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구원하는 음식들
타고난 푸드 러버인지라 음식에 본래도 의미 부여를 많이 하는 편이다. 기쁠 때는 어떤 음식, 축하를 위해서는 어떤 음식, 아플 때는 어떤 음식. 보통 상황과 음식을 연계하는 편이다. 기쁜 날 , 즐거운 상황에서 찾게 되는 음식은 다양하다. 장소에 따라 정할 수도 있고, 함께 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이 유난히 지치고 힘든 날, 스트레스를 잔뜩 받았으나 누구에게도 쉽게 입을 떼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찾게 되는 한 가지의 음식이 있다. 그런 음식을 소울 푸드라고 부른다. 인생의 어떤 순간을 음식에게 구원받아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 한 그릇이 얼마나 충분한 위로와 응원이 되어주는지를.
나의 소울푸드는 틈새라면이다. 틈새라면은 명동 본점에서 시작한 라면 프랜차이즈로 지금은 가맹점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나의 동선에 걸리는 곳은 집 근처의 지점과 지하철 이동 동선에 걸리는 지점, 그리고 가끔 방문하는 대학병원 인근에 위치한 지점 등이 있다. 봉지라면과 컵라면으로도 출시되어 있어서 근접성이 좋은 라면이 나의 소울 푸드가 된 데에는 몇 가지 계기가 있다.
돌아보면 막 학기+사회초년생+취직 준비생으로 지냈던 일 년 반 정도의 시간이 인생에서 스스로가 느꼈던 가장 큰 암흑기가 아니었나 싶다.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에서 멀리 도망갈 수도 없고, 인생을 게임처럼 손쉽게 리셋하고 다시 시작할 수도 없는 시기였다. 존버를 외치며 잘 버티다가도 막다른 곳에 감정이 몰리는 순간들을 타파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순간에 소울 푸드를 먹었다.
맵고 자극적인 라면과 짜고 느끼한 스팸 주먹밥을 시켜 동시에 먹는다. 얼큰하고 칼칼한 맛에 집중하다 보면 내가 들고 왔던 고민을 생각할 틈이 없다. 본능적인 자극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라면 한 그릇을 비우는 과정에서 필요한 능력과 기대치도 크게 없다. 그저 물과 단무지를 잘 리필하면 그만인 것이다. 한 그릇을 딱 비우고 돌아설 때 입술이 얼얼한 기분도 생각보다 꽤 좋다. 전투적으로 집중해서 얻은 상흔 같기도 하다. 입술의 얼얼함이 가시기 전에 근처 편의점으로 가서 하드를 문다. 병 주고 약 주고 같은 행위 속에서 매운맛, 짠맛 뒤에 단맛이 들어오면 식사라는 하나의 챕터가 제대로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6000원 남짓의 비용으로 스스로 할 수 있는 살풀이 굿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먹기 전에는 많은 것들을 생각한다. 오늘 만난 면접관들의 얼굴, 통장에 남아있는 잔고, 앞으로의 계획 같은 걱정의 얼굴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먹는 도중과 먹고 난 뒤에는 그냥 감각만 남는다. 맛있었다와 해치웠다는 기분 말이다. 취준이 한참 전에 끝난 지금까지도 나는 소울 푸드가 필요한 사람이다. 누구에게 털어놓기도 애매한 걱정과 스트레스가 남아있는 한 말이다. 해결할 수 없이 짊어지고 가야만 하는 고민들이 있을 때는 집에 돌아 돌아가는 길이더라도 틈새라면에 들렀다 가기를 택했다.
사실 소울 푸드가 틈새라면이라는 것은 사실 공공연한 비밀이다. 엄마는 건강 애호가에 자극적인 맛을 싫어하시는 분이다. 집에서 라면과 스팸 같은 나의 소울 푸드의 주재료를 먹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소울푸드의 정체를 알면 우리 엄마는 분노를 넘어 속상해할 사람이다. 엄마의 정신 건강을 위해 소울 푸드의 정체는 앞으로도 비밀로 할 생각이다.
인스타 스토리에 소울 푸드를 먹거나 그리워하는 사진을 올리면, 스트레스가 한계치에 도달했구나 하는 사인이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 지난달에 먹은 틈새라면 사진을 sns에 업로드했다. 오늘은 장염 진단을 받고 저녁은 굶었다. 오늘 미팅 결과 재택근무는 또 연장되었다. 힘든 하루였다. 지금 이 순간 다른 무엇보다 소울 푸드가 무척 먹고 싶다. 며칠 안에 반드시 영혼을 구원받으러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