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한국과 다를 바 없을수도 있다
40을 넘어서니, 인생이 조금씩 보인다.
이제는 세상일이 항상 내 맘대로 되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어려운 일이 나만 비켜가길 바라는 게 얼마나 이기적이고 철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임을 이제는 안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도 주변의 도움이나 운이 없이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 또한 알기에, 잘났다고 으스댈 필요도 없거니와, 지금 못 나간다고 실패했다고 단정짓는 어리석은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
인생,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계획하지 않는다. 특히나, 2-3년에 한 번씩 나라를 옮겨 다니는 일을 하는 남편과 사는 나로서는 계획이란 게 얼마나 무모한 지 알고 있다. 세상엔 변수가 셀 수 없이 많다는 것과 결국 내 의지와는 별개로 그 수많은 변수들이 내 인생을 이리 저리 끌고 당기고 움직이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우리는 지금 다른 나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좁은 공간에서 오는 피로감과 어딜 가든 넘쳐나는 사람들로 인해 여유를 느낄 수 없던 우리 가족은 넓고 광활한 나라로의 도피를 항시 꿈꿔왔다.
하지만 막상 옮길 수 있는 나라를 찾다보니, 홍콩보다 좋은 곳을 쉽게 찾기 어려웠다. 지난 1년 6개월 동안의 불평이 감사함으로 변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0분 남짓이었다. 하.. 헛웃음이 났다.
지옥이 결국엔 천국이구나.
변한 건 없었다.
이토록 단순한 진리에서 아직도 헤매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순간 어이가 없었다.
10분 만에 그렇게 사는 나라가 바뀌었다. 애증의 홍콩은 애정의 홍콩으로, 복잡한 센트럴은 매력 넘치는 공간으로, 많은 인파는 지루할 틈 없는 도시로 변했다.
생각해보니, 지금껏 살아온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홍콩이 모든 면에서 제일 좋은 조건을 많이 갖춘 곳이다. 흔히 성취할 목표나 상실감이 없는 삶이 제일 힘들다고 한다. 어쩌면 홍콩이 내게 준 편리함은 감사함보다는 불평과 당연함으로 다가왔던 게 아닐까? 막상 이 안락함이 끝날 것이라 생각하니, 그제서야 제대로 보였다니...
그렇게 다시 새로운 곳으로 이주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