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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바늘 꿰매고 맞이 한, 산재 노동자의 날

내가 산재은폐의 당사자가 될 줄이야

by 김목수

미칠 전의 일이다. 층고로 인해 곳곳에 매져있는 시스템 동바리 지주가 기둥 거푸집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매는 밴드(엘라)와 겹치는 곳에서 지주를 제끼고 밴드를 겨우 채운 뒤에 제낀 지주를 다시 원상복구하는데, 아뿔싸. 밴드의 뾰족한 돌림쇠와 지주를 잡고 있던 손이 부딪쳐 왼손 4번째 손가락 첫째 마디가 찢어졌다. 순간 손에서 뜨거운 기미가 느껴졌고, 피가 꽤 흐르기 시작한다. 4바늘을 꿰매었다.


회사가 요구한 사고 당시 재연. 이렇게 손가락이 꼈어.



상처에서 나온 피, 그 뒤로는 모두의 상처의 기억들이 흐른다


오랜만에 크게 다친 사고였다. 지난 6년 동안 건설현장 일을 하면서, 1년에 한 번 정도는 크게 다칠 뻔한 일들이 있었다. 내 앞에서 쌓여있던 시스템 비계발판 더미가 쏟아져 깔릴 뻔한 일도 있었고, 그라인더에 손을 썰뻔한 일도 있었고, 7m 높이에서 보 거푸집을 걸다가 비계 아래로 쑥 떨어질 뻔한 일도 있었다. 최근에는 대형거푸집(야기리)을 걸다가 상부에 있던 파이프가 떨어져 맞은 적도 있었고(파이프만 맞은 게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파이프가 떨어지며 거푸집이 무너졌으면 대형사고가 날 뻔). 뭐 이미 내 정강이는 철근에 찔리고 긁힌 검은 상처 투성이(우리는 반바지를 잘 입지 않는다).


내가 겪은 일만도 이런데, 눈으로 보고, 듣고, 주변 이들이 이야기해주는 것은 더하다. 불과 최근에도 지난 현장과 이번 현장 모두 타워크레인 양중을 하던 작업자가 인양로프에 손이 말려들어가 타워와 함께 공중부양을 한 일도 있었고, 하루에 1명씩 사고로 죽는 건설현장,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 알림 톡방에 터지는 사망사고들, 그리고 형님들과 친해지면 나눌 수밖에 없는 사고의 기억들. 모두의 아픔이 다가오는 것은 더 큰 고통이다.


"4바늘 꿰매었어? 나 현장에서 떨어진 거에 맞아서 스무 바늘 꿰맸어."

"이 상처는 드릴에 장갑이 말려 꿰매었던 거야."

"난 30년 동안 현장에서 사람 죽는 거 1년에 한 번씩은 본 것 같다. 하루는 보 위에서 사람이 떨어진 곳에 나에게 일 시키는데, 왜 떨어졌는지 알 것 같더라."


형님들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지난 기억들이 숱하게 떠오른다. 일하다 다친 것 때문에 3,4개월씩 쉬어본 일 있다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손가락으로 셀 수가 없다. 이 일을 하면서 불문율과도 같은.



산재? 공상? 당연히 산재하는 걸로 알고 있지. 근데 현실은..


노동조합에서 노동안전부장으로 잠시 일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직접 조합원들의 요양급여신청서를 썼던 적도 있고, 다친 문제를 회사가 왜곡하려 하면 직접 찾아가 사실관계를 따지고 산재승인을 도운 적도 있고, 산재사망사고의 피해자를 조력하는 일도 해본 적이 있었다.


현장에서는 산재처리가 쉽지 않다. 당연히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현장에 산재처리보다는 질끈 참고 일해서 생산성을 내야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기본으로 깔려있고, 일용직인 노동자들은 3개월이 안되면 휴업급여 계산 시에 통상임금 70%에 통상근로계수 0.73(일용직이 1년에 다른 노동자 대비 73%가량 일한다는 추산에 따라)을 곱하다 보면 실질적으로 일당의 51% 정도밖에 못 받아 돈문제가 걸린 노동자 당사자가 산재처리보다 공상을 통해 돈을 더 많이 받고자 하는 점도 있고. 회사는 이제는 PQ(사전입찰심사)에서 산재가 영향을 안 받지만 원청(종합건설사)의 눈치를 받는 우리를 채용한 전문건설업체 들은 산재처리를 피하려 하고. 이런 점이 다양하게 짬뽕되어 산재는 늘 은폐되곤 한다. 노동조합에서 산재에 관련한 상담을 받을 때, 나이가 많으셔서 회복이 느리거나, 또는 상병기간이 길거나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을 때는 무조건 산재를 하라고 말씀드려도 결국은 당사자들의 선택은 그러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갈라진 살점을 꿰매고 돌아오는 길, 뭐 지금이야 일반팀에 일하고 있고 처우나 이런 걸 내가 협상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사정은 파악해야 하니 함께 병원에 간 안전관리자와 이야기를 나누니, 여전히 똑같다. 이 현장도 이전에 산재처리가 2건 있었고 산재를 안 했으면 하는 눈치. 꿰매고 푸는 데까지는 2주가량 걸리는데, 솔직히 돈보다도 안정적으로 낫고 나서 망치질하고 싶은 마음에 산재처리를 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음을 느낀다.


돌아와서 팀장님 역시, 하루 이틀은 유급으로 쉬고 나머지는 나와서 쉬엄쉬엄이라도 일하라는. 평소에 워낙 젠틀하신 분이고, 늘 일자리를 찾아다니며 얼굴을 붉힐 수 없는 관계기에 나도 무슨 말을 할 수 없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내 잘못으로 다쳤잖아.."라는 생각은 더 무슨 말을 못 하게 하고. 실은 나의 잘못만은 아닌데. 우리는 그냥 이런 현실에서 일하며 언제나 다치는 사람들인데..



망각과 꿈의 사이에서


아무튼 이와 같은 사정들로 산재신청을 하지 않고 적당히 일당과 치료비를 받는 정도로, 나도 산재은폐의 당사자가 되었다. 이렇게 상처와 함께 나의 삶의 한 페이지에 형님들이 수없이 겪은 일들을 아로새기는 걸까. 얼마 전 동료들과 나눈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렇게 시시껄렁한 이야기 하지 않고, 웃지 않으면 제정신으로 어떻게 버텨."


수많은 망각과 고통 사이로 나의 꿈이 스러지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해본다.

마치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 천박한 자본주의의 유지를 위해 바쳐지는 제물처럼, 어떤 이들은 주기적으로 갈려나가고 죽고 다쳐야 하는 이 현실을 바꾸고 싶은, 내가 가진 꿈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잊히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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