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좋은 주말 아침이었다. 이 상쾌함이 종일 이어지길 기대하며 남은 잠기운을 떨치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머리 위로 샤워기를 들이미는 순간 덜컥. 누군가 방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잠이 덜 깬 채 징징거리며 달려온 이는 웬일로 늦잠꾸러기인 우리 첫째였다.
"엄마 눈이 너무 간지럽고 따가워."
일어나자마자 눈이 불편한 건 아마 눈곱 때문이겠거니 생각했다. 흥건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부여잡고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반쯤 고개를 돌려 좋게 타일렀다.
"일단 세수 한번 해볼래? 그래도 계속 간지러우면 병원 가보자."
아들은 불편하고 아프다면서도 뭔가를 해야 하는 것이 귀찮은 듯했다.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투덜거리더니 결국 사달이 날 소리를 내뱉었다.
"세수해도 안 괜찮아지면 엄마는 이거 어떻게 보상할래?"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에서 물이 떨어지든 말든 잡고 있던 수건을 풀어 헤치고는
"너 그게 무슨 소리야?" 하고 소리를 빽 질렀다.
그냥 이렇게 잔소리를 끝낼 내가 아니다.
"엄마는 네가 아프다 해서 얘기해 준 건데 효과가 없으면 보상하라니! 너, 어디서 그런 사기꾼 같은 짓을 하는 거야? 이런 나쁜 심보를 가진 아들 엄마는 키우기 싫어!!."
내가 여기서 더욱 격분했던 이유는 바로 아이의 의중이 느껴져서였다. 평일엔 천근만근 일어나는 아들이 주말이면 새벽같이 눈을 뜨는 이유. 바로 눈 빠지게 기다리던 게임 때문이다.
아들은 들뜬 마음으로 일어났지만 눈이 불편해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엄마한테 말하면 별 방법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귀찮게 세수까지 해야 했다. 억지로 했는데 효과가 없으면 '보상'을 요구할 계산이 떠올랐을 것이고 협상하면 제일 먼저 나올 말은 '게임 시간 연장'이 뻔했다.
상쾌했던 마음은 순식간에 실망과 걱정의 먹구름으로 가득 찼다. 아들은 급히 태도를 바꿔 반성했지만 활화산처럼 치솟았던 내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십여 일이 흘렀다. 아들 키우는 삶이란 늘 그런 일들의 연속이었고 어느새 그 사건은 내 기억 속에서 까맣게 잊혔다.
며칠 전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가방을 벗자마자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관한 글이라며 뿌듯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내가 이 주제 보자마자 그 말실수가 기억나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적었어."
삐뚤빼뚤한 아들의 글씨에 어리둥절한 나의 시선이 가닿았다.
<내가 했던 실수>
10월에 제가 눈이 아팠을 때 엄마가 세수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전 엄마한테 그 비법이 통하지 않으면 보상하라는 말실수를 했습니다.
<주변의 반응>
엄마는 제가 한 행동에 '사기꾼' 같다고 하셨고 절 '집에서 쫓아내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그때 나의 마음은?>
그렇게 보상하라고 말한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이 실수로 깨달은 점>
누가 날 도와주려고 하면 무조건 고마운 마음부터 가져야 하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
여러분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글을 읽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아들의 잘못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사기꾼'과 '쫓아내고 싶다'라는 표현만 두드러졌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저 아이들의 평범한 말실수일 뿐이었다. 아들이 강당에서 발표할 예정이라며 호기롭게 읊어대는 동안 나는 상황을 미화해 보고자 종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곧이어 다정함을 가장한 비굴함으로 아들에게 말했다.
"해준아 근데 이러면 엄마가 너무 매정한 사람이 될 거 같은데. 여기 '계속 아프면 병원 가보자'라고 엄마가 했던 말 한마디 더 넣어 보는 건 어때?"
자상하려고 나름 애썼고 화날 수밖에 없었던 정당성을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아들의 태도는 단호했다.
"안돼. 이미 선생님이 확인했는데 내용을 바꾸면 거짓말처럼 보이니 이대로 두는 게 좋을 거 같아"
10년을 애지중지 키워온 내 자식이 엄마 속도 모르고 이렇게 냉정할 줄이야.
'우리 아들 대문자 T였구나.'
아들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글을 외웠고 나는 속으로 씁쓸한 웃음을 삼키며 종이를 가방에 넣었다.
결혼 전에 영어유치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귀여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자체도 참 즐거웠지만 특히나 거를 수 없었던 깨알 재미는 있는 그대로 터져 나오는 아이들의 집안 속사정이었다.
"떤땡님 어제 엄마 아빠가 싸웠는데 아빠가 쫓겨나서 30분 동안 복도에 서 있떴더요"
"떤땡님 오늘 저 유치원 마치고 어디 가요."
"그래 어디 가는데?"
"저 오늘 친정 가요."
그때 결심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결코 필터 없이 발설할 사건은 만들지 않거나 원천 봉쇄하겠다고. 하지만 이 일이 이렇게 진화할 줄이야. 초등학교의 글쓰기 소재는 아이들의 기억에 남는 가장 자극적인 일상이었고 나의 치부는 결국 이렇게 탄로가 나버린 것이다. 수십 권의 육아서를 읽고, 수백 개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알게 된 이론만 수천 개 면 뭐 하나. 아이 키우는 일상에서 엄마의 감정은 그저 본능에 충실한 야생의 사자와 같다는 것을. 그렇게 세상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들을 보며 허탈한 웃음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