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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May 18. 2023

고통의 역설의 역설

고통의 역설의 역설,



문득 알았다. 내가 넘어갈 벽이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걸.




한동안 무언가에 꽉 막혀있는 느낌에 사무쳤었다. 익숙하고, 짙고, 깜깜한 나를 둘러싼 직사각형의 동굴. 그곳에서 난 모서리의 끝으로 밀쳐져 있었고 주변은 온통 검은 벽들로 서있는 것 밖엔 할 게 없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봤지만 다 실패였다.


첫 번째로 힘으로 부수어 보려 애쓰고, 두 번째론 머리로 이해하려 애쓰고, 세 번째론 막혀 있는 그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도 보고, 고통 그 자체와 하나가 돼버리는 것도 해보고, 네 번째론 더 큰 사랑으로 녹이려고 해 보아도. 어느 하나도 통하지 않았다. 안타까운 건 이 기간 동안엔 그동안의 치유의 과정에서의 경험과 데이터들이 종종 날 더 힘들게 하기도 했다. 이건 나의 익숙한 패턴이지만. 내가 그동안 해왔던 것은 뭐지? 기쁨과 환희들, 만나게 된 여러 사랑들로 인해 오히려 더 무력해지도록 끊임없이 날 몰아쳤다. 시작의 원점으로 무한반복으로 데려다 놨다. 몸엔 힘이 자주 빠지고 무기력의 반복과 반복이었다.

 

어떻게 이걸 넘기지. 흐르지. 무언가의 비장의 무기가 있어야 해. 오랫동안 갇혔어. 정말 싫어-그리고 정말 외로워-.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몰라-. 속으로 들어가고 들어갔다.


그러다 문득 어제 만났다. 애초에 그 벽조차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갇혀있다고 느끼고 있는, 나를 가두고 있는 건 나라는 걸. 그것들을 넘을 수 있는 방법은 그 벽이 없었음을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러니 뛰어넘을 것도, 부대낄 것도 아래의 수많은 고통, 슬픔, 괴로움 그리고 곧 따라오는 기쁨의 모든 순환의 것들이, 별거는 맞지만 결국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는 이 아이러니가 날 꺼내준다는 게. 그러니 날 괴롭혀진 것들이 허물어지려 한다.


무엇일까. 참 허탈하다. 아프다는 것도 우울한 것도 기쁘다는 것도 거짓일지도 모르며, 그것들은 무엇인데? 감쪽같고 생생하기만 하다. 이들로 도망치고 때론 극복하고 마음을 내어 수용하려 수년을 안간힘을 쓰던 것들이, 폭포수에 휩쓸려 온 것처럼 이곳까지 쓸려와서는. 결국 극복하고 수용해야 할 모든 그것들은 애초에 없었다는 것을 만나게 하다니. 내게 감정은 살아있음인데, 그것이 전부인 내게. 그것으로 살아온 내게.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건 아니라는 이 역설을. 그렇게 감을 잡으며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 정신을 말똥히 뜨면, 지금 오직 내게 살아있는 건 얼마 전 벌레에 물려 근질거리며 아픈 등의 통증, 방금 고깃집을 지나는데 코끝으로 들어오는 맛있는 냄새. 아무것도 아닌, 걷는 지금뿐이다.


그동안 무엇을 했지? 어제는 이 모든 게 허탈해. 뛰어넘을  없다는 허망함, 결국 나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억울함, 고뇌의 방향이었던 고통과 날 괴롭히던 수많은 것들이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워 통곡을 했지만 오늘은 어이없는 웃음이 난다. 그러다 또 까먹고 감쪽같이 각 잡고 어제의 나를 붙잡으려는 찰나에 연인이 아주 좋은 위로를 해주었다. 무너트리기 위해 공들여 애써 쌓아 온 것 일수 도있다고. 그럴지도 몰라.  신기하다. 나만 몰랐나?


속에선 웃음이 난다. 난 요즘 믿을 수 있는 게 없다. 특히 나를 믿을 수 없다. 다 뻥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다 흘려보내는 말들이 되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믿는다는 것도 애초에 없었기에 믿을 수 없는 게 자연스러운 게 돼버리는 건데. 말장난 같지만 그게 내겐 진짜 같다. 결국 아무것도 아닌 나만 남았고 아무것도 아닌 지금만 남았다.


너머, 너머, 너머.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려서 난 이제 쫓아야 할 게 사라져 버렸다. 출발점을 잃어버렸다. 하하. 그냥 아무개가 되어버렸는데 웃기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갈 거야?라고 하면 사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여전히 여기서의 삶을 사랑한다고 가슴은 말하겠지.  달려갈 곳이 없으니 사랑할게 더 많아졌을지도 몰라. 지금 이 말도 뿡뿡이려나. 이젠 모든 게 웃겨!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다 결국은 그냥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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