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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kaya Lee Aug 28. 2015

까탈스런 데쥬네, 크로와상



아침식사로 나온 빵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따뜻하게 구워서 식탁 끝자락에 구비된 일회용 버터라도 발라 먹으려 했으나,

그녀의 앙다문 입술이 너무나 완고해 기분을 잡쳐버린다. 

그녀 역시 화가 나 있다. 

진한 블랙커피 한 잔에 향신료가 첨가되지 않은 무설탕 통곡물빵을 즐기는

건조한 입맛을 지닌 그녀에게 오늘 아침의 이 ‘윤기 줄줄 흐르는’ 무성의한 호텔 ‘브렉퍼스트’는

지극히 잔인한 촌극임에 틀림없다. 


찌그러진 토스터기는 작동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 보니 버터인 줄 알았던- 오밀조밀한

플라스틱 용기는 그나마도 경박하기 짝이 없는 마가린이다. 

- 호텔에서, 마가린이라니!!! 말도 안 돼!!!

그녀는 분노한다.  

나는 서둘러 그녀의 손을 붙들고 바깥으로 나가, 헐벗은 공기를 뚫고 골목으로 접어든다. 

눈을 감고 온 정신을 집중한 채, 한 가닥 바람에 실려오는

갓 구운 빵의 냄새를 탐닉한다. 

오전, 아니 아직은 새벽, 아직은 어두운 거리,

파리. 사월의 아침.





























그녀는 가까스로 숨을 고르고,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이른 아침 문을 연 파리 대부분의 브라세리는 늘 동일한 메뉴.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제대로 격식을 갖춰 작은 원형 탁자로 날라져 온 푸짐한 ‘데쥬레’는

그녀의 가열찬 분노를 가까스로 누그러뜨린다…

유리컵에 송글송글 물방울이 맺힌 신선한 오렌지 주스 한 잔, 작은 종지에 담긴

산양유 무염버터, 해바라기씨와 양귀비씨가 아드득, 씹히는 동그란 롤빵,

깨알같이 작은 씨앗이 서걱대는 산딸기잼과 황금색 살구 - 애프리콧 - 잼, 

무게감 있는 뽀얀 거품을 들쳐 업은, 카푸치노와, 곁들여진 각설탕 두 개. 흑설탕이다. 

정갈하고, 맛깔스럽다. 





























뒤늦게 제법 젊은 갸르송이 바구니에 담아와 건네준 따스한 크로와상에

그녀의 분노는 눈 사그라지듯 녹는 듯 - 했지만 애써 그런 티를 감추려 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 하다. 크로와상의 결이 나비 날개만큼이나 얇고 버석해,

그녀는 지극히, 지극히 만족스럽다. 

작은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이 순간이,

오늘 아침 때이른, 나만의 작은 수확이 되었다.



네가 그렇게 기뻐할 수만 있다면, 나도 참 좋아.

그게 뭐든지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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