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남편은 오늘도 어김없이 신나는 음악을 틀고 운전대를 잡았다. 겨울에도 실내수영을 할 수 있는 당일 캠핑장이 있다기에,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섰다. 보조석에 앉은 첫째는 졸린다며 의자를 뒤로 젖혔고 뒤에 앉은 둘째는 불편하다며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음악에 취해 운전만 하는 남편에게 뒷좌석의 소란은 그저 강 건너 불구경일 뿐, 수습은 늘 내 몫이다."의자 조금만 올려줄래? “한 번에 듣지 않는 첫째,
억지스러운 항변을 늘어놓는다. 그에 질세라 둘째는 더 큰 목소리로 불만을 보탠다. 삽시간에 고성이 난무하는 차 안. 결국 더 큰 소리로 제압해 보지만, 입에서 나오는 건 공허하게 반복되는 잔소리뿐이다. 그 와중에 혼자 신이 난 음악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더욱 요란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지만 내 속을 더욱 시끄럽게 한 건 음악도, 아이들도 아니었다. 10년을 살아도 여전히 맞춰지지 않는 결이었다.
나는 큰 소리를 싫어한다. 심지어 클래식 음악도 일정 데시벨을 넘기면 소음이 되어버린다.
천성도 있겠지만, 늘 소란 속에 사는 삶이 그 예민함을 더 키웠을 것이다. 나에겐, 적막한 공
간에서 일정하게 흐르는 냉장고 전기 소리에 귀 기울이는 순간이 가장 평온하다. 반면 남편은
흥이 많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냥 하는 법이 없다. 늘 신나고 즐겁게, 행동의 목적에 따라
공간을 소리로 채워 기운을 내는 사람이다. 고요한 주말 아침, 이불속 안온함을 좀 더 즐기고 싶은 순간마다 늘 찬물을 끼얹는 건, 채 들을 준비도 안 된 귀에 들이치는 쩌렁쩌렁한 거실 음악 소리다. '오늘 아침은 아빠표 토스트다!'를 외치며 잠이 덜 깬 아이들을 깨우고 텐션을 돋운다. 아이들도 덩달아 신이 난다. 거실은 이미 파티 분위기다. 내가 못 하는 일이니 그저 고마운 일이라
여기면서도, 결국 미간을 찌푸린 채 무겁게 몸을 일으킨다.
하루는 퇴근하고 온 남편이 저녁을 먹으며 휴대폰으로 뉴스를 틀었다. 볼륨을 좀 낮춰도 되건
만 꼭 티브이를 튼 것처럼 온 집안이 시끌벅적했다. 이쯤 되면 우리가 듣는 세상이 애초에 다른 게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뉴스가 궁금한 아이들의 질문까지 쏟아지며 거실이 떠들썩해질 때쯤, 나는 재빨리 집안일을 마치곤 슬며시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냥 볼륨을 좀 낮추라고 하면 될 일인데, 그 한마디가 나에겐 큰 벽처럼 여겨졌다.
이 모든 갈등의 원인은 따로 노는 내 머리와 마음이었다.'그래 남편도 숨 쉴 틈이 있어야지. 힘들게 일하고 왔는데 하루의 고단함을 해소할 무언가가 필요할 거야.'살면서 부부가 풀어나가야 할 일들은 차고 넘친다. 이런 사소한 간극까지 좁히려니 서로가 너무 피곤해질 거 같았다. 어쩌면 과도한 내 예민함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내가 맞추면 될 일이라 체념해 보지만, 섭섭한 마음은 가끔 불쑥 고개를 들었다.'그래도 한번 물어봐 주지.''이 소란 속에서도 나만 정신이 없는 건가?‘
결혼생활은 어쩌면 맞지 않는 감각의 주파수를 견디며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 방안에 혼자 앉
아, 2퍼센트 부족한 남편의 센스를 곱씹으며 내 안의 나와 험담을 나눴다. 시간이 흐른 뒤,
내 마음도 거실도 잠잠해졌을 무렵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거실로 나섰다. 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또 그렇게 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