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한 달 전, 우리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오래되어서 약 30일간의 공사를 하게 되었다는 공고를 보았다. 그때부터 나의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에 복잡했다. ‘어쩌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하나 둘 미리 준비해야 할 일을 리스트 업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우리 집은 14층이다. 나는 그전에 일주일에 한 번 토요일마다 마트에서 장을 보았다. 지하 2층에 차를 파킹하고 집까지 오르려면 약 200계단을 올라야 한다. 쌀, 고기, 두유, 휴지, … 미리 사 올 수 있는 것, 무거운 것… 또 무얼 미리 사야 할까?
그렇게 준비의 시간은 흐르고 드디어 엘리베이터 공사 시작일이 되었다.
첫날, 현관문을 열고 나오니, 불이 꺼져 있는 엘리베이터 문이 보였다. 어색했다. 걸어서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건 쉬울 것 같았는데, 내려가기 시작해보니 일직선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뱅뱅 돌면서 내려가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기분도 몸도 별로였다. 자꾸 몇 층이지? 하며 층수가 쓰여있는 곳을 보게 되면서 말이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겼다. 가끔 인사를 하던 같은 라인의 사람들과 할 이야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서로 ‘힘드시죠? 괜찮아요?’ 하면서 말이다. 하하하
외부 일정을 소화하고 집으로 가던 중.. ‘아! 엘리베이터가 멈추었지?’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머... 운동 겸 가끔 걸어서 올라가기도 했는데, 어때?! 한 달 동안 운동한다고 생각하자…’ 그런 최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1층에 다다랐을 때, 불이 꺼진 엘리베이터를 보며, 진짜구나… 한 계단씩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올라가면서 4층을 지나 5층으로 발을 디딘 순간 파란색 의자 2개가 보였다. ‘아 쉬어가라고… 이런 세심함이…’ 엘리베이터를 공사하시는 분들이 항상 가지고 다니시는 의자로 보였다.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 이 의자들의 대단한 위력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나타나게 된다. 4-5층, 8-9층, 12-13층… 아 4층마다 놓여 있구나… 우리 집은 14층 그러니까, 파란색 의자의 쉼터를 3번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첫날은 기분 좋게 한 번에 집까지 슝~~~ 하지만,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선 순간, ‘헉헉…’ 가쁜 숨을 들이쉬며 정수기 물을 찾게 되었다. 내 몸이 이것밖에 되지 않았었나.!!!
“계단 오르기” 운동은 매우 유명한 것이고, 쉽고, 멀리 가지 않아도 되고, 준비물로 필요 없고, 하지만, 확실히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 만드는 운동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나도 계단 오르기 운동을 해볼까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는데, 항상 여러 가지 이유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곤 했다. 그 이유 중에는 구두를 신어서, 치마를 입고 있어서, 무거운 물건을 들고 있어서, 오늘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등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강제적으로 계단으로 밖에 집에 갈 수 없게 되자, 나는 알게 되었다. 이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데, 스스로 계단을 택하는 건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하루에 2번 이상 외출을 해야 하는 날이 생기면, 정말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한 번의 외출 후에 다시 나갈 수 있을까? 하하하 안 해보신 분은 말도 마라! 별것 아닌 이 문제를 얼마나 열심히 조직적으로 생각하고 시뮬레이션하는지를… 나도 내가 이런 사람이란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그중 가장 크게 깨달은 부분은 4층마다 놓여있는 파란색 의자에 대한 것이다.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호기롭게 한 번에 14층을 올랐는데, 그날이 왔다. 마트를 다녀오게 된… 무언가 짐을 들고 올라야 하는 순간이… 지하에서부터 오르면서 나는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대로 오르면 약 200계단… 1번을 쉰다면 몇 층에서 쉴까? 하하하 웃지 마라! 이건 굉장히 심각한 고민의 순간이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 순간인데, 손에 무거운 짐을 들고 어깨엔 가방을 메고, 드는 게 편할까? 메는 게 편할까? 오른쪽에 무거운 것? 왼쪽에 무거운 것? 참 여러 가지 생각을 골똘히 하게 된다.
