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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kaya Lee Sep 03. 2015

베를린에서, 유혹적인, 치즈케이크



- Is your turn?


앗 이런, 이런, 이런..........

어쩐지, 다들 나를 멀거니 쳐다보고들 있더니만. 좀 이상하지 싶었다. 



줄을 반대 방향으로 섰다. 이쪽 계산대로 저쪽에서부터 다가오는 줄을,

야무지게 이쪽에서부터 냉큼 와서 서 있었으니, 여봐란 듯이 당당하게 새치기를... 하게 된 꼴.

이 나라 사람들은 이런 류의 실수에 대해서는 가차가 없다. 어이구야...

다른 사람들의 미묘한 눈초리를 애써 피하며 긴 줄의 끝으로 가 섰다.

미안해요, 다들 쏘리- 뭐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니었다구요...


오늘 어째 일진이 그다지 좋지 않다?

아침부터 눈앞에서 지하철이니 트램이니를 연달아 세 번씩이나 놓친 데다가,

마구 뛰다 동전 지갑이 열려 그 무수한 동전들을 길바닥에 우루루 쏟았던 데다가,

오늘 틀림없이 입고된다던 잡지 한 권은 여전히 깜깜 무소식인 데다가

이거에다 저거에다... 흐어엉. 힘든 하루였다.


아니나다를까... 케이크가 딱 한 조각 남았다, 두근두근.

아니나다를까... 내 바로 앞의 금발머리 남자가 라떼 한 잔과 케이크...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안.............. 안 돼!!!

카페 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이 보였다.

오 마이 갓, 오늘 정말 일진 제대로구만... 아 민망하다 민망해, 이렇게나 민망할 수가.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목소리를 내었던가 보다. 내가 오늘 정말... 제정신이 아닌 거지...


- Do you have a problem?

그가 물었다, 내게.

아아, 쏘오오오리 아무 것도 아녜요 아무 것도...


하면서, 내 시선이 어색하게 케이크 쪽으로 향했던가 보다.

- 흠... Really? Are you OK?

- 아, 음... 나는 저걸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어 일부러 이 카페에 왔어요.

- 아아, 그런거야? 나도 이곳에 자주 오곤 해. 여기 케이크가 이 근방에서는 제일 맛있거든.

  이 케이크가 제일 유명하기도 하고. 난 집이 여기서 가까워서 산책을 나왔다가

  가끔 하나씩 사가곤 해. 이번에는 기꺼이 너에게 양보할게. 오브 코스!!!

- 으아, 정말정말로... 고마워요. 오늘 힘든 일이 좀 많았거든요...


정말이지 오늘은 기운이 탁 풀어져, 이 기분 좋은 친절을 사양하고 싶지가 않았더랬다. 

남자는 라떼와 아몬드 크로와상 하나를 주문하더니, 찡긋 윙크를 하고는 자리에 가 앉았다. 

나는 정말이지 마음 속으로 깊이 고마워하며, 마지막 한 조각 남은 유명한 치즈케이크를

'겟'했다. 미션 파서블Mission possible.





- 괜찮다면, 잠깐 앉아도 될까? 나랑 같은 걸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말야.

아트 잡지 얘기였다. 

시작은 그러하였으니... 이런저런 자기소개로 이어진 대화는 어느덧 물꼬를 터서,

그는 본래 스위스 태생이나 이곳으로 와서 산 지 오래되었고...

한 레스토랑에서 수셰프로 일을 하고 있으며, 그런데 전공은 디지털 아트 방면이어서

취미 삼아 투잡 삼아 일러스트를 간간이 그리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주었다. 

베를린의 맛집, 추천할 만한 클럽, 소문만 그럴싸하지 피해가야 할 곳 등등-

처음에는 고개만 끄덕이며 오 그래? 와우! 하며 유용한 정보들을 쏙쏙 캐내다가 문득,

마치 헤어졌다 만난 죽 맞는 친구들이랑 수다를 떨고 있는 듯한 나 자신을... 발견했다. 


