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라는 허상

키워드: 돈

by 위대한 주니안


3년 전 아파트를 샀다. 꼭대기가 어딘지 모를 만큼 집값이 치솟던 시기에 마침 살고 있던 집 보다 훨씬 저렴한 분양가로 나온 아파트였다. 집을 팔고

이사하면 차익도 남길뿐더러 새집에서 살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3년을 기다렸다. 하지만 작년부터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살던 집값은 연일 떨어졌고, 차익은커녕 웃돈을 주고 이사를 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학교, 아이들 친구, 생활의 편의까지 생각하면 지금 집을 굳이 떠날 이유가 없었다. 3년 동안 품어온 ‘새집 장만’에 대한 설렘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았다. 묵은 짐을 정리하고, 10년 넘은 가구를 바꿀 생각에 들떠 있었지만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새 아파트를 부동산에 내놓아야 했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시장 전체가 얼어붙어 새집도 거래가 없었다. 잔금 기한이 다가올
수록 마음은 조급해졌다. 분양가를 깎아가며 흥정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사이 중도
금 이자에 대한 압박은 계속되었고, 통장 잔고는 밑 빠진 독처럼 줄어들었다. 두 달 만에 겨우 매수인을 찾았다. 내가 치렀던 분양 계약금의 반을 깎아 구한 매수인이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 여겼다. 이제는 한시름 놓겠다 싶었는데 부동산에서는 복비를 두 배로 불렀다. 명의 이전 과정에서는 중도금 해지 비용, 인지세 등 수십만 원의 돈이 껌값처럼 빠져나
갔다.

어느 날 오후, 늦은 점심을 해결하려고 배달앱을 켰다. 먹고 싶은 메뉴가 있었지만, 배달비가
손가락을 붙들었다. 무료 배달로 눈을 돌렸지만, 마음이 가는 음식은 없었다. 한참을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알람이 울렸다. 아이들 하교 시간이었다. 순간 허탈감과 짜증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남들에겐 수천만 원을 인심 쓰듯 내주면서 정작 나에게 쓰는 배달비 2,500원을
아끼느라 황금 같은 시간을 흘려보낸 스스로가 한심하고 분했다. 결국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
으로 결제를 눌렀다.

나는 늘 그랬다. 필요한 물건 하나를 사기까지 몇 달을 고민했고, 가격 비교에 적잖은 시간을 쏟았다. 수업을 듣던 학생 한 명이 그만두기라도 하면 한 달 수입이 줄까 예민해졌고, 그 긴장감을 주변에 까지 전염시킬 정도로 돈에 전전긍긍해야 했다. 중도금 이자를 내야 하는 날에도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지만, 사소한 일에도 발끈하는 나를 보며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 걸까?’


돌이켜 보면 달라질 게 하나도 없었다. 통장의

무게가 늘든 줄든, 나는 매달 들어오는 소득 안에서만 생활했을 것이다. 더 사치스럽게 살지도, 어제보다 궁핍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마음은 무너져 내렸을까.

나를 괴롭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아깝다'라는 마음. 언제 쓰일지도 모른 채 숫자로만 존재하는 돈, 그 숫자가 줄었다는 사실만으로 견딜 수 없었던 박탈감. 그것만 내려놓으면 되는 일이었다. 돈이 많고 적음은 그저 현상일 뿐이다. 행복이나 불행의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돈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 그것이 결국 사람을 빈곤하게 만든다.

사람의 기본적인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더 많이 가진다 한들 무한히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재산의 크기가 소유의 질을 바꿀 순 있겠지만, 삶과 죽음을 가르는 절대적 차이는 아니다. 끝내 다

쓰이지 못한 돈들은 종이에 찍힌 숫자로 남아 대대로 이어질 뿐이다. 정작 피부에 와닿는 실체도 없는 것에 대해 상대적 빈곤이라는 환영을 만들어 감정을 소모한 것은 아닐까.

통장 속 숫자를 보며 안도하는 마음, 어쩌면 그것이 돈이 주는 최대한의 행복일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 허상에 사로잡혀 인생을 과하게 소비하고, 자신을 괴롭히고 살았다.
이제는 조금 내려놓고 싶다. 숫자의 여유가 아닌 마음의 여유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