 종이를 붙여야 한다.

혈압. 혈압 하면 할 이야기가 정말 많은데, 이것이 가장 현장 작업자의 새 현장 투입에서 가장 넘기 힘든 관문일 것이다.


몇 년 전, 하남으로 배관일을 하러 갈 때로 기억한다. 사람들은 모두 긴장되는 마음에 혈압측정기에 자신에 팔을 넣어보기에, 나도 안전교육이 시작되기 전에 한 번씩 해보았다. 같이 가셨던 형님이 "그것 좀 줘봐라"하시며 가져가시고, 하나씩 두 개씩.. 여러 개를 챙겨가신다. 난 그때도 지금도 혈압이 이완기-수축기가 80-120 근처로 나오는 터, 참 좋은 수치지. 형님들의 걱정을 잘 모르기도 했었고 그냥 달라는 대로 잘 떼어드렸다. 몇 개 현장이 지나며 혈압 때문에 집에 돌아가는 사람, 내과의원에 가서 "건설현장 근무 이상 없음"이라는 소견서와 혈압약을 타러 가는 수많은 사례를 보고 나서야 그때 형님들이 왜 내 수치표를 가져갔는지 알게 되었다. 최근에는 추세가 강화되어서인지, 원청 관리자가 혈압 측정을 할 때 옆에서 지키고 서서 보고 있다! 완전 빼박이지. 예전처럼 측정지를 바꿔치기하거나 그런 건 할 수가 없어. "서류 작성하신 분들은 순서대로 혈압측정하세요"라는 안내가 들리면 이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는 이들처럼 사람들이 하나둘씩 혈압을 측정한다.

여러 사람들에게 "아.. 오늘 참 높게 나오네"라는 탄식이 들려오고, "다시 하세요", "물 한잔 드시고 다시 하세요"하는 관리자들의 안내가 들린다. 공교롭게도 함께 같은 팀에 투입하는 형님도 연거푸 수치를 넘기고 말았다. 바로 직전에 일하던 현장은 수치가 넘기면 그냥 집에 보내버렸는데, 그래도 이 현장은 조금 여유로운 편이다. 수치가 많이 높게 나오신 분들은 병원에서 소견서를 떼오라 하고, 약간 넘긴 분들은 며칠 동안 다시 측정해 달라고 한다. 그래, 이 정도면 된 거지. 전에는 집에 보내는 장면들을 꽤 보면서 야멸차다 느낀 적 여러 번 있었는데. 어떻게 일하러 온 사람을 집에 보내냐는 문제인식과 함께.


오늘 함께 안전교육을 받은 사람은 20명이 조금 안되었는데, 결과적으로 3분 정도 수축기 150mmHg가 넘게 나와 끝내 완료를 하지 못했다.


현장에서는 "가봐야 아는 거지"라는 무언의 격언이 있다. 새 현장 어디 나온다고 해도 끝내 들어가서 안전교육받고 근로계약서 써야 들어가는 거고, 일용직인 우리의 삶이 변동이 너무나 심하니까.

오늘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끝내 일을 시작하지는 못했다. 일까지 시작해야 완전히 들어온 건데. 그래도 7할 이상은 들어왔으니까. 이번 현장에서는 어떤 이들을 새로이 만날까 궁금함을 품고 집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