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마음은 독이 될까?

간절함과 절박함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나

by 이다다


'꿈'이라는 기조를 바탕으로 혹독한 입시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 온 한국의 90년대생 답게, 스터디 플래너 앞장에는 항상 R=VD (Realize = Vivid Dream) 같은 문장을 유성매직으로 쓰곤 했다. 또는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들은 그 꿈을 닮아간다는 둥의 출처 모를 문장을 쓰고는 했다. 대학 입시에 나는 얼마나 간절하고 절박했던가. 어릴 때부터 서로의 경쟁이자 견제 상대였던 친구가 먼저 덜컥 좋은 학교에 붙었다는 소식을 듣고, 야자 시간에 복도에 나와 그 친구를 이기려면 내가 갈 수 있는 남은 학교가 몇 개인지 헤아려보는 졸렬함이 그 간절함의 일부였다. 입시는 나름 성공적이었고, 나의 간절함과 노력이 이루어진 성과라고 불릴 만했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은 다들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 낸 결과에 만족하고 있었고, 그 흐름에 편승하여 물색없이 행복할 때도 많았다.


사회에 나갈 때도 무척이나 간절하고 절박했다. 아무 것도 이뤄 놓은 것이 없이 졸업반이 되던 해에, 늘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한 번만 꿈의 언저리에 가게 해주세요', '한 번만 내 힘으로 뭔가를 해내게 해 주세요', '기회를 주세요'. 종교도 없으면서, 마음속으로 실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빌었다. 간절함+노력=성취라는 공식을 한 번 실현해 봤기 때문에 더 절박하게 매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공식에는 미처 알지 못 한 변수들이 작용하고 있었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나를 이끌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간절함은 때로는 무기지만 독이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4년 차에 불과하지만, 그동안 5개의 회사를 거치며 수많은 면접을 보았다. 첫 직장이었던 회사의 면접에서는 간절함을 패기 있게 전달하여 합격을 하기도 했고, 정말 가고 싶었던 회사의 면접에서 간절하게 포부를 밝히고 불합격을 받기도 했다. 그냥 속 편하게 휘뚜루마뚜루 본 회사의 면접에서는 팔자에도 없는 공채 1등을 하기도 했고, 잘하고 싶어서 고군분투하며 준비했던 회사의 면접에서는 정말 창피한 피드백들을 받기도 했다. 물론, 간절함이 핵심 변수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는 간절함과 절박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간절하거나 절박한 상태로 무언가에 임하는 것이 약자임을 자처하는 일은 아닐까 하는 의문에 도달한 것이다. 절박한 상태로 간절하게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은 역으로 생각하면 그 무언가가 자신에게 부재함을 증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PD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울먹이던 3년 전의 나는 나에게 여유가 부재함을 증명했을 것이다. 이직을 너무너무하고 싶다고 호소하던 작년의 나도, 성숙한 직장 생활 대신 탈출의 욕구만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줬을 것이다. 간절함은 부재를 증명하고, 간절함을 절박하게 호소하는 순간 개인은 약자가 된다.


생각의 흐름이 여기까지 도달한 이후로 나는 간절하거나 절박해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약자이고 싶지 않았다. 나의 간절함과 절박함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들키고 싶지 않았다. 마음이 아프지만, 사람들은 이미 그 자체로 충분한 사람을 원하지 무언가가 부재한 사람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행히 작년의 나는 3번의 면접 끝에 간절하게 바라고, 절박하게 준비했던 이직에 성공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기회를 얻어야 하는 순간을 맞이 할 때, 절대 간절한 티를 내지 말라고 조언하는 사람이 되었다. 간절함과 절박함을 뒤로 숨기고, 이 길이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듯 연기하며 편안하게 웃으라고 말하게 되었다. 그런 말을 건넬 때마다 조금은 각박하고 많이 슬프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나는 간절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겠노라고, 절박한 사람을 만나면 이야기를 들어보겠노라고 다짐한다. 간절함과 절박함이 이끄는 곳에 꿈이 있다는 낭만을 조금 더 오래 믿고 싶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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