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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kaya Lee Aug 31. 2015

계피와 시나몬



아주 먼 훗날,

꼭 나의 '아이'가 아니라 어떤 기꺼운 생명체를 곁에 들이게 되거든
그 이름을 '계피'라 붙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계피라는 단어, 너무 이쁘지 않아요?


사람들의 반응은 으레 예상했던 딱 고만큼, 음, 뭐 글쎄...
그런 생각은 잘... 해 본 적이 없어서... 와 같이 미적지근하기 일쑤.
하긴 뭐, 열렬한 응대나 호응 따위를 바라며 던지는 종류의 질문은 아니지만서도.





계피桂皮, 라는 단어와 시나몬Cinnamon - 이라는 울림이 주는

이국적인 향내와 나른한 느낌이 좋았다.
시나몬, 시나몬, 주문처럼 입술 끝에 되뇌이면,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스톡홀름 어느 작은 카페로 날아가 갓 구운 '시나몬 롤'과
진한 커피 한 잔을 주문하던 어느 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어서.






























계피는 납작하고 장식 없는 빵 위 한가운데에 솔솔 뿌려져 맛없는 빵의 밋밋함을 달래주거나

아득한 기억으로 남은 인도의 짜이 -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작디작은 잔에서도
그 신묘함을 일껏 발휘하고 있었다.
늘 부스스한 배낭여행자의 여독과, 난방이 되지 않는 차가운 아침의 오한을 이겨낼 수 있도록
위로와 요기 삼아 꼭 두세 잔 이상 마시곤 했던 진하디 진한 짜이.
그 따뜻함. 달큰함. 독하디 독한 추억과 온갖 복합체로 남은 그리움의 냄새.

진한 계피향과 카르다몸, 이름 모를 갖가지 향신료가 제멋대로 뒤섞여
가게마다 행상마다 그 기억을 달리 하던 따스한 짜이 한 잔은

지난했던 인도 여정의 영혼이고 그 자체였다, 라 해도 과장은... 아니리라.










신산하고 초라한 곡물 바구니들 사이에,

거기 그렇게 덩그마니 놓여 있기도 했다.

마른 나무 장작처럼 단단한 갈색을 띄었으나
기운없이 다소곳 놓여 있던 계피 한 다발을,

말없이 집어들고 동전을 건넸다.
꽁꽁 싸매 배낭 한 구석에 고이 넣어 두었더니

배낭을 열 때마다 은은한 향내가

콧속으로 눈매로 스며들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문고본 책장 사이로도

그 기운이 스며들기를 바라며
배낭 속 책의 자리를 그 뭉치 옆으로

옮겨두던 기억들.









동남아시아 어느 작은 수제 캐러멜 공장에서
공간 안에 가득 찬 코코넛 향내 사이에서 얼핏, 계피의 내음을 찾았다.
그렇게나 아름다운 조합일 수 없다, 라는 생각을 혼자서 했다.
거리를 지나다가 마주친 행상의 도넛 바구니에서도 그 냄새가 났다.
계피는, 어디서나, 그리움처럼. 가웃이.





아주 어린 날의 기억 속 친척 어른들이 모여 앉아 빚곤 하던 쫄깃한 송편의 소에서도,
얼린 곶감 하나 동동 띄운 어른들의 음료 - 수정과를 그렇게나 맛있게 들이켤 수 있었던 것도
진하고 알싸한 그 존재감 때문이겠지.

치이이잇 - 카푸치노 우유 데우는 스팀 머신의 열기 사이를 비집고
향긋하고 푼푼하게 고픈 위장과 마음 한켠 허한 곳을 나지막히 채워주었던,
을씨년스러운 겨울날, 시나몬 향기...


계피와 시나몬. 계, 피, 와 시나아아아 - 모오온

엄마 뱃속에 있을 적 이런 향내를 맡았을까, 싶은
노곤한 단내가 여행길에서 식은 몸과 마음을 수 차례 위무했다.
혀끝보다 나의 감각으로, 나의 열망으로 문득 찾아내곤 했던

다사로운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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