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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바제인 Oct 06. 2022

1. 서울이 힘든 남편

그리고 페이스북에 빠진 스님


지난 오월, 전 세계가 판데믹의 악몽에서 서서히 깨어나려 할 무렵 우리는 열한 시간 반의 비행 후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보통 같았으면 열 시간 반이 걸리는 여정이지만 독일 미디어에서 수시로 듣는 그 소식 때문에 러시아 영공을 우회하느라 지체된 터였다. 하지만 한국은 한국이다. 인천공항에서 벗어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워낙 짧았던 터라 우리는 예상외로 제시간에 공항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벌써 한국에 다섯 번째 방문한 남편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감탄사를 날리기 시작했다.  

“아니 어떻게 짐이 사람보다 빨리 나올 수 있어? 정말 한국 공항의 효율성은 놀라워!”


남편이  말은 꾸밈없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할 때마다 입국 수속을 받고 짐을 찾는 과정을 거치면서부터 매번 독일에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한다. 특히 프랑크푸르트 공항 입국 심사대 풍경은 매번 속이 매스꺼워질 정도로 답답함을 유발한다. 그리고  줄이 길어지는  수속 처리를 하는 독일 경찰들의 여유로움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이제나 저제나 자기 차례가 오기를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 분명. 영주권이 아니어도 유럽 거주증이 있는 사람은 유럽 거주인 통로를 사용할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나도  줄에 서서 억겁 같은 시간을 견뎌야 했다. 결혼 후에 영주권이 나온 지금은 남편의 뒤꽁무니를 따라 빠르게 나오지만, 비거주 외국인들의 검은 머리카락을 보며 어딘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곳을 재빨리 나온다고 해서 독일에 빨리 입성할  있는 것도 아니다. 입국심사대를 통과한  공항을 가로질러 짐을 찾으러 가도 수화물이 나와있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달랐다. 짐을 찾으러 가는 길에서부터 나의 핸드폰은 이미 와이파이를 잡았다. 인터넷에 연결되자 핸드폰도 한국에 온 것을 실감하는지 숨 가쁘게 알람을 울렸다. “카톡! 카톡!” 일찌감치 공항에 도착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가 보내신 메시지였다. 삼 년 만에 만날 아빠를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해져 속도를 높여 뛰어 내려갔다. 무심코 다시 독일 공항의 일처리 속도를 떠올린 것이다. 하지만 우려와 다르게 짐은 진작에 나와 여유롭게 컨베이어 벨트 위를 돌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를 마주 보며 경탄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우리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던 것은, 입국 심사대를 지날 때까지 뒤에 있었던 같은 비행기를 탔던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수화물을 찾는 곳에는 먼저 도착해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우리를 제치고 한 발 먼저 짐을 찾은 후 또다시 빠른 걸음으로 공항을 벗어났다.




남편은 한국에 지내는 열흘 동안 여러  한국의 빠름과 효율성에 감탄하면서도 한국에   일주일도  지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눈치를 보이기 시작했다. 빽빽하게 사방으로 펼쳐져 있는 고층빌딩과 아파트 그리고  배경을 메우고 있는 매캐한 공기가 남편의 진을 빼놓았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오늘 우리 약속 때문에 강남에 가야 라고 전하면 그는 울상을 지으며 한숨을 폭하고 내쉰다.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한국에 왔을  일이다. 우리는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예약하기 위해 청담역 웨딩타운을 방문한  환승을 하기 위해 강남역에 가야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일정이 늦어져서 퇴근 시간의 강남역을 지나가야 했다. 퇴근길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에서 뿜어 나오는 매연과, 하나 건너 하나 있는 고깃집에서 나오는 연기는 청명해야  가을 하늘을 매캐한 노란색으로 바꿔놓았다. 게다가 퇴근하는 직장인들과 강남역을 배회하는 젊은이들은 인도를 그물에 한가득  정어리 떼처럼 차지하고 있었다. 남편은  걸음 못 가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어지럼증이 심해져 근처 카페에서 쉬어가야 했다. 따라서 나는  작은 시골 참새 같은 남편의 기운을 북돋우아 주려면 일정 중간중간 사람이 없는  그리고 자연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주가  되는 짧은 일정에 우리는 서울과 경기도를 벗어날  없었기에 아쉬운 대로 우리는 북한산에서 일박이일로 템플스테이를 하기로 했다.


