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계약직으로 일한다는 건

1년을 제일 빠르게 보내는 것이었다

by 비비안 정

홍콩의 겨울, 없던 애정과 자비를 베풀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다음날 하이킹을 떠날 생각에 들떠 라마섬에 있는 맛집을 신나게 검색하고는 소풍 떠나는 초등학생마냥 들뜬 마음으로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입술 주변이 근질근질하다. 세상에, 수포가 올라왔다. 머리는 어질어질 목은 거대한 편도가 밤새 자리잡아 압박감이 상당하다.


'아, 나 하이킹 가야하는데'


난 이 꼴로도 갈 생각을 하고 있다. 때마침 카톡이 울린다. 같이 가기로 한 일행이다.

밤새 앓았다며 오늘 가긴 힘들겠다는 연락이다. 이 정도면 하늘이 판을 깔아주는 셈이다.


무슨 판? 가지 말라는 판.


왜? 갑자기? 나 아픈거지? 생각해보니 모든 게 일요일에 치뤄야 할 일년치 계약 떄문인 것 같다. 무의식 중에 하기 싫다는 자아와 그래도 해야만 한다는 자아가 한바탕 푸닥거리를 치르는 중인가 보다.


아. 그래도 해야지? 별 수 있나.


결혼과 동시에 나는 백수란 신분이 되었다. 그 신분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사실 10년이 넘는 공백을 메꿀만한 노력도 뛰어난 기술도 없었기에 백수를 탈출하는 건 불가능해보였다.


인생은 불가능의 연속이 만들어 낸 가능성에 대한 희망일까? 결국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과 주변 인물들의 협조와 나의 노력이 나에게 일이란 걸 주었다. 그렇게 나는 팔자에도 없던 선생님이 되었다.


처음 교원 자격증을 따고 바로 어려운 시험에 통과했던 날의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첫 수업을 준비하던 설레임과 첫 수업을 마치고 나서 느낀 희열과 성취감은 세상을 컬러풀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채웠다. 그런 기쁨도 잠시, 6개월이 지나자 계약 기간이 끝나고 다시 지원을 해야 했다. 그나마 이번엔 1년 계약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빠른 1년을 보내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

'

바로 회사에 1년 계약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도 귀찮아서 어쩔 수 없이 가는 것이 아닌 정말로 원하는 곳에 1년 짜리 계약직으로 일한다는 건 정말이지 당연한 일상을 몇 번 보내고 나니 사라지는 것과 같았다.


나름 그곳에서 인정받아 상도 받고 업무도 익숙해졌지만, 1년 뒤 나의 상황은 그저 지원자에 불과했다. 시험 준비도 시강도 면접도 별 걱정은 없었다. 어쩌면 작년에 받았던 상이 나에겐 독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한참 일상도 일도 업무도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과연 내가 이 일이 맞을까 스스로에게 되묻던 시절, 쟁쟁한 선생님들을 제치고 상도 받았다.


'아, 내가 이렇게 잘 하고 있었구나. 정말 대단하다'


스스로가 어찌나 대견한지 무던히 노력해서 얻은 결실이 무척이나 값지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자존감이 회복되었지만 자존심도 함께 성장했던 것 같다. 내심 이 정도 상도 줬으면 시험 없이 그냥 통과시켜줘야하는 거 아닌가 싶은 거저 먹으려는 심보도 생겼다. 욕심이 나에게 화살로 돌아와 꽃혔다.


어쩌면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도 기회를 못 만나서 고군분투하고 있을텐데 나는 고작 3년의 경력으로 뭘 우쭐댄다는건지 웃음이 나온다.


"올라갈수록 겸손해지자"


책임질 일이 많아질수록 가진 게 많아질수록 무거워진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떠올랐다.

내가 중요한 사람이고 더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면 스스로 겸손해져야지 나처럼 나 잘났어요. 나 잘해요, 떠들어대며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다니면 결국 댕강 모가지가 부러지는 법이었다.


입술 수포가 그 모가지였나보다. 인생사 지옥도 천국도 다 마음먹기 나름이라는데 내가 스스로 지옥길을 자처했었구나. 1년에 한번씩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적당한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큰 배움인데 그걸 깨닫지 못해구나.


이 기회 또한 감사하게 여기고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니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이렇게 나이 마흔에도 나는 아직 어린아이같다.


나는 언제쯤 철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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