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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kaya Lee Sep 01. 2015

잭프루트를 알고 계세요?



잭프루트Jackfruit라는 과일을 알고 계세요?



잭프루트는 동남아쪽 국가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큼직한 과일인데요,

겉껍질이 도마뱀 비늘 같아 먹음직스럽지는 않은 데다가 잘 익으면 다소 특이한 냄새를 풍겨

실상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을 듯한 과일이예요.

그렇지만 저는 샛노랗고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독특한 단맛? 담백한 맛?을 가진 그 과일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두리안의 쿠리쿠리한 향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잭프루트만큼은 가끔씩 그렇게 생각이 나더라구요.

잭푸르트는 어쩌다가 더해진 추억 하나로, 저에게는 더욱 더 의미 있는 과일입니다.

동남아 국가로 떠날 때마다 저는 의식적으로 잭프루트를 찾죠. 

시장에 가서 잘 익은 걸 하나 고르고, 먹기 좋게 잘라달라 해서 숙소에 돌아와 

어떤 누군가를 떠올리며 조용히 그 시간을 음미합니다.








베트남을 여행하던 도중이었어요.

베트남은 우리나라 못지 않은

비극적인 역사를 겪어냈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빈곤함에서 벗어나지 못해 어려움과 고난을

간직하고 있는 나라죠. 

그렇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자존심이 굉장히 강하고, 분별 있으며,

다소 무뚝뚝한 표정들을 하고 있지만- 여행자에게는 대부분 친절합니다. 

베트남은 싸고 풍부한 과일과,

우리네 어머니들 같은 푼푼한 인심과,

아무 곳에서나 진한 국물을 가득 부어주는

'진짜' 쌀국수를 쉽게 맛볼 수 있어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저를 기대하게 만드는-

좋은 곳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요.








어쩌다가 그만 버스를 잘못 탔는데 그 버스가 중간에 지연이 되고...

그 버스를 타고 정거장에 도착하니 내가 타야 할 마지막 버스는 떠나버렸고...

이래저래 다사다난한 하루를 겪고, 도무지 더이상은 이동할 방도가 없어

작고 외딴 마을에 주저앉아 버렸죠.

이제는 더이상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자그마한 북베트남의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동네 이장님 집의 툇마루에서였죠.

이장댁이라고는 해도, 옹색한 살림살이에 쓸만한 여분의 이불이 없자 

옆집 처녀의 것을 하룻밤 빌렸나 봅니다. 그 이불을 들고 온 것이 그였습니다.

TV도 없고, 밖은 깜깜하고, 그때의 여행은 유독 가져갔던 책 한 권도 없었던 때였죠.

그날 저녁부터 조금씩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

동네 어귀에서 마주친 그가, 처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 하... 할로... 여긴 시... 시골 마을이라... 관광객 진짜 안 오는데...

말투가 조금 어눌하기는 했지만, 그는 영어를 제법 할 줄 알았다.

자세한 설명을 하기에는 너무나 지쳐 있던 때였던지라, 나는 힘없이 웃으며 간단하게,

버스를 완전히 잘못 타버렸거든, 이라고만 답했다.

그는 더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이불이며 베개며 주섬주섬 방문 앞에 내려놓더니

손을 흔들고 조용히 사라져갔다. 나는 어젯밤 정말 '죽음 같은' 잠을 자버렸다.


-

'다소 특이한 경험 해보기'를 이번 여행 목록에 올려 놓았으니만큼,

이 아무것도 없는 깡촌에서 일주일 정도 머물다 가기로 했다. 

이장님 집은 살림살이라고는 참 아무것도 없어 황량하지만,

방만은 여러 개 딸려 있는 큰 집이라 묵어가도 되겠느냐고 조심스레 묻자,

어찌나 흔쾌히 두 손을 붙들며 고개를 끄덕이시는지. 황송할 지경이었다. 내가 뭐라고.


-

마당 옆 닭장 속의 닭들이 홰를 치는 통에 잠에서 깼다.

물동이 비슷한 것을 지고 막 마당으로 들어서는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할 일이 없어 노트에 그림이나 그리며 동네 구멍가게 앞에서

서성대다가, 세 번째로 다시 그를 만났다. 

키는 조금 작았지만, 선한 눈매며 이 지방 사람들에 비해 다소 밝은색의 피부가

마치 읍내에서 공부를 마치고 회향한 지식인... 같다는 생각이 설핏 들 정도로

강단 있어 보이는 청년이었다. 어쩌다 보니 대화도 조금 나누었다. 


-

어쩌다가 하루, 내가 눈을 빛내며 봉지에 가득 담아 온 망고니 파파야니 하는 것들을

앉은 자리에서 싹 다 먹어치우는 것을 본 그가 가끔씩 자잘한 과일 한 그릇씩을 가져다 준다.

