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 아픈 머리로 건설현장의 여름을 기록하기
나는 형틀목수다. 목수의 역할은 건물의 골조를 올리는 작업 중 거푸집을 만들어 건물의 모양을 잡는 일이다. 거푸집 재료들을 조립하고, 나무로 짜서 만들고, 타설할 때 콘크리트의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거푸집을 단단하게 보강하며, 건물을 최대한 반듯하게 올리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허리춤에 맨 망치걸이에는 망치와 시누가 걸려있고, 못주머니에는 자주쓰는 90mm못, 50mm못과 웨지핀 등 이 들어있어 마치 삶의 무게처럼 우리의 어깨를 ‘기본적으로’ 누르고 있으며, 무거운 자재와 씨름한다.넘어지고 긁히고 다칠 위험 가득한 현장에서 하루의 성과물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그럼에도 난 이 일이 참으로 멋진 일이라 생각한다. 일단 자신의 실력과 노력에 따라 하루의 일을 완성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꽤 보람있는 일이며,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해야만 계속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긴 시간의 경험을 가진 기능공 선배님들과 함께 일하며 삶을 대하는 태도와 소양을 배울 수 있었던 지난 시간은 내게 하나의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자존을 높여주었다.
지붕이 없는 사람들의 여름
형틀목수를 비롯하여 수많은 건설노동자들에게 다양한 수식어가 붙을 수 있겠지만, 더운 여름을 대하는 우리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표현 중 하나는 바로 ‘지붕이 없는 사람들’이다. 건물을 올리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에게는 지붕이 없다. ‘하늘을 지붕 삼아’라는 말은 그저 시적 표현일 뿐, 한 여름이 되면 햇볕을 맞고 일하는 건 어지러움과 메스꺼움 뿐만 아니라 때때로 심각한 온열질환을 겪을 수도 있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한낮이 되면 뜨거워지는 쇠로 된 자재들, 콘크리트 위로 올라오는 복사열은 우리를 괴롭힌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무더위에 잠시라도 밖에 있는 것을 힘들어하는데, 알고는 있을까. 곳곳에 보이는 현장의 펜스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더위와 씨름하며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여름이 시작됨과 함께, 우리들의 하루는 보통 얼음물과 보냉용품을 준비하는 일로 시작된다. “경추 온도가 1도 내려가면 온열질환을 막을 수 있지”라며 나의 짝꿍 사부님은 목에 감쌀 넥쿨러를 여러개 보냉백에 챙겨오신다. 아침7시, 조회시간의 체조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이미 땀구멍은 가득 열려 작업복은 젖은 채로 일과가 시작된다.
아침 9시 정도까지는 일하기가 괜찮다. 작업하는 곳곳 세운 벽체들이 동쪽에서 오는 볕을 막아주는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해가 중천에 떠있다. 아뿔싸, 오늘은 최고기온 37도가 예보되어 있는 날인데, 며칠 전과 비교하면 오후 1시 이후는 되야 체감될 더위가 오전부터 느껴졌다. 일하는 중 물을 찾는 횟수는 점점 늘어나고, 오전 10시가 넘어서자 현장에서는 1시간에 10분 휴식하라는 공지를 내렸다.
39도, 7월 초순 118년만의 최고 무더위라니
점심시간이 되자, 철근공들이 오전근무로 마무리하고 집에 가기 시작한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다시 작업을 시작하자 옆에서 일하던 시스템 팀에서는 더위를 버틸 수 없어 7명이나 오전 작업을 마치고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지붕이 없는 모두가 결코 피해 가기 힘든 날씨다.
오후 3시가 넘어가니 어느덧 온도는 39도를 넘어섰다. 모두의 발걸음은 느려지고 눈 위로는 땀이 뚝뚝 떨어진다. 오늘은 버텼지만 덥고 더울 7,8월 두 달을 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해마다 올해가 가장 뜨거운 날이라던데. 아버지의 책임감만으로 출근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나를 엄습해온다.
이 더위를 이기는 사람들을 위하여
집에 가는 길, 이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의 통화에서는 오후에 그냥 집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작년에 일했던 현장은, 혹서기에는 아예 오후 작업을 시키지 않아 월급이 적었다. 내일은 도저히 오후에 일이 안될 것 같다. ‘작년처럼 7·8월에는 손가락을 빨아야하나’라는 생각이 밀려온다. 더위는 심각하게 다가왔지만, 건설경기 침체와 고용불안 위기에 찾아온 무더위는 나의 삶을 걱정하게 만든다. ‘악천후 수당’ 같은 구조적인 방법은 논의조차되지 않고 당장 다가온 더위에서 노동자들의 삶을 규율하는 최저기준인 ‘2시간에 20분 휴식’이라는 안은 규제개혁위원회 앞에서 좌초되고 있다. 더위가 시작되자 한 이주 건설노동자가 숨졌다는 이야기를 뉴스로 접한다. 제도적 규율의 지연은 안 그래도 안전관리에 취약한 소규모 현장 같은 곳에서는 더 많은 참변으로 이어질 것이다. 해결의 때가 미뤄질수록 건설노동자들에게 현장에서의 ‘개인건강관리’나 ‘보호구 착용’같은 자발적 노력만 강조하며 끔찍한 더위앞에서 개인의 고통 가중은 계속될 것이다.
한껏 지치고 고단한 퇴근길에도 겨우 동료들에게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것은, 이런 무더위에도 하루를 이겨낸 이들에 대한 경외의 마음에서이다. 이 대단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노력에 걸맞는 대접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그리고 나의 삶도 나아질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은 '월간 작은책' 8월호에 게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