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끝나면,

아직은 암담한 이 시기가 끝나면

by 이다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해지기 전까지 제일 많이 읊조리던 말은 "지겨워"였다. 지겹고, 지루하고, 짜증 난다고 하루에도 스무 번은 넘게 생각했고 입 밖으로 말들이 튀어나온 적도 많다. 친한 친구들과의 만남에 나갈 마음의 여유도 없었고, 인간관계 전반에 회의를 느끼며 집에 숨어 있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지난 한 달간 코로나 19가 괴물처럼 일상생활 전반을 서서히 집어삼키는 걸 보면서, 스스로가 지겨워했던 모든 순간들이 다시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회사는 감사하게도 재택근무에 돌입했다. 매일 왕복 4시간씩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던 통근러에게는 무척 기쁜 소식이었다. 그러나 재택근무 4일 차에 돌입하는 오늘의 마음은 회사에 너무 가고 싶을 뿐이다. 혼자 업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머리를 모아서 고민해서 전략을 도출해내는 업무 특성 때문에, 재택에서 나 홀로 할 수 있는 업무는 너무 제한적이다. 언제나 기꺼이 함께 이야기를 나눠주던 팀 동료들이 그립다. 젖과 꿀이 흐르는 회사 라운지도 그립다. 월화수목금 빡세게 출퇴근을 반복하고서야 만나게 되는 나의 황금 같은 주말도 그립다.


코로나가 끝나면, 모두에게 암담한 이 시기가 끝나면 하고 싶은 일들이 몇 가지 있다. 기차를 타고 전라도 구례에 가고 싶다.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작은 마을, 봄이면 천지에 예쁜 꽃이 피는 작은 마을에서 꽃놀이를 하고 싶다. 자전거를 잘 타는 친구와 가서 자전거로 마을을 한 바퀴 휙 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국내 여행이 주는 기쁨은 새로움 속의 익숙함이 아닐까 싶다. 낯선 일상의 공간에서 내게 익숙한 문명을 즐기는 일.


제주도도 가고 싶다. 서귀포 남단의 바닷가에 엄마와 항상 가는 호텔에서 아무 생각 없이 바다 보고, 꽃 보고, 커피 마시며 나른한 2박 3일을 보내고 싶다. 못 읽은 책들을 챙겨가서 한 장, 한 장 넘기며 여행 기분을 내면 좋겠다. 작년처럼 유채꽃밭을 찾아다니며, 시골길을 헤매다가 우연히 마을 축제를 만나도 기쁠 것 같다. 제주도 밤바다에 돗자리를 펴고 오래 앉아 있는 일은 엄마와의 의식이 되었다.


그리고 종내에는 스페인 발렌시아 행 여행 티켓을 끊고 싶다. 유명한 관광 도시들을 마다하고, 지중해를 앞에 두고 있는 오렌지와 축구의 도시로 갈 것이다. 그곳에서 용기를 내 삶의 방향을 틀고 새로운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갈 것이다. 친구와 반갑게 빠에야를 먹고, 오래오래 도시를 걷고, 물 먹듯이 와인을 마시면서 영영 일상으로 복귀하지 않을 것 같은 열흘 남짓을 보내고 싶다.


가깝고도 먼 여행지들을 머릿속으로 헤아리다가도, 코로나가 끝나면 하고 싶은 일들은 여행에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고 싶은 일과 가고 싶은 곳이 모두 지난날 내가 지겹다고 염불을 외우던 그 일상 속에 있다. 아침에 조금 일찍 출근을 해서 유산소 운동을 하고, 회사 라운지에서 아침을 먹는 일. 점심 메뉴를 고민하며, 맛있는 점심을 먹겠다고 걸어서 코엑스까지 팀원들과 다녀오는 일. 집중력이 떨어지는 오후 4-5시쯤 삼삼오오 모여드는 동료들과 일-삶의 경계가 모호한 수다를 떠는 일. 퇴근 후에는 전 직장 동기를 만나 마라탕을 먹으며 수다를 한참 떨다 지하철을 타는 일. 엄마와 금요일 심야 영화를 보고, 가고 싶은 맛집을 예약해서 다녀오는 그냥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 말이다.


인간이 이렇게 간사하다. 혼자 재택근무한다고 앉아서 쓰는 글이 '나 돌아갈래'하고 징징대는 내용이라니 말이다. 최전방에서 이 비극을 몸으로 막아내고 있는 분들과 숨죽이고 스스로를 격리시킨 모두에게 소중한 일상이 다시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막연하게 궁금해진다. 나중에 우리는 이 시국을 어떤 기억으로 돌아볼까. 각 세대와 사회는 이 시국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역사에는 어떤 문장으로, 어떤 집단 기억으로 남아 사회를 어디로 데려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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