템플스테이 장소는 북한산 중턱에 위치한  오래된 절이었다. 하지만 도시를 벗어나 산을 찾았다고 해도 한국의 자연은 독일과 매우 달랐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국의 자연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은 독일과 현저히 다르다. 간간히 나무에 등산로 팻말이 걸려있거나 페인트로 화살표를 표시해 놓은 것이 전부인 독일의 산과 달리, 한국은  초입에서부터 등산로를 안내해주는 지도는 물론 입구에 등산안내소가 있는 경우도 많다. 또한 독일에는 등산로 중간에 음식을  먹을  있는 곳이 거의 없지만(사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번도  적이 없다!), 한국에서는  초입에서부터 음식점과 카페가 줄지어 서있으며 등산로 중간중간에는 음료 자판기가 놓여 있기도 하다. 반면 독일의 산에선 인간이 만들어 놓은 구조물을 웬만해선 보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 간간히 쉬어   있는 벤치 정도는 있어도, 한국에선 십분 거리마다 놓여있는 공중 화장실을 보는 것은 독일에서는 상상도   일이다. 오히려 화장실보다는 몇백   지어진 성곽 혹은 폐허가  로마 시대 요새들을 찾기가  쉬울 정도이니 말이다. 따라서 독일과 같은 자연을 그리워했던 남편은 5m마다 보이는 인간과 문명의 흔적을 보며 실망한 눈치를 보였다. 그래도 그는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산을 올랐다. 도시를 벗어나는 것도 중요했지만 남편이 예전부터 원했던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산은 듣던 대로 산세가 굉장히 험한 편이었다. 가벼운 산행을 예상한 그는 초여름의 날씨에 청바지를 입는 우를 범했다. 분명 집을 나서기  그에게 옷을 갈아입는  좋을 것이라 조언을 해주었지만 남편은 쉽게 고집을 꺾는 성격이 아니었다.   시간 정도의 등산을 하니 남편은 몸은 땀에 흠뻑 젖어버렸다.   방울 오지 않은 곳에서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 있는 남편을 보니  말은 많았지만, 그의 성격을 알기에 나는 그저 옆에서 말을 아낄 뿐이었다. 나는 등산 내내  절에는 천년의 역사가 있으며, 한국 불교발전에 기여한 유명한 승려가 수행하기도  곳이다 하며 템플스테이를 기획한 나의 공로를 직접 치하했으나 그는 말없이 듣기만 했다. 하지만 도착한  앞에서 나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절은 보수공사 중이었고, 우리가 묵게  숙소 앞마당도 푸릇한 잔디가 아닌 마치 어린아이들이 쌓아  모래성을 파도가 휩쓸고  것처럼 군데군데 파헤쳐져 있었다. 승려와 절을 다니는 신도들 그리고 방문객들이 식사를   있게 마련한 공양간 또한 낡은 컨테이너 박스에 이것저것 재료를 있는 대로 가져다 이어 만든 판잣집과 다를  없었다. 템플스테이를 위한 숙소는 새로 지어진 듯했지만 대부분이 비어있었다. 방안에는 옷걸이와 이부자리를 제외하고는  하나의 가구도 없었다. 침대생활에 익숙한 남편이 불편해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는 오히려  낯선 공간이 꽤나 마음에   보였다. 템플스테이 의복을 입고 방바닥에 철퍼덕 앉아있는 남편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공양시간에 맞춰 공양간에 들어서니 안에는 이미 절에서 지내는 모든 이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판과 수저가 놓여있는  바로 앞에는 ‘공양  말을 삼갈 이라는 안내문구가 붙어있었다. 나는 음식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질문을 하는 남편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어 조용히  것을 알렸다. 남편은 벌써 체험이 시작된 것인가! 하는 비장한 표정으로 행여나 소리가 날까 조심하며 살얼음판을 걷듯 밥과 밑반찬을 조용히 식판에 담은  슬며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정적은 기대와 달리 주지스님에 의해 깨어졌다. 남편에 대해 관심이 많은   주지스님은 그가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슬며시 안내문구와 주지스님을 번갈아 쳐다보았지만, 배에선 선장이 왕인만큼 절에선 주지스님이 왕이 아닌가 싶어 이내 수긍했다. 안내문구에서 눈을   나는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는 남편을 대신해 주지스님과 남편 사이 오고 가는 말들을 통역해 주었다. 주지스님은 그런 나를 보며 통역사냐고 물었고, 나는 결혼한 사이라고 대답을 했지만 ‘물론 결혼을 했으니 평생 통역자가 맞긴 하다 너스레는 꼴깍 삼켰다.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들으신 주지스님은 이내 남편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다른 템플스테이 참가자에게로 질문 세례를 이어갔고 우리는 마침내 다시 찾아온 침묵 속에 공양을 마칠  있었다.


공양 후에는 20분간의 예배시간이 예정되어 있었다. 예배를 주관한 스님은 주지스님이 아닌 그 건너에서 말없이 공양을 하던 다른 스님이었다. 굉장히 과묵해서 혹여나 묵언수행을 하시는 것을 아닐까 했던 내 예상은 예배를 하러 대웅전(사찰에서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불교건축물, 주로 사찰 중앙에 가장 큰 건물을 의미한다)에 들어간 순간 깨지고 말았다. 스님 또한 남편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다시 한번 통역자의 의무를 다해야만 했다. 스님은 친절하게 절 안에 모신 불상들과 함께 읽을 경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어릴 적 엄마 손에 이끌려 절에 자주 다녔던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굉장히 익숙했지만 남편에게는 새롭고 또 놀라운 경험인 듯했다. 예배 참석자는 스님과 우리 둘 그리고 또 다른 참가자 하나, 이렇게 넷 뿐이었다. 그러나 예배가 시작되고 조용한 경내에 불경을 외우는 소리가 퍼지자 대웅전 안은 엄숙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로 가득 찼다. 나는 중간중간 통역을 하려 애썼지만 예배에 방해가 될 듯싶어 곧 말을 멈췄고 한글 까막눈인 남편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경소리와 홀로 남겨지게 되었다. 하지만 우려와 달리 남편은 이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듯 조용히 ‘옴’ 소리를 내며 예배에 몰입했다.