어제는 가지째 주렁주렁한 용안 두어 다발이더니, 오늘은 세상에나!!! 망고스틴이다.

시장에서 찾을 수 없어 포기했었는데, 어디서 구한걸까?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정말 달고 맛있었다. 상한 것도 하나도 없고. 만세!!!


-

그 친구랑 가끔씩 대화를 한다. 이 마을에서 뭘 하고 사는지를 도통 알 수가 없다.

궁금하긴 하지만, 괜히 캐묻지 않기로 한다. 그 친구의 영어가 짧아

대화의 진전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말할 만한 상대가 있다는 것만 해도 어디?





- 잭프루트 말린 것을 도통 찾을 수가 없네 나 그거 되게 좋아하는데

- 와아... 잭프루트... 알아? 그래? 근데, 잭프루트, 많아, 그거 시장에 가면, 아주아주 많아

- 아니- 나도 봤어- 그런데 통째로 파는 그거 말고 있잖아 왜, 꼬독꼬독하게 말려서

  봉지에 담아서 파는 거... 그런 거... 난 말린 과일 되게 좋아하거든

  그런 거, 우리나라에서는 되게 비싸 그런데 이 나라는 과일 말린 거 싸게 팔아서

  나는 너무 좋거든, 흐흐


-

내일이면 이 마을에서 떠난다. 할 일이 없어 죽을 것 같았지만 명상의 시간으로 삼았다.

막상 떠나려니 벌써 마을 모양새가 눈에 익숙해졌다. 

이장님께 약간의 방세? 사례금?을 건네드렸다. 무척 좋아하시는 모습이 조금 짠했다. 




마지막 날, 웬 비가 그리 쏟아지던지.

툴툴대며 버스에 올라 출발하기만을 기다리던 차였습니다.

비를 맞으며 달려온 그 청년이 버스에 휙, 올라타더니 내 무릎팍에 뭔가를 휙, 던지더니

금세 뛰어내려 빗속으로 사라지더군요.

뛰어가면서 내 쪽으로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습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에

저는 그냥 에에? 입만 벌리고 있다가, 던지고 간 비닐봉지를 주섬주섬 풀어 헤쳤습니다.


뭔지는 아시겠죠. 

그렇게 많지도 않았지만, 제법 적지 않은 양이었습니다. 말린 것이니,

아마도 꽤나 큰 잭프루트를 두세 개는 몽땅 썰어낸 듯한 양이었죠.

꼬들하게 마른 잭프루트 조각들이 네 겹이나, 비닐에 꽁꽁 싸여 특유의 냄새를

버스 안에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얼른 다시 꽁꽁 묶어 품에 넣었죠...


저는 아주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이 잭프루트는 공장에서 가공되어 슈퍼마켓에서 팔리곤 하는 그런 '제품'이 아니라는 것을요.

군데군데 모래알 같은 황갈색 알갱이가 묻어 있기도 하고, 반쯤만 말라 좀 끈적한 것이

손에서 배겨나오는 땀과 뒤섞여 은근하면서도 달달한 내음을 스물스물 풍기며,

맥없이 푸석한 단맛이 아닌, 새콤상콤한 단맛이 먹으면 먹을수록 감질나게 하는

그런 아주 달고 맛있는 잭프루트 '말린 것'이었다는 것을요.

판매처도, 제조 회사 이름도 없이 그저

가게에서 나누어주는 무늬 없는 허연 비닐봉투에 겹겹이 싸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그런 맛있고 정성 가득한 잭프루트 말린 거라는 거...

나를 위해 뒷마당에서 잭프루트를 썰고, 그늘에 늘어놓아 여러 날을 뒤적이며

조바심내었을 기다림의 시간.

비가 그렇게 억수같이 쏟아지는데도 잭프루트 봉지에는 물방울 튄 자국 하나 없더군요.

우산도 쓰지 않고, 이 귀한 선물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품고 왔을지를 생각하니,

남사스럽게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괜히 다른 버스의 꽁무니를 눈으로 훑었습니다.







긴 시간을 보내고 다음 도시에서

분주히 숙소를 찾아 헤맸습니다.

간신히 방에 들어서서 손을 씻자마자

배낭 맨 위에 고이 넣어두었던

비닐봉지 뭉텅이를 꺼냈습니다. 한 개를 꺼내

우물우물 씹었죠.

과일을 삭혀낸 것만 같은 쨍- 하면서도

눅진한 단맛이 입안을 꽉 채우며 퍼져나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 해지며

그때부터 그 소중한 잭프루트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나는 묵묵히 씹히는 것 여남은 개를 삼키느라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까무룩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잭프루트 색 몽롱한 꿈을 꾸었고,

바깥의 비는 이제 거의 그쳐가는 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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