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중이지만 1교시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등교 시간에 한 번만 운행하는 통학버스를 타야 했기에 아들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 했다. 아침 분위기는 예상대로 살벌했다. 아침잠이 많은 아이라 일어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전날 밤 유튜브 시청 문제로 실랑이를 벌인 탓에, 아이는 여전히 퉁명스러운 얼굴로 나를 흘겨봤다. 차를 놓칠까 서두르는 내 마음과 달리, 아들의 행동은 영 굼떴다. 평소 같으면 재촉했겠지만, 더 이상 분위기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한편으로는 이제 등을 떠밀기보다 스스로 판단하고 그 결과를 감당하는 법을 배웠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등교 준비를 하며 날씨를 확인했다. 하필 영하 5도였다. 굳건했던 마음 한구석이 흔들렸다.
‘너무 춥지 않을까? 오늘만 태워줄까?’
'아니야, 이 정도 추위는 겪어봐야지. 그래야 정신을 차리지.'
두 마음 사이에서 오가며 말없이 아침을 차렸다. 아이의 태도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살얼음판 같던 아침이 그럭저럭 지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복병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말을 아끼려던 내 의도를 읽지 못한 남편이 아이를 다그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늦겠다. 빨리해라. 또 버스 놓친다.”
그 한마디는 결국 불붙은 마음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간신히 버티던 아이의 기분이 폭발했고, 입으로 들어가야 할 밥숟가락이 멈춰 섰다.
결국 버스는 떠났다. 수업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아이와 소파에 앉았다. 전날의 앙금을 풀고 오늘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잠이 깨고 마음이 누그러진 아이는 의외로 차분했다. 이럴 때면 한없이 약해지는 것이 엄마 마음이다. 뒤늦게 나갈 준비를 하는 아이를 불러 세워 결국 "태워다 주겠다"라고 말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이 화근이었다. 엄마의 권위도, 아이의 자립심과 책임감도 한순간에 무너뜨린 성급한 결정이었다. 커피를 내리고 있을 때, 이 상황이 못마땅했던 남편이 다가와 한마디를 던졌다.
"네가 늦게 준비해서 놓친 건데 걸어가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책임감이 없어서 어떡하니." 남편의 눈은 아이를 향해 있었지만, 화살은 나를 겨누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 앞에서 내 체면을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나름의 배려였다.
아이는 아빠의 말에 발끈했고, 그 기세 뒤에는 엄마라는 허술한 방패가 있었다. 커피머신에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남편의 말이 틀리지 않았으니까. 나도 남편의 권위를 무너뜨릴 순 없었다.
“아빠 말이 맞아. 시간이 늦은 걸 알면서도 늦게 준비했으니 책임지는 게 맞지. 엄마도 처음엔 태워주지 않으려 했어.”
나의 빈틈을 감추려는 얄팍한 합리화였다. 그리고 마지막 선택을 남편에게 넘겼다.
“아빠가 가장이니까, 아빠한테 허락받아야 할 것 같아.”
서재로 향하는 아이에게 궁색한 당부까지 덧붙였다.
“가서 공손하게 말씀드려.”
10년을 넘게 해도 육아는 여전히 어렵다. 모든 원흉은 결국 엄마의 조바심이라는 걸 다시금 절감한다. 버스를 놓친 일도, 영하 5도의 추위도 아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매 순간 흔들리지 않는 것,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것, 육아는 겉보기엔 아이와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결국 내 안의 의지와의 싸움이다. 오늘만큼은, 나는 그 자리에서 똑바로 서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