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꼬리보다 솔직하지 못하면서.

by 온유


종종 재택근무하러 가는 친구의 집이 있다. 푹신한 소파 대신 딱딱한 원목 테이블이 자리한 거실, 그곳에 커다란 회색 고양이 후추가 살고 있다. 후추는 사람을 좋아한다. 만져주는 것을 허락하는 개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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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를 잘 몰랐을 때, 나는 반가워서 발을 잡았다. 재빠르게 발을 빼는 게 귀여웠다. 고양이 덕후들의 로망이라는 발바닥 젤리도 만지작거렸다. 근데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 고양이들은 발 만지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고 한다. 하지만 후추는 싫은 내색을 크게 하지 않았다. 그저 심드렁한 표정으로 발을 쓱 빼고는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IMG_6978.JPG 미안해 후추야


후추와 두 번째 만남, 요술봉 같은 장난감으로 신나게 놀아주려 했다. 그런데 그 날 후추는 나의 갖은 재롱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역시나 심드렁할 뿐이었다. 집사 친구는 설명했다. 요즘 손님이 여럿 다녀간 후로 후추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놀라웠다. 집사 친구는 마치 아기의 옹알이를 해석해주는 엄마 같았다. 늘 저렇게 표정이 없고, 말도 못 하는데, 후추의 마음을 어떻게 알지?


이후에도 여러 번 후추를 만났다. 여느 때처럼 나는 딱딱한 원목 테이블 위에 노트북과 카페인을 두고, 신명 나게 타자를 치고 있었다. 그때 어떤 부드러운 촉감이 팔꿈치에 닿았다. 후추의 엉덩이였다. 집사 친구가 슬쩍 보더니 말했다.

얘 봐라? 너 유혹 중이네?


친구가 가리킨 곳은 꼬리였다. 뱀처럼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S자를 그리는 후추의 꼬리.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하고 심드렁했고, 꼬리는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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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무심한 듯, 새침한 듯, 알 수 없는 표정의 후추와 인사를 나누고 집에 돌아가는 길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전해지지 않는 후추의 마음이 안타까워!' 싫으면 싫다고, 좋으면 좋다고 말하지 못하는. 나에게 전해지지 않았던 후추의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나는 말을 할 수 있지만, 후추의 꼬리만도 못한 말들만 늘어놓기 때문이었다.


후추의 꼬리는 '당신과 함께 있는 지금, 기분이 좋다'는 뜻이라고 한다. 나는 그렇게 적나라한 표현을 해본 적이 있었나? 자존심 세우느라 전하지 못한 마음, 멋들어지게 표현하려다가 알맹이를 잃어버린 말, 고맙다고 말하면 될 것을 괜히 손사래를 치던 행동. 그렇게 누구에게도 전해지 못했던 수많은 나의 마음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후추에겐 그 마음을 읽어주는 집사 친구가 있다. 사실 집사 친구도 처음엔 후추의 마음을 알기 어려웠다고 한다. 늘 강아지만 보다가 처음으로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을 때, 아리송한 표정에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몇 년을 매일 지켜보고,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하는 행동들을 공부하고, 수술 후의 후추를 보살피며 그렇게 조금씩 배워갔다고. 이제는 후추의 미세한 눈썹 움직임에 표정이 보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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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I라는 기질성격검사에는 '정서적 감수성'과 '정서적 개방성' 척도가 있다. 정서적 감수성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동정심과 이해심이 많은 정도를 측정하고, 정서적 개방성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교류하는 정도를 측정한다.


그러니 정서를 느끼는 것과 표현하는 것은 별개의 능력이다. 어떤 사람은 예민하게 정서를 느끼면서도 표현하지는 못한다. 아마도 남들이 자신을 몰라준다는 서운함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정서를 예민하게 느끼지 못해도 표현력이 좋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만났을 때는 너무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아니었던 경우가 있다면 그런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의 마음이란, 너무나도 고차원적이라서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는지 그 단순한 사실 하나를 알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펼쳐야 하는 주제가 된다.


'고양이는 상대방이 마음에 들면 꼬리를 살랑거린다'처럼

'사람은 사랑하면 눈을 깜빡인다' 같은 공식이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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