- 와우!!! 시간이 정말 많이 흘렀네. 이제 그만 가야만 해. 안타깝네.

  일만 아니라면 계속 있고 싶은데, 이제 그만 식당에 나가야 할 시간이라서...

  괜찮다면,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까? 여기에 자주 오는 거야?


  음... 괜찮다면, 전화번호 알려주지 않을래?

  언제 한 번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 맥주나 한 잔 하자. 실상 나는 커피는 자주 마시지 않거든.

  맥주나 와인이나, 내가 가격 대비 괜찮은 곳을 몇 군데 알고 있어.

- 음... 내 핸드폰 상태가 지금 별로 좋지 않은데... 메일이나 뭐 그런 건 잘 사용하지 않아?


이건 내가 잘 쓰는 수법이다. 나는 내 전화번호를 여간해서는 잘 알려주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누구랑 엮이게 될 지 모르거든. 지구상 어디에서나...


- 에이 요새 핸드폰 안 쓰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 그러지 말고 번호 불러봐. 

  내가 연락할게. 가능한 한 빨리.

- 어, 음... 그, 그래... 오늘은 깜빡 잊고 안 가져 왔으니까, 여기 번호 적어줄게...

- 적지 않아도 돼. 내 핸드폰에 저장하면 되지. 번호 불러봐.


그 순간이었다.


정말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의도도 없이, 그저 어쩌다가 살짝

그쪽으로 눈길이 갔을 뿐인데. 정말이지 어쩌다가 아주 살짝.

나는 보고야 말았네. 지독히도 쓸데없이, 어쩌면 운이 좋게도 말이지.


분명 내가 시선을 그쪽으로 돌림과 동시에, 그 순간에,

그의 핸드폰 화면이 순간적으로 넘어가는 것이 보였는데,

그 찰나의 순간 어쩌면 그렇게나 선명하게 그 이미지가 내 눈으로 들어왔던 것일까?





그래도 진-한 그 치즈케이크는 무척이나 맛있었다. 

애인과 이별을 고하던 날에도, 단골 디저트 가게의 주전부리는 늘 달콤하듯이.

수다를 떠느라 서너 입 정도 남아 있던 치즈케이크의 잔해를,

야무지게 부스러기까지 싹싹 긁어 핥듯이 먹어치웠다.

한바탕 롤러코스터를 타고난 듯한 이 상기된 기분은... 

어디에서부터 왔더란 말이냐... 허허허...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지만, 그런 티를 애써 감추며

서서히 함께 일어날 채비를 했다. 

전화번호를 넘겨주고 나서, 아주 다정하게 안녕을 고하고- 가볍게 뺨을 가져다 댔다-

나름대로 매혹적인 윙크를 던지며 내가 먼저 총총 길을 나섰다.

내가, 하는 일이, 걸리는 게, 그렇지 꼭 그렇지.


뒤돌아보지 않았다. 발걸음을 빨리 하며 

아까 마저 웃지 못했던 웃음을 푸하, 결국 터뜨리고 말았다. 







핸드폰의 초기화면 이미지는 이제 난 지 갓 두 달 정도 된,

뽀얀 얼굴의 아.기. 사진이었다. 밝고도 해맑게, 세상의 근심 따위 아직 하나도 모르는-

밝고도 명랑 천진하게 정면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통통한 아기의 얼굴.

내가 걸리는 게 꼭, 꼭 꼭 꼭 이렇다니깐...

카페를 나서니 하늘은 눈부시게 파랬고, 오가는 거리의 사람들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삼삼오오 유쾌하고 즐거워 보였다. 





순간적으로 맨 마지막 전화번호를 하나 틀리게 가르쳐주었다는 건 내가,

두고두고 잘 한 일이라 생각해, 내가.

기억하지 않으려 해 더이상. 여기서 우리의 인연은 아름답게 안녕.

작은 추억 하나 남긴 채로 깔끔하게 안녕.






hint 받은  곳 :

http://honey_snake.blog.me/220470168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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