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의 시절 인연

누구든 나를 보러 찾아와 주면 인연이네

by 비비안 정


홍콩은 5번째 나라다.


그동안 나라를 옮겨 다니며 많은 손님들이 나를 찾았다.


캐리비안에 살 때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너무 멀었고 또 멀었다.

그리고 나는 몹시 외로웠다.

그 당시 누구든 나를 찾아왔다면

나는 정성을 다해

의식주를 제공했을 것이다.


인생이란 그러하다.

내가 필요할 때는

주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아무리 오라고 외쳐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던 캐리비안을 떠나

산타의 나라 오로라의 나라

핀란드로 발령이 나자


비행기도 뜨기 전에

연락이 쇄도했다.


아직 나도 가지 않은

핀란드에 놀러 가도 되겠냐고


아니 나도 안 간 나라에 오겠다는데

무슨 수로 말리겠나.




시댁 식구와 친정 식구들이 그렇게 동시에

같은 집에서 모였고

결론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아무도 오고 가지 않는

섬나라에서

너무 오래 지나다 보니

없던 인류애가 생기며

다 괜찮을 것만 같았다.


큰 착각이었다.


나는 한국인이고

친정 식구도

시댁 식구들도

모두 한국인이었다.


그렇게 한국인들끼리의

다양한 조합 중

'사돈'이라는

제일 불편한 만남을

2주 가까이 진행했으니

이건 불 보듯 뻔한 결말이었다.


결국 그 이후로

'사돈'

행사는 자연스레 사라졌다.


그 이후로도 셀 수 없이

많은 지인들이 나를 찾아왔고


나는 그들을 맞이했다.


대부분 비싼 물가를 감안하여

우리 집에서 숙식을 제공했다.


그냥 손님을 잠시 초대하는 것과

숙식을 제공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숙식을 제공한다는 것은

우리와 일상을 보낸다는 것이고

그들은 우리 집구석구석을

볼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구석구석

청소를 해야 했다.


청소로 몸이 부서질 즈음

손님들이 도착했다.


살짝 부서진 몸을 이끌고

나에겐 매일같이

오고 가는 장소를


특별한 관광지라 소개하며

부지런히 다닌다.


아침도 준비한다. 가끔씩은 저녁도 집에서 함께 한다.

그렇게 손님들이 떠나갈 무렵

나는 재가 된다.


아직 하늘로 날아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다.


손님들이 떠나고 나면

만신창이가 된 몸과 더불어

훅~하고 외로움이 들어와 버린다.


왁자지껄 시끄러웠던

집안 곳곳에 정적이 가득하다.


그 일상에 적응하는데 다시금 수일이 소요된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떠돌다

홍콩까지 왔다.


홍콩의 우리 집은

작다. 아주 작다.


이 작은 집에도

손님이 찾아왔다.


나는 또 이 작은 집에

손님들을 기어이 재웠다.


아이들은 침대 하나 간신히 들어간

본인 방을 손님들에게 내어주고

나와 셋이 잤다.


척추에 무리가 갔다.


자면서도 홍콩에서는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다.

그 걱정은 당연 병원비였다.


자면서도 병원비 걱정을 하다 일어나기를 두세 번 하고 나면

손님들이 떠났다.


다시 재가 되어 날아나기 직전이 된 나는

생각한다.


' 아, 이제 손님은 안 불러야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다.


다시 지인들과 통화하며 나도 모르게 내뱉어버린다'

"홍콩 겨울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 아무것도 안 해도 행복하다니까? "

" 물론 홍콩 호텔 비싸지, 뭐 어때, 우리 집에서 잠만 자면 되지"


그렇게 작년 겨울

일주일에 한 번씩 손님이

7차례 나를 찾았다.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나는 7일을 앓아누웠다.


마지막에 온 손님은

신혼여행에서 만난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어느덧 사회인이 되었고

내가 가는 곳마다 나를 찾았다.


나를 찾아올 무렵 그 친구는

결혼도 오래 다니던 회사도

갑작스레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이유도 없었다.

그냥 나에게 오라고 했다.


홍콩에서 마주한 동생은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고달픔과 힘듦을

견디다 못해 무너진 모습이었다.


그 아픔이 느껴져

보는 순간

눈물이 나는 걸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했다.


집에 오자마자 짐을 던지고는

예쁘게 꾸며줬다.


화장도 해 주고

머리도 해 주고

옷도 코디해 주고


그렇게 예쁘게 꾸몄다.


겉모습이 예뻐지면

마음도 그에 맞게 변화한다는 걸 믿는다.


그렇게 나와 지내는 내내

나는 동생을 한껏

꾸며줬다.


나를 떠날 무렵

다시금 생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헤어진 남자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을 만나

몇 달 후 바로 결혼했다.


그 친구를 보내고 나는 7일을 아팠다.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다 퍼준 느낌이었다.


그 힘든 시기에 나를 찾아와 준 건 인연 때문이었으리라.

어쩌면 내가 그 친구를 살릴 인연 때문이었으리라.


그렇게 그 친구가 다녀간 지 일 년이 지났다.

어떤 손님들보다 마음이 좋다.


아무리 보고 싶어도

아무리 오라고 해도

이런저런 상황으로

끝내 못 오는 손님들이 있다.


그리고 그냥 한마디에도

부지런히 짐을 싸서 찾는 손님들이 있다.


해외에 사는 나를

찾아오는 모든 이들이

귀한 인연임을 알기에


어쩌면 나는 그 모든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얘기한다.


어려운 이끌어야 하는 관계는 인연이 아니라고.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나만 연락하는 사이.

내가 안 하면 끊기는 사이.

하지만 오래된 인연이라 끊어내기엔

아쉬움이 남는 사이.


지난 주말 핀란드에 사는 친구가 연락이 왔다.

나를 보러 여름에 잠깐이라도

홍콩에 들리겠다는

소식을 전하며

7월 스케줄을 미리 물어본다.


아..

관계란 이런 것이다.

관계란 일방이 아닌 쌍방의 꾸준한 관심과 표현이다.


내심 고맙고 반가운 친구의 방문 소식이다.


네 친구와의

관계는 항상 안정되고 편안하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시의적절하게 안부를 물어보거나

소식을 전해준다


관계란 가끔은

일방적으로 나만 다가간다는 생각이 들 때,

참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요즘 깨닫는다.


한 사람과의 시절 인연이 다 할 무렵

다른 사람과의 시절 인연이 짙어지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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