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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kaya Lee Sep 04. 2015

산티아고까지, 하몽의 나날들



“……크로와상을 데워줄까요?”


나는 응당, 거절하려니 생각했다. 그녀는 해가 기울 무렵에는 단 빵을 즐겨 먹지 않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바 너머의 앳된 아가씨를 보며 희미하게 웃어보이기까지 했다.

우리는 그날 내리 32km를 걸었고, 거쳐온 수 개의 마을 중

단 한 곳에서도 ‘메뉴 델 디아’를 찾지 못했으며, 마실 물까지 떨어져 그곳에 다다랐을 즈음엔

창자가 목구멍으로 넘어올 것만 같은 기묘한 울렁거림이 우리 사이를 비집고 있던 터였다. 


낡고도 작은 마을의 동네 선술집에는 모여 앉아 포커를 치는 네 명의 대머리 영감들-

두 명은 베레모를 눌러쓰고 있어 확인할 수 없었지만- 과 지나치게 경쾌해 거북스러운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의 낭창낭창한 목소리만이 공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길다란 나무 탁자는 무척이나 낡았고, 끈적거렸고,

검푸른 타일 바닥에는 땅콩 껍질이며 담뱃재며 무수한 빵 부스러기들이

아마도 이곳에서 끼니를 해결했을 수많은 이들의 타파스에서 비어져 나온- 베이컨 조각의

기름기와 먼지와 휴지조각과 눅진눅진 뒤엉켜 일련의 무리를 이루고 있는 중이었다. 


흑맥주에 빵조각을 적셔가며 카드놀이에 여념이 없는 영감들은 어깨 너머로 우리를

힐끗, 한 번 넘겨보고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무쇠 프라이팬 위에서 잠시동안 구워져 나온 크로와상은 너무나, 너무나 따뜻하고,

고소하고 충만하고 바삭거려서,

우리는 그만 감격해버리고 말았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늘 내가 떠올리는

궁극의 빵 향기는 바로 그날, 그곳의 크로와상이다. 

다시 그 맛을 찾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늘

그날의 크루아상을 그리워한다. 

그것은 너와 내가 처음으로 만나, 

처음으로 손을 잡았고, 함께 만들어가는 미래를

이야기했던... 바로 그날로부터

꼭 7년째 되던 날의 혼곤한 추억이었기 때문이다.


너는 그것을 알고 있었니?









스페인을 관통하는 여정에서의 무한한 즐거움 중 한 가지는,

다름아닌 다양한 종류의 '하몽'을 맛보는 것이었다. 아, 하몽. 하몽.

나는 아직도 하몽, 하고 소리를 내어 말하면,

가늘게 난 시골길 위를 기약도 없이 걸으며 서로 묵묵히

반으로 가른 빵과 하몽을 씹고 삼키던,

길에서 딴 무화과를 소매에 슥슥 닦아 내게로 건네던,

그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웬만하면 그 단어를 잊고 지내려 한다. 

그곳에서는 지천으로, 어디에서나, 손쉽게 하몽을 구해 맛볼 수 있었지. 

'끝'이 느껴지지 않는 순례길을 따라 걸으며 하루의 마지막, 도달하곤 했던

아주 멀고 먼 외딴 촌구석 마을 가게에서도

어디엔가 늘 자리하고 있었다.

슈퍼마켓 한구석에서 굴러다니던 케케묵은 치아바타 빵에

조금 괜찮은 브랜드의 하몽을 사서 잘게 잘라 얹으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빈곤하고 초라한 우리의 식사는 순식간에 만찬으로 변모할 수 있었다.













          단단하고 거친 빵과,








하몽 몇 조각.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때의 우리는 충분히 그러했다.

고기를 유달리 좋아하지 않는 그녀도

스페인에서의 이 하몽만큼은

가리는 것도 없이 잘도 먹었다. 

꿀떡꿀떡, 가는 식도를 따라 목구멍으로

그녀의 하몽과 허기진 하루가

함께 넘어가는 소리를 곁에서 듣고 있노라면,

그 소리가 마치 나 이렇게 숨쉬고 있어, 네 옆에서

너와 함께 살아나가고 있어, 라며 귓가에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아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가끔씩 접어드는 읍내- 번화가- 선술집에서

질 좋은 하몽이 주렁주렁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을 바라볼 때, 그녀의 눈은 반짝,

야생동물 같은 빛을 내었다.

그 눈빛을 보는 것이 왠지 좋아서, 나는 늘 기꺼이

지갑을 열어 가장 맛있고 윤기 나는 하몽을        

조금 넉넉하다 싶은 만큼 구입하고는 했다.

어쩌다가 맛 좋은 와인이라도 조금 곁들이는 날이면, 그리고 그녀와 마주 앉아 

숙소 근처 양 우리 너머로 해 지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그냥

이대로 바수어져 버려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행복했었다. 사무쳤었다.

그녀도 그러했을까? 그때의 나만큼이나?

정말로, 그렇게?







목적지인 산티아고를 목전에 두고 있는 갈리아 지방에서는, 듣던대로 비가 자주 내렸다.

거짓말같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배낭 속 우비를 꺼냈다가 넣기를 반복해야 했는데,

지금에조차 기억이 생생하다. 구깃구깃 배낭 속에서 접혀져 있다 나온

그녀 우비의 희미한 하몽 내음이...

고소하면서도 찐득한, 은근하면서도 진부했던 많은 나날들이 쌓여 만든 

생의 내음과 우리들만의 비릿한 추억과 욕망과 충만함이 뒤섞인...

산티아고를 향해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행복에 겨워

소리없이 눈물 흘렸던 적지 않은 나날들을, 그녀도 조금은 눈치채고 있었던 것일까?

십자가 문양이 새겨진 산티아고 특산품이라는 퍽퍽한 케이크를

무사히 도착한 기념으로 나누어 먹으며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의 끝'까지 혼자서 여행을 하고 싶다고 넌 말했고, 그렇게 했어.

그곳에서 남들처럼 신고 있던 신발을 태우고 돌아오겠다 했다. 

낡고 해진 신발은 결국 그곳에서 재로 화했겠지만,  

너의 그림자와 나직한 눈매와 발자국도 모두 함께 부스스 사라져 버렸지.






























나는 그때 부적처럼 가방에 나누어 달았던 큼직한 조개 껍데기 속에

간간이 스페인 산 와인을 부어 마시고는 한다. 

그리고는 베란다 어느 구석 서늘한 곳에 처박아두었던 큼직한 하몽 한 덩어리를 꺼내어 오지.

그러나 그 하몽은 영 맛이 없다. 특유의 누릿누릿한 향도 잘 나지 않는 것 같고,

반질반질 보기 좋게 빛을 내던 비계 부위는 생기도 윤기도 간직하지 못했다. 


단지 우리가 굶주리고 서로 애정하고 있었던 그날의 기억들이

그저 꿈결같이 잊을 수 없는 맛의 하몽을 만들어 주었을까 아니면,

아니면 이제는 더이상 흐물거리는 미련도, 너도, 사무침도,

원망도 한가닥 위안도 사라졌기 때문일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니다, 시간이 더 흐른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 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나는 혼자서 알람브라 궁전에 갔어





















이제 나는 그저, 세상의 끝으로 난 길을 향해 돌아선 너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날의 희부연 그림자가 아직까지 내 쪽을 향해

드리워져 있는 것을  

망연히 느끼면서, 그렇지만 나 스스로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에

침잠해갈 뿐이다. 




단지 기다리고 돌이키고 또 기다릴 뿐이다.

아마도 언제까지나.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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