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나의 20대
"예비 1번입니다.추가 모집 때 연락드리겠습니다."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기분이었다.
엄마는 무조건 될거라 했지만, 나는 불안하고 초조했다.
2001년 10월. 캐나다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해 3월 어학연수를 위해 출국했고 1년 계획이었지만 예정보다 앞당겨진 귀국이었다. 부산에서 대학을 다니던 내가 이듬해 서울로 편입하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시험까지 4개월,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집에 돌아와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엄마와 서울로 떠났다. 가는 차 안에서 엄마가 얘기했다.
"화야, 엄마가 사주를 봤는데 니 이번에 시험 치면 다 된단다. 엄청 좋다니까 한번 열심히 잘 해봐라.“
평소라면 믿지 않았을 말이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부적처럼 마음에 새겼었다.
편입으로 유명한 강남역 김영학원에 등록을 하고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1.5평짜리 고시원에 거처를 마련했다. 새벽 5시 반에 문을 연다는 학원 내 자습실은 100석, 반면 등록된 학생 수는 1000명이었다. 매일 아침 이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다음 해 합격생이 될거라 생각했다.
5시에 일어나 곧장 옷을 입고 고시원을 나섰다. 도착까진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이었지만 문 앞엔 이미 30명이 넘게 줄을 서 있었다. 날씨는 매서웠고 어둠 속 학생들의 입김은 하얗게 퍼졌다. 자리를 잡고 나면 화장실에서 뼛속까지 시린 물로 세수를 했다.
잠실에 사는 친구가 있었다. 자습실 자리를 잡기 위해 새벽 4시에 집을 나섰다 했다. 백팩을 맨 학생들이 같은 역에서 하차했고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다들 뛰기 시작했다고. 친구도 무심코 따라가다 왕복 16차선 도로를 대각선으로 달리는 사람들을 본 순간 마음을 내려놓았다 했다. 편입도 하고 싶지만 목숨을 내놓을 정도의 절실함은 아니었다고. 그때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웃픈 일화였다.
석 달이 흘렀다. 그새 세상엔 크리스마스도 있었고 새해도 왔었다는데 달력은 없고 시계만 있던 내겐 오로지 두 가지 날만 존재했다. 수업 있는 날과 없는 날. 요일 구분 없이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17시간을 오롯이 책과 싸웠다. 그럼에도 좌절은 늘 그림자처럼 따랐다. 모의고사를 친 어느날. 내가 바랬던 등수가 있었다. 희망의 끈을 근근히 잡고 갈 마지노선이었다. 하지만 점수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전화기를 붙들고 대성통곡을 했다. 엄마는 한 시간을 말없이 아파하며 끝까지 눈물을 받아주셨다. 당시엔 한없이 외로웠다. 하지만 돌아보니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종잇장처럼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지내던 옆방 사람들. 그 누구도 컴플레인을 걸지 않았다는 사실은 시험을 치고 집으로 돌아와 지난 시간을 복기해본 뒤에야 깨달은 사실이었다.
1월 말 마지막 모의고사에서 전체 12등을 했다. 그간 받은 최고점수였지만 꼭 가고 싶었던 학교를 가기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더는 자책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수고했던 스스로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다.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선호하는 대학부터 안정권까지 5군데 원서를 넣었고 당당히 시험대에 올랐다.
2월 말 합격 발표가 시작되었다. 합격률이 낮은 학교부터 차례차례 전화를 걸었다.
"죄송합니다. 안타깝게도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네 곳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고 나니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기대를 걸었던 곳으로 번호를 눌렀다. 시험을 치던 날이 떠올랐다. 분명 막힘없이 문제를 풀었다. 가 채점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신호음이 울리던 순간 심장은 뚫고 나올 것처럼 요동쳤다.
'딸깍' 전화 받는 소리가 들렸고 울려 퍼진 한마디. '예비 1번입니다'
한 명만 등록 포기하면 내 차례였다. 손이 닿으면 뻗을 것 같은 곳이 마치 유리 벽으로 막힌 기분으로 그렇게 며칠을 가슴 졸이며 지냈다.
"엄마 먼저 잘게. 나중에 불 끄고 들어가라.“
밤 10시가 넘은 시간. 혼자 거실에 남아 tv를 보고 있었다. 옆에 둔 휴대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무심코 폰을 열었다.
"추가 합격 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발에 용수철이 달린 듯 펄쩍 뛰며 안방으로 가 문을 두드렸다. 엄마는 놀란 토끼 눈으로 나오셨고 이내 눈꼬리와 입꼬리가 맞닿을 정도로 환하게 웃으셨다. 컴퓨터를 켜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다시 한번 합격을 확인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화면을 보고 있는데 엄마가 웃음 띈 목소리로 지난 얘기를 털어놓으셨다.
"사실 그때 점쟁이가...“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엄마가 사주를 보러 갔을 때 점쟁이 말은 이랬다.
"올해는 시험쳐봤자 다 떨어져. 그냥 다니던 데나 잘 다니게 하세요“
20대를 돌아보면 지금의 나에게서는 찾기 힘든 단순함과 무모함 뜨거운 열정이 있었고 미숙한 감정들이 수시로 발목을 잡았던, 그야말로 날것의 시절이었다. 지금의 초연함은 스스로를 수없이 할퀴고 딱지가 내려앉기를 반복했던 그 후회스러운 시간들이 있었기에 비로소 자리잡게 된 것은 아닐까. 안주가 삶이 된 40대를 살다 보니 우연히 마주한 변화에 불쑥 두려움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안 된다.'던 예언을 뛰어넘어 미래를 만들어갔던 20대의 나를 떠올린다. 결국 지나온 시간이 나에게 가장 큰 용기를 주는 인생 멘토가 되었음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