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 나라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전화벨이 울린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너무 떨린다. 어쩌지?
용기를 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솰라솰라솰라~~~~~~~ "
아, 도저히 못 알아듣겠다.
듣기 평가도 이렇게 집중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
"could you send me a message?"
결국 메시지로 내용을 보내달라는 말을 간신히 내뱉고는 전화를 끊는다.
온몸의 긴장이 탁~하고 한 순간에 풀려버린다.
캐리비안의 섬나라에 온지, 한 달 가량이 지나고 있다. 달콤한 신혼을 꿈꾸며 왔건만, 인생은 역시나 내맘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결혼 직전까지 일하던 나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계절마다 전국 곳곳을 누비며, 제철 음식과 와인을 즐기고, 수다로 인생을 살던 타입이었다.
지금 나는 갇혀 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어둡고 왠지 스산한 거실을 벗어나 가장 볕이 잘 드는 침대방 위에 올라사 노트북으로 하루를 버틴다. 모든 게 그립고 또 그립기만 하다. 위험해서 밖을 혼자 돌아다니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곳이 너무 낯설게만 느껴진다.
무엇보다 절망적인 사실은 한국에 도저히 쉽게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친구들도 그립고 가족도 그립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분노와 긴장과 슬픔을 그저 눈물로 떼우는 것 뿐이다. TV를 켜자 영어가 들린다. 안 그래도 낯선 환경에 영어까지 들리자 미쳐버릴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도 TV를 보지 않는다.
유튜브를 들어갔다. 지금처럼 개인 유튜버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2013년이었다. 뭘 봐야할 지 모르겠다. 당장 생각나는 건 지금 생각해도 웃기지.
그렇게 내가 검색한 세 글자 <영심이>
어릴 때 봤던 추억이 그리웠던 건지, 안정을 느끼고 싶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추억을 골라냈다. 영심이를 보니 어린 시절 집에서 언니와 추운 겨울날 따뜻한 이불 덮어두고는 귤을 얼마나 먹었는지 이불 위에는 수북히 쌓인 귤껍질이 쌓여있고 손에는 노랗게 귤껍질의 잔해와 향이 잔득 묻어나던 그 시절 기억이 났다. 결국 다시 눈물이 난다.
우리가 살 집을 구하기 전에 임시 숙소로 지내게 된 곳은 전임자가 살던 곳인데 여기 정말 스산하다. 바다 전망의 테라스 구조인데, 태양을 가득 담아 반짝이는 바다 전망을 자랑하는 전망과 달리 집 안은 캄캄하다. 게다가 부실공사 탓인지 온 종일 습해 바닥은 항상 물로 흥건하게 젖어 있다.
한 번은 한국에서 이민 가방에 알뜰살뜰 챙겨갔던 돌김을 바삭하게 구워 식탁에 올려 두고는 1-2분 뒤에 밥을 가져오자 그 사이 김들이 한장으로 다 붙어버리기도 했다. 그 정도의 습기였으니 그 집에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보면 푹푹한 사우나에서 지내는 찝찝함이었다.
임시 숙소였던 그 집을 떠나고, 일년 후, 일본 경찰로 파견 온 부부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집은 여느 평범한 것들과 다를 바 없었으며, 그 부부는 무엇보다 그 집을 너무 사랑했다. 그렇게 점심도 먹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거실을 둘러보는데, 어딘가 익숙한 하지만 스산한 추억이 스쳐지났다. 그렇다. 이 집이 내가 그토록 힘들었던 그 시절 그 집이었다.
어쩌면 천국과 지옥은 같은 장소에 공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옥같았던 그 집을 떠나, 우린 밝고 따뜻한 집으로 이사를 했고, 나는 또 다시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인생은 사실 지금 당장의 기쁨보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사는 낙이 더 큰 것 같다. 그때도 지금도 그러하다. 마음에 드는 집으로 이사를 오니, 모든 것들이 달콤하게 느껴진다.
이사온 아파트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시종일관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모닝, 모닝"
이것이 이들의 아침 인사다. "굿모닝도 아니고 모닝 모닝이다. "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인사하는 문화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하다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모닝 모닝" 하고 있다.
그렇게 몇 번의 "모닝 모닝"을 건내다 좀 편해졌는지, 그 직원에게 어디 가냐고 물었다.
그러자 직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암 고노 당탕
"암 고도 당탕?" 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방법이 없었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찾고자 수일동안 머릿속으로 되뇌였다. 이 나라,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억양은 참으로 독특했다. 미국인조차도 이들의 영어를 알아듣기 어렵다 할 정도니 영어를 못하는 나에겐 아랍어처럼 들린다 해도 무방했다.
사실 이들의 독특한 발음과 억양을 이해하려면 역사를 먼저 이해해야 했다. 원주민들이 살던 섬나라를 영국이 식민 지배를 하면서 인도 문화까지 유입되며 독특한 발음이 형성된 것이었다. 정말이지, 그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영국인과 인도인 그리고 본래 원주민의 환영이 섞여 아주 환장할 노릇이었다.
매일같이 주문처럼 '암 고노 당탕'을 중얼거리던 중, 드디어 섬광처럼 나에게 계시가 내렸다.
I'm going to downtown(아임 고잉 투 다운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