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록우드의 자리

by 맑고온화한






​마흔여덟, 다시 펼친 『폭풍의 언덕』은 젊은 날 읽었던 그 소설이 아니었다.



그때는 히스클리프의 격렬한 사랑과 파괴적인 갈망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그들의 폭풍 곁에 서 있던 록우드가 마음에 남았다.



​록우드는 그저 폭풍의 언덕에 잠시 머무는 사람이다.



서두르지 않고, 타인의 삶에 함부로 발을 들이려 하지도 않는다.



억지로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보고, 듣고, 그저 자신의 자리를 지킬 뿐이다.



그의 태도는 무심함이라기보다 차라리 '절제'에 가깝다.



​히스클리프의 삶은 지나치게 치열하다.



사랑은 집착이 되고 상처는 복수가 되어 타오른다.



그 곁에서 록우드는 한 발 물러선 채 그 모든 이야기를 응시한다.



개입하지 않되 외면하지도 않는 그 절묘한 위치가, 이제는 낯설지 않다.



그간 그리 바쁘게 살아오지 않았다.



여유가 없었던 것도, 사람을 쉽게 판단하며 살아온 것도 아니다.



다만 삶을 지나오며 알게 된 것은, 타인의 생을 끝까지 이해하려 들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록우드의 그 서늘한 거리감이 지금의 나에게 이토록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다.



​그 시절 나는 깊이 파고들지 않으면 진심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어떤 삶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록우드는 그 정중한 거리 두기를 조용히 몸소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마흔여덟에 다시 만난 『폭풍의 언덕』은 더 이상 사랑이나 복수의 서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에 대한 이야기였고, 얼마나 가까이 가야 하는지, 또 어디서 멈추어야 하는지를 묻는 소설이었다.



​고전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삶을 새로 시작하겠다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이미 지나온 시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마주하는 일이다.



이제 나는 히스클리프의 뜨거운 열정보다 록우드의 서늘한 자리에 더 오래 머문다.



그 거리가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단정하고 평온한 삶의 자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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