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형 고민

지속가능한 어른이 되는 과정

by 이다다


어제는 코로나를 뚫고 친구들을 만났다. Y와 M은 학부 동기이고, 20대의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Y와 점심때 만나 공덕역에서 간장 게장 정식을 배부르게 먹고, 신촌으로 자리를 옮겨 M을 만났다. 인당 36,000원짜리 게장 정식을 가뿐히 먹고, 커피 값을 서로 내겠다고 투닥거릴 때마다 어른이 된 것 같은 우리에게 낯선 마음이 든다. 돈 없던 스무 살부터 우리가 쭉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 옛날에는 시간이 많아 매일매일 붙어있었지만, 돈이 없어 학식 하나를 사서 나눠먹기도 했었다. 이제는 셋다 제법 사회인의 모양새를 갖추었지만 대화의 수준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묘한 안도감을 받는다.


M의 추천을 받아 간 카페에 앉아 음료를 마시면서, 한참 코로나 시국의 마스크 구하기와 재택근무 경험과 400번을 저어야 완성이 된다는 달고나 커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이 어려운 시기가 삶을 바꿔가고 있는 모양새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Y는 속한 업계 자체에서 일을 구하는 게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계획하고 있는 모든 일이 틀어졌다고 말하는 얼굴에 실망감이 역력했다. M은 연기된 외근과 출장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M과 나는 그래도 프리랜서인 Y 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었다. Y는 워낙 뜻한 바가 있으면 실행으로 옮겨야 하는 유노윤호형 DNA를 가진 인간인지라, 인간의 의지로 돌파할 수 없는 지금 상황이 더욱 답답한 듯했다. M과 나는 어떤 말로도 쉽게 위로를 할 수가 없었다.


Y가 저녁 일정으로 먼저 자리를 비우고도 M과 나의 수다는 계속 이어졌다. M이 목소리를 낮추고 자신이 요즘 이상하다고 말했다. M은 요즘 가족들과 사이가 별로라며, 큰 일도 아닌데 자꾸 신경이 쓰이는 자잘한 것들에 대해 말했다. 그 내용이 실로 대단치 않은 것들이라 진지하게 고민을 듣겠다고 누차 다짐을 했음에도 웃음이 새어 나왔다. M은 이런 고민을 하는 자기가 자기도 납득이 안된다면서, 하지만 기분이 나쁘고 불편했다는 감정은 팩트라고 말했다. 나는 M에게 요즘 나를 괴롭히는 친구 사이에 대해서 털어놓았다. 자잘한 것들이 자꾸 신경이 쓰인다고,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M은 왜 나이를 이만큼 먹고 친구들이랑 싸우냐고 나를 웃으며 타박했다. M과 나 모두 근래 들어 가장 심각한 고민들을 공유했지만, 분위기는 심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큰일 날 일들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M에게 내가 말했다. 우리의 고민들이 마치 유럽에서 주 3일제 근무를 주장하며 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의 고민 같아. M은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우리의 고민이 당장 분초를 다투는 생계의 문제가 아니라, 나 개인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생긴 고차원적인 고민이라는 뜻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고민을 '선진국형 고민'이라고 정의했다. 우리도 기본권을 투쟁하는 고민들을 꽤나 오래 했었다. 당장의 취업, 당장의 졸업, 당장의 문제 해결을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수많은 상황들이 있었다. 사회에 나오고도 3-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더 이상 생계를 고민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고민을 '선진국형 고민'이라고 부르며 객관화하는 순간 나는 우리가 좀 대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 또한 스스로를 알아가며 지속 가능한 어른이 되고자 하는 우리의 과정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M도 나도 이런 형태의 고민을 시작하는 시기에 이제 막 도달한 것이다. '선진국형 고민'을 해결하는 방법이 화염병을 던지거나, 유리창을 부수는 액션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M과 나는 서로의 비루하고 지질하고 남사스러운 고민을 계속 들어주며, 나름의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우울함이 찾아오면, 오늘의 대화를 떠올려야지. 우리의 고민이 '선진국형 고민'이라는 그 생각만으로도, 조급함과 답답함을 조금은 덜어내고 서로의 비웃는 얼굴을 떠올리며 잠깐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든 다시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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