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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Feb 20. 2020

마음의 나비효과

마음의 나비효과,



상대를 위한 호의가, 받는데 익숙하지 않은 이에겐 하루를 기억하게 하는 불편한 짐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 어떤 이의 위트가 자격지심을 가진 사람에겐 불쾌한 마음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투박한 사랑의 방식을 가진 이의 표현이 누군가에게는 무례함으로 비추어질 수 있고, 가볍게 여겨질 수 있는 어떤 이의 작은 욕심이 누군가의 일주일의 고대하던 시간을 망치게 하는 힘을 가지기도 다. 각자의 작은 행동이 한번 보는 사람에게든 혹은 곁에 아주 오랫동안 있는 이들에게 선명히 드러나진 않지만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 있는, 그렇게 얽히고설킨 관계들에서 어떻게 지내야 하나. 렇다고 매사에 조심스러울 수도 없. 그건 또 복잡하다.





마음의 나비효과,


나는 지금 가족과 여행길에 있다. 일상에서 떨어져 나오니 선 상황에 대한 적응, 마주쳐야 하는 것들에 관하여 자연스레 집중의 대상은 내가 아닌 처음 보는 환경과 타인으로 옮겨진다. 가끔 여행에서 마주치는 불편한 상황들 속에서는 나는 종종 관찰하는 사람의 입장이 된다. 그 상황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 그저 상황을 관찰하는 역할을 하지, 홀로서 삭힐 시간이 이리 필요한 것을 보니, 드러나지 않는 나만의 방식으로 그 상황에 개입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하나의 나의 모습을 알 수 있었던, 여러모로 그래서 피곤한 날. 오늘이 꼭 그랬다.


그건 고작 석류주스를 사 것에서 시작됐다. 우리 아빠는 성격이 참 급하다. (식당에 앉기도 전에 직원분을 먼저 부르시는) 그런 아빠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에게 적대적이기보다는 먼저 마음을 여는 편이시다. 성격이 급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아빠는 오늘 관광지에 들러 언덕길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아빠는 길가에서 파는 주스를 보자마자 가격을 묻기 전에 한잔을 달라고 하고 마셔버렸다. 그리고 그 옆에 있던 한국 아주머니와 그 아들에게  두 잔을 사드린다며 권유하였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주머니께서 부담스러워하시는 게 내겐 느껴졌고, 어찌 되었든 일방적인 아빠의 급함(의사를 물어보기도 전에 이미 2잔을 주문해버림)으로 인해 주스가 나왔다. 아빠에게 그건 계산되지 않은 습관과도 같은 호의였다.


주스를 다 마신 후 계산을 하려고 보니, 주스를 팔던 현지이미 전 도시에 머무르며 우리가 알고 있는 현지 가격에 5배의 넘는 가격을 불러버렸다. 가격을 물어보지 않고 이미 드링킹을 했기 문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서, 아빠는 뭣도 모르는 상황에 내게 어서 계산하라고 하고. 옆에 있던 모자팀은 그건 너무 비싼 거라며 부담스러운 맘과, 미안한 마음에 큰 소리를 내시며 현지인에게 뭐라고 하셨다. 아빠는 머쓱해하고. 여러 사람이 실랑이를 하고 있던 그 상황에서. 이건 뭐지 하는 그 상황에. 이건 진짜 뭐지, 뭔데 내가 무거워지지. 그러고 모두가 씁쓸해한 채 버스를 타던 기억. 상황이 종료되고 버스에 탔던 나는 1시간 정도를 그곳에 머물렀다. 난 그냥 계산만 했는데, 이 찝찝한 감정들은 뭐지? 모두 다 호의였을 텐데, 좋은 마음에서 한 행동들일 텐데 모두가 찝찝한 채로 부담만 가득 안은 채로 종료된 상황.





각자에게 익숙한 방식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르게, 때론 다르면서도 더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오늘 배운 걸까. 아빠는 그저 좋은 마음에서 베푼다고 한 행동이었을 텐데, 누군가에게는 일방적으로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고. 거기서 누군가의 아주 작은 욕심이 모두의 시간을 불편한 시간으로 한 번에 돌리기도 하고. 내게만 복잡 미묘하게 느껴지는 건가. 내가 머무는 이 공간에, 곁에 있던 사람들 각자의 방식이 어우러지면서 초래하게 되는 혀 예측할 수 없는 결과. 이것이 하는 것은 뭘까. 생각해보니 여행길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머무는 모든 공간이 그렇다. 여기 주인공인 나와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 통제, 예측할 수 없는 각자라는 세상과 무수한 가능성들. 이 안에서 나는 어떻게 적응하며 사나.




마음의 방식, 이해, 관용의 적용에 그건 개인의 음의 크기가 아니라 살아온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임을 알게 된 걸까. 그래서 나의 기준으로 비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 내 마음이 작아서 당신의 마음이 커서도 아닌. 당신의 마음은 얇아서, 나의 마음은 두터워서 당신을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뭐라 할 수가 없다. 살아온 방식이 다른 우리는 서로 다른 모양의 마음으로 살아온 걸, 나는 당신의 삶을 탓할 수 있을까.


 난 그래서 성격이 급한 아빠를 혼내려다 멈췄다. 그러니까 "아빠는 왜 이렇게 참질 못해", "한 템포만 쉬어봐"라고 쉽게 말하기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빠라도 아빠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겠지. 그래서 내가 있는걸. 로 다른 마음의 모양에 일일이 헤아리기란 불가능하다. 그것마저도 욕심이라면 그냥 그러려니, '다른 마음을 갖고 있구나' 정도로 알고 있기로 했다. 상대를 바꾸려는 것보다 내가 적응하는 게 훨씬 빠를 것 같다. 저 마음의 모양을 탓할 권리가 내겐 없다. 아빠가 성격이 급하게 된 것도 삶에서 필요해서였음을 숙고하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욱! 하는 걸 멈추려다 이렇게 삭히려 쓴다. 쨌든 남에게 지나치게 피해를 주는 방식이라면 그건 따져야 할 것이 맞지만.


불편한 건 마음의 크기가 아니라 그저 살아온 방식이 른 것일 뿐. 러니 누군가의 삶에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할 권리도. 어떤 이의 삶에서 슬픔을 꺼내, 마찬가지로 막연하게 누군가의 삶을 부러워하는 것로 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서 지켜보는  필요한 것 같다. 지나가는 감정보다 삶이 먼저 인 것을, 하나를 배운다. 여행에서 보니 더 극명하게 보이는 것들에  혼자서 의미부여를 하 .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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