4-5층에 있는 파란색 의자가 보일 때쯤, 낯익은 어르신들의 모습이 보였다. 항상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하던 같은 라인의 할머님들 두 분이 나란히 앉아 계셨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풀~~ 이네요.. 호호호…’ 그냥 호기롭게 지나쳤다. 나는 아직 그대들보다 젊다. 등 뒤로 느껴지는 그분들의 시선을 느끼면서… 사실은 후들후들 힘겨웠는데… 그러면서 다음 쉼터는 8-9층… 아! 거기까지만 가자.!!! 다음 쉼터의 의자에 짐을 내려놓고 크게 심호흡을 해본다. 이 의자의 소중함이란…. 이전엔 정말 몰랐다. 4층마다 의자를 놓아두는 것은 오랜 공사 경험에서 나온 데이터겠지.. 그리고 다시 힘을 모아 14층까지 올랐다. 집에 문을 열고 들어오니, 한결 쉬웠네. 중간에 한번 쉰 것이 이렇게 다를 수가! 지하 주차장에서부터 14층까지 200계단을 한 번에 오를 생각을 하면, 처음부터 힘이 빠진다. 하지만, 오늘은 어디에서 한번 쉴까? 아니 힘들면 2번 쉬면 되지.. 하면서 첫 번째 목표를 생각하면서 한 계단씩 오르면, 힘이 덜 든다. 아예 처음부터 14층, 200계단을 생각하지 말고 4층까지 가자… 생각하면, 힘들다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살아가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힘겨울 것 같은 목표를 만났을 때, 한 번에 다 이룰 것을 생각하면 어려워도 보이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드는데, 조금 만만한 중간의 목표를 생각한다면 조금 덜 어렵게 한 발자국씩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참, 계단을 오르면 이런 생각을 하다니, … 대단하다.
그렇게 시간은 하루하루 지나고, 드디어 새 엘리베이터 문이 생기고 불이 들어왔다. ‘시범 운행 중’ 이란다. 이 말은 곧 다시 엘리베이터가 다닌다는 말이다. 하하하 호호호 ㅋㅋㅋ 이렇게 좋을 수가! 하루 이틀 재 가동 날짜를 기다리는 내 맘.. 이렇게 기분 좋게 어떤 날을 기다린 적이 없는 것 같다. 연말이라 친구들과 송년회를 하고 약간 취한 상태로 귀가하던 어느 날… 정확히 엘리베이터 재가동하기 4일 전… 새벽 1시 넘어 한 칸씩 계단을 올랐다. 살짝 취한 상태라 쉽지는 않네. 발걸음이 무겁다. 아 늦은 시간이지. 조용히 올라야겠다. 자는 아가들도 있을 텐데… 다른 날에 비해 발끝에 조심을 담아 조용조용 천천히 계단을 올라 집에 왔다. 아! 다음 주에는 모임이 더 있는데… 어쩌지~~~ 아하! 다음 주에는 엘리베이터가 다니는구나..! 히히히 배실 배실 웃음이 배어 나왔다. 다행이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엘리베이터의 불빛을 보면서 환하게 웃으며 그날을 기다렸다.
아! 내일이다. 늦게까지 일정이 2개나 있었던 금요일 밤.. 힘겨운 몸으로 지하철에 올랐다. 살짝 졸리고 힘겨운 상태인데, 아들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엄마, 엘리베이터 다녀요.’ 기운 없는 몸에서 기분 좋음이 생겨나면서, ‘아들, 야식 사갈까?’ 기분 좋게 양손에 야식과 큰 콜라를 들고 나를 반기는 엘리베이터를 보기 위해 집으로 발걸음을 했다. 금색의 번쩍임과 자동 오픈 장치, 벌레 박멸, 높아진 천장.. 등등 역시 새것은 좋다.. 하지만, 그동안 이 아이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았는데, 역시 없어져 봐야 안다는 인간의 아둔함이란… 좋다.. 참 좋다…
아직은 며칠이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나가기 전, 엘리베이터 다니지? 참 좋네! 이런 생각이 든다. 한 가지 의문은 계단운동을 할 것인가이다. 솔직히 약 한 달 동안 내 다리가 튼튼해진 것은 사실이다. 확실히 계단 오르기는 운동이 된다. 몸에 좋다. 그동안 엘리베이터가 다녀도 나는 계단 운동을 할 거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것을 과연 실천할 것 인지는 시간이 흘러봐야 알 것 같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에서 내 의지로 움직일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2019/12/25 비비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