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여행 핑계를 만들다
'오히려 잘 됐어.'
조지아 여행 핑계를 만들다
99.. 100! 끓어 넘친다.
섭씨 100도가 되어야 비로소 머리 풀고 날아가는 물처럼 조지아행을 꾹꾹 누르고 있던 내 맘이 한계점을 넘어버렸다. 카톡 생일 알림 덕분에 여기저기에서 축하인사와 기프티콘을 받고 아이들은 어떤 선물을 보낼까 내심 기대해 본다. 이미 성인이 된 네 명은 스스로 돈을 버는지라 용돈을 주지 않는다. 사회 초년생과 학생이 무슨 돈이 있겠냐만은 케이크, 장갑 정도는 받았다.
사람들이 자녀 수를 물어보면 긴 설명이 귀찮아 “아들, 딸 있어요.”라고 답한다. 네 명이라 하면 74년생인 내 또래에 흔한 일이 아니라서 낙태를 금하는 카톨릭이냐고 묻거나 전부 친자식이냐고 물어본다. 나는 그저 애가 잘 생기는 다산체질이다.
군대 간 아들 이름으로 택배가 온다. “그렇지, 드디어 왔구나!” 아니다. 자기 물건이다. 안달이 나 살짝 말을 흘린다. “엄마 생인인데.”라고. 큰 아들에겐 작년처럼 케이크 말고 상품권을 달라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결국, 이번 생인엔 시집간 딸이 애 봐 달라는 부탁과 함께 보낸 용돈이 끝이다. 수확률 25%다. 내 탓도 있다. 애들 어릴 때는 친구들 불러 생일파티도 열어줬지만 일을 시작하고서는 굳이 생일을 특별히 챙기지 않고 미역국에 케이크, 용돈으로 넘겼다. 밤 12시 전에 깜박해서 미안하다며 부랴부랴 생일을 축하하는 촛불을 켠 적도 있다. 막내에게 섭섭하다는 카톡을 보낸다. 며칠 만에 “미안하다. 훈련이었다.”로 시작하는 장문의 카톡이 온다. 하지만 그가 주문한 쿠팡 택배는 한 두개가 아니었다.
‘그래, 까짓거 오히려 잘됐어. 나는 이제 나만 챙길 거야.’
빈둥지증후군이 이런 건가 싶어 우울했다. 기어이, 수백만 원짜리 해외여행 티켓을 지르고 말았다. 이렇게 통쾌할 수가 없다. 가고 싶은 여행지 목록에 조지아를 넣은 건 TV 여행 프로그램 때문이다. 세 달 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커피 맛이 좋다고 찾아간 카페에서 완벽한 라테를 내놓는다. 로스팅 기계를 보란 듯이 창가에 비치하고 바리스타 수업을 진행하는 곳이다. 수강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봉곳한 거품에 좌우 대칭이 예쁜 하트를 그려내 왔다. 원데이 클래스 경험자로서 이렇게 모양내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저절로 물개박수를 치며 실력을 칭찬했더니 수줍게 좋아한다. 서로 안부를 묻는 내용으로 보아 주인의 친척인 옆 테이블 사람은, 우리가 오기 전부터 있었는데, 친정집에 온 딸 마냥 서슴없다. 주위 모든 소리를 잠식하는 그들 목소리에 우리는 서로에게 몇 마디 말을 더 건네다, 대화를 중단하고 커피 맛에 만족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 말 없이 차를 마시던 그때 TV에 눈이 갔다. ‘세계테마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조지아를 소개하고 있다. 스위스만큼 아름다우면서 가격은 저렴하고, 무엇보다 와인을 실컷 마실 수 있다고 했다. 그때 마침 국내 여행을 몇 번 같이한 지인의 조지아 모집 글이 페이스북에 올라왔고, 나는 “이거다!” 싶어 신청 댓글을 달아버렸다.
“엄마 조지아 다녀온다.”라는 소식에 아이들은 “언제 오냐. 잘 다녀와라. 캐리어 빌려준다.”는 반응이다. 약간은 부러워하지만 같이 가겠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친구들과 여행이 훨씬 재밌는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