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kaya Lee Aug 30. 2015

교토의 생강향 바람



그에게선 비누 냄새가 난다, 라고 시작되는 단편소설이 하나 있었던가.

그 소설을 처음 읽었던 것이 언제적이었는지는 더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에게선 생강 향내가 났다... 라고 운을 뗀다면 조금 우스울까.

청춘 남녀의 풋풋하고 미묘한 감정의 외줄타기를 엮어냈던 그 소설의 도입부만큼이나,

생강향처럼 알싸하게 그렇지만 눈 깜짝할 새 스쳐 지나가버린,

고르지 못한 치열을 가졌던 너와의 찰나의 추억.





교토를 좋아한다.

여러 차례 질리지도 않고 들락거렸던 일본 여행에서, 그래서, 어디가 그렇게 좋은 건데? 

라는 질문을 들으면 나는 주저없이 교토!!! 일본은 교토지!!! 라며 교토 특유의 매력을 첫손에 꼽곤 했었다.

교토는 너무나, 얄미울 정도로, 우아하고 고지식하고 매혹적이어서...

찾게 될 때마다 얄미워, 얄미워 정말, 이라는 부러움 섞인 감탄사를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럼없이 내뱉게 만드는 곳이다.


골목길들은 참으로 정갈하며, 단아하다.

길바닥에 떨어진 휴지 한 장 찾아보기 힘들구나야... 게다가 후미진 곳 한켠에 '정리'해 놓은

쓰레기 봉투들마저 아침 햇살에 빛을 발하고 있는 듯하다니.

남들보다 조금 일찍 길을 나설라치면, 작은 새들 우짖는 소리와 새벽 이슬내 머금은

이끼 냄새며 돌 그림자며 밥 짓는 소리... 간간이 까마귀 울음...

그런 곳이다, 나의 교토는.













          작지만 사무치는 것들과,











오롯이 저희들만의 이야기 품고 있는 것들
















교토에 올 때면 늘 한 번쯤은 다시 찾게 되는

기요미즈데라 근방의 - 한 찻집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 여기인가?

아직은 이른 시간, 골목골목을 기웃거리다 방향을 잃고 말았다.

낭창거리며 하염없이 걷고 있는데, 마주 오던 청년 하나가 갑자기 말을 붙인다.

-  %3434$ㄴ90ㅈ9ㅕ내OsadPDJ@!ZXKKA?


- 어... 음... 아노... 와... 와타시와 니혼진 데와나... 이...

나는 일본사람이 아냐, 이 친구야.


순간 하염없이 당혹해하는 그 청년의 얼굴이라니.

마치 자신이 무슨 큰 실수라도 한 것처럼 벌개져서는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으로

다시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중얼... 횡설수설...

참 나, 거 뭐 그렇게 그거 큰일이라고.

가볍게 끄덕, 하고 돌아서다가 아노... 여기 알아 여기? 하는 시늉을 하며 가게 이름을 댔다.

- 아~~~!!!!!! ㅋㅏ@5$%나니&**#ㅏㅁㄴ!!!

얼굴이 환-해지며 손짓으로 따라오라 열심이더니, 앞장을 서며 미적거리는 나에게

손으로 오케이 사인 시늉을 한다.

아이보리색 터틀넥 스웨터에 살짝 물빠진 청바지, 날렵하게 잘 뻗은 스웨이드 신발이

편안하면서 깔끔한 느낌을 줘서 좋다. 

덧니가 유독 인상적인 전형적인 미남... 은 아니고, 일본인 특유의 부리부리한 눈썹과

아직 학생인 것 같은 순진한 태가 남아 있는 모양새가 좋았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건, 고양이 털 같은 회갈색 머리칼 색깔. 미묘하게 와닿았다. 


다행히도 대문은 살짝 열려 있어, 방문객을 맞이할 준비가 된 듯했다.

자그맣지만 마치 절간처럼 잘 꾸며진 일본식 정원에 들어서니, 역시나, 하는 마음이 든다.

가게 안 어둑시니한 곳에도 탁자며 방석 등이 구비되어 있었지만, 아침의 햇살과

마당의 풀 기운이 괜히 좋아 굳이 마루턱에 걸터앉아 메뉴판을 건네받고

익히 들어 온 가게 제일의 메뉴를 주문했다.

머릿수건을 쓰고 미끄러지듯 살며시 움직이는 '딱 일본 할머니스러운' 할머니 종업원이

가볍게 웃음지으며 종종걸음을 쳤다 . 








고사리에서 추출한 전분으로 만들었다는 전통 떡은

우무처럼 몰랑몰랑하면서도 우물우물,

제법 씹어 넘기는 재미가 있다.

고소하기 그지없는 콩고물 듬뿍. 게다가

이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달큰시큰한

감주 한 잔이라니.

감주의 맛이 기대 이상으로 맛깔나고 부드러워

몇 번이나 혼자 입맛을 다시며 아 맛있다, 맛있다


그릇 뚜껑에 새끼 손톱만큼 살포시 얹혀 있는

생강 다진 것을 살짝, 잔 가운데 올려 감주와 함께 

사근사근 들이켜니, 이건 또 색다른 풍미


따끈하면서도 맹맹하게 달콤하고, 발효주 특유의

톡 쏘는 듯한 내음이 거슬리지 않아 나도 모르게

목으로 꼴딱꼴딱 넘어간다. 흡사 아득한 옛날,

어린 동생의 분유를 빼앗아 먹는 듯한 모양새랄까...

경박하지 않은 - 그을린 대나무를 깎아 만든 포크

하나가 교토식 운치를 살려준다.

아, 고소한 콩가루 내음에 살며시 생강향 한 자락.




호로록, 눈을 감고 마지막 남은 한 모금마저 넘기려던

그때였다.

빼꼼히 열려 있던 대문 사이로 누군가와 찰나의 시선이 마주친 것은.

눈이, 아니 시선이 마주치던 그 순간, 싱긋, 눈 끝으로 짓는 웃음을 남겨놓고 자박자박 발소리를 내며

멀어져 간 것은

그래, 누구였을까.


이방인이 자리를 잘 찾고, 소원하던 메뉴를 잘 주문했으며, 그 기대를 만족스럽게 충족시키는 것까지

확인한 후에야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청년은.

제법 오랜 시간이었을텐데... 괜시리 멋쩍고 조금 미안해진 나는, 바닥에 남아 있던

마지막 감주 한 모금을 마저 넘기며 누구랄 것도 없이 고마워, 라고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 


고마워, 지극히 만족스러운 지금 이 순간이, 이 감주와 여리여리한 떡의 맛이, 내가 지금 이곳에 있다는 것이,

교토가 여전히 나에게 매력적이라는 것이, 그리고 길가에서 예고도 없이 마주친 나에게 베풀어 준

너의 작은 배려와 관심이.  

생강 다져진 것을 볼 때마다 너의 눈꼬리를 떠올리게 될 것만 같네.


가게 문을 나서 골목을 돌아나오면서 문득,

바람결에 실려오는 생강 냄새 한 자락을 맡은 것만 같았다. 

너의 눈꼬리 웃음 같은 생강 향기. 그리고 교토의 선선한... 공기와 공명.




교토의 바람에선 생강 향기가 난다.






작가의 이전글 까탈스런 데쥬네, 크로와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