분명 조금 전에 잠든 줄 알았는데, 산속 동물들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이른 새벽부터 스님은 목탁을 두드리며 아침을 알렸다. 평소 아침잠이 많지 않은 나에게도 새벽 4시 반 기상은 쉽지 않았다. 눈을 떠보니 오히려 잠이 많은 남편이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이며 나를 재촉했다.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밖으로 나갔지만 아직 동이 트지 않아 경내는 어둑했다. 우리는 목탁소리를 따라 홀린 듯 다시 대웅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가량 아침 예배가 이어졌다. 스님이 낮은 목소리로 읊는 경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남편은 다시 고요한 상태로 돌아가 차분하게 예배에 참가했다. 생각해보니 남편은 연애초부터 불교에 관심이 있었다. 한국에 처음 왔을 무렵 스님들이 입는 바지를 사고 싶다고 해서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엄마는 내심 이러다 얘가 스님이 된다 그럴까 걱정하셨다고 한다. 나중에 예배가 어땠냐고 물어보니 그는 내용은 전혀 이해하지 못해도 스님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나름대로 느꼈다고 한다. 절은 떠나기 전 우리는 잠시 스님과 대화할 시간을 가졌는데, 그때 스님에게로부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단어를 들었다. 스님은 요즘 시대엔 절에서 불공을 드리는 일 말고도 신자들을 위해 ‘페이스북’ 계정을 운영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고 이야기했는데, 어쩐지 어조는 의무적으로 수행한다는 느낌보다는 새로운 게임을 선물 받은 소년같이 들렸다. 사실 그때 나는 남편이 갖은 절과 스님에 대한 환상이 깨질까 걱정을 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스님의 티 없이 맑은 표정을 보며 순수함을 느꼈다고 한다. 남편은 떠나기 전 스님에게 속세를 떠나 절과 부처님에게 인생을 바치게 된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무슨 연유에서인지 물을 수 없었다고 한다.


절에서의 하룻밤을 뒤로한  우리는 다시 초고속 인터넷과 바쁜 사람들이 있는 한국의 속세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산을 내려갔다. 도시에 들어서자 남편은 다시 긴장한 얼굴로 침을 삼켰지만 눈빛은 어젯밤보다 비장해진 모습이었다.



뒷이야기

Nachgeschicte


제인: 템플스테이 갔었을 때 뭐가 제일 기억에 남았어?

럭키: 스님의 하루 일과를 보는 게 흥미로웠어. 현실을 사는 사람들은 늘 여러 종류의 고민과 의무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잖아. 그렇지만 속세를 떠난 사람은 사실 외부일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잖아. 세상에서 동 떨어져서 어떤 하루 일과를 보내는지가 가장 궁금했거든.

제인: 템플스테이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기대했던 것은 뭐야?

럭키: 스님과 대화를 하고 싶었어. 스님도 고민이 있는지 따위 말이야. 그런데 사실 스님을 직접 만나보고 같이 예배도 드리고 하면서는 굳이 질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꼈어.

제인: 왜?

럭키: 글세. 그도 하루하루를 잘 보내려고 애쓰는 인간이라는 것을 느껴서 아닐까? 속세에서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는 늘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제인: 스님이 요즘 페이스북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고 실망하지는 않았어? 사실 나는 네가 절과 스님에 대한 환상이 깨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거든.

럭키: 솔직히 나도 처음엔 당황했어. 스님도 절을 위해 페이스북도 운영하고 템플스테이도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어쩌면 정말 속세와 떨어진 곳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지만 그가 보통사람과 다른 점은 그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다는 것이었어. 이런저런 척하지 않고 그저 지금 자신에게 머무는 행복에 충실하는 것이 오히려 나는 좋아 보였어.

제인: 또 인상 깊었던 것이 있어?

럭키: 템플스테이의 목적 중 하나가 스님이 보통 사람들이랑 절에서의 시간을 공유하면서 좋은 경험을 전해주는 것 이잖아? 근데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가 그 장소에 있음으로 인해서 그에게 행복을 주었다는 생각도 들었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더 그 시간을 의미 있게 만들어줄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통해 간접적으로 어떤 행복을 나누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가 그다음 날 새벽에 잠을 자느라 예배를 드리는 것을 소홀히 했다면 그에게도 속상한 일이었겠지. 그래서인지 아침 일찍 눈이 떠지더라. 스님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




북한산, 2022. vivaJ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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