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없다,
지금의 눈물은 내 모든 역사가 담긴 지금의 눈물. 지금의 기쁨은 내 모든 게 담긴 지금의 웃음. 모든 것이 담긴. 그러니 지금의 울음과 지금의 웃음은 사실 의미가 있으나 없다. 내 모든 게 담겨 있기에. 섞여있기에. 난 나의 모든 것을 알 수 없기에. 마찬가지로 타인에게도. 과연 선명한 울음과 선명한 웃음이 있을까? 모든 시간이 섞여버린 지금. 의미를 덜면 그냥 생각 없이 웃고, 생각 없이 울면 덜 피곤하려나. 이 울고불고 웃고 팔짝 뛰고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 밖엔 할 게 없다.
한편 혼란스러움과 불안은 삶, 그 모든 과거, 현재, 미래가 포함된 나의 삶, 지금에 대한 책임의 값을 알고 있는 것의 반증이다. 하나의, 지금의 선택이 과거, 현재, 미래를 넘어 내 세상을 창조하고 있음을 아는 사람들의 불안이다. 세상과 삶이 내게 가까워졌다는 울음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그것을 아는 자들의 책임이다. 알고 있기에 두려운 것이다. 모르면 두려울 수가 없지 않을까. 그래서 난 두려움이 없다는 사람들을 잘 믿지 않는다.
인간의 관점에서 시간이 없음은 허무하다. 그 모든 것에 내가 없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이 난데? 그러나 넓은 관점에서 이건 네가 시간, 세상 그 자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슬픈 것, 그래서 웃는 것. 이 모든 장난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여기밖에 없다는 소리다.
결론 뭣도 없으니 놀자. 우리 사랑을 하자. 졸라 울고 졸라 웃고 깔깔깔. 기꺼이, 매 순간 진심을 담아 놀자! 그게 나의 모든 역사를 존중하고 미래를 창조하는 것. 아니 미래가 되어버리는 것! 지금을 사는 것이 결국 모든 것을 존중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