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마케팅 신(scene)의 변화와 커뮤니티, 팬덤의 재조명
* 22. 9. 21 대홍기획 블로그에 게재한 제 글을 그대로 전재한 글입니다.
마케팅 신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개념과 트렌드가 떠오르고 또 진다. 한동안 플랫폼, 데이터, 개인화, AI 등의 키워드가 마케팅 신을 지배했고 최근에는 열광 혹은 논란의 키워드인 메타버스, 웹 3.0 기반의 블록체인, NFT가 단연 화두다. 그리고 이와 함께 자주 언급되는 2개의 키워드가 있으니 바로 ‘커뮤니티’와 ‘팬덤’이다. 낯선 단어는 아니다. 다만, 근래 몇 년간 화두였던 키워드 대비 어쩌면 매우 아날로그적이고 인간적인 개념이라는 점이 오히려 새삼스럽다. 그러면 왜 하필 지금 커뮤니티와 팬덤일까? 새로운 개념이 아님에도 이토록 빠르게 변화하는 마케팅 신에서 다시금 언급되는 건 지금까지와 다른 배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리를 지어 사는 것은 인간의 본성으로 원래 ‘커뮤니티’라는 단어는 지역, 연령 등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동질적 성격의 집단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각기 다양한 커뮤니티에 소속되어 다양한 역할을 요구받고 또한 수행하며 살아간다. 이는 통상 인구통계학적(Demographic), 사회경제적 수준(Social Economic Status) 등을 기준으로 소비자를 분석하는 근거이기도 했다. 그러나 본 고에서 주목하는 것은 디지털 기술 기반으로 공통의 생각과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이 의도적, 자발적으로 모인 집단으로서의 커뮤니티다.
한편 ‘팬덤’이라는 단어는 90년대 대중문화 폭발기에 등장해 10~20대 젊은 여성팬의 연상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익숙하게 사용해온 개념이다. 팬덤은 공통의 대상에 대한 강력한 애착, 팬심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집단으로서 이것 역시 일종의 커뮤니티다. 팬덤 문화는 최근 20여 년 간 디지털 커뮤니티와 SNS의 등장으로 만개했다. 팬덤은 곧 커뮤니티이며,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와 콘텐츠를 교환하고 소통함으로써 팬덤은 그 결속을 더욱 강화해 간다. 따라서 커뮤니티와 팬덤은 유사한 개념이기도 하고 인과적 개념이기도 하다. 커뮤니티와 팬덤을 함께 논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흔히 연예인 팬덤을 떠올리기 쉽지만, 최근 마케팅 신에서 주목하는 것은 팬덤의 개념을 브랜드에 이식한 ‘브랜드 팬덤’이다. 더불어 브랜드 팬덤을 인큐베이팅하기 위한 기반으로서 브랜드 커뮤니티가 거론된다. 한참 데이터 마케팅으로 불붙었던 마케팅 신의 관심이 브랜드 커뮤니티와 브랜드 팬덤의 조성으로 옮겨가는 이유는 단적으로 말해 ‘잘 안 팔리기 때문’이다. 그 이면으로 들어가 보면 복잡한 사회경제적, 심리적 요인이 도사리고 있는데, 이는 3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모든 브랜드는 지속성장을 꿈꾸지만 이는 영원하고도 요원한 꿈이 되어간다. 데이터마케팅은 효율 개선과 최적화를 통해 추가적인 성장분과 수익을 가져왔지만 지속적인 성장이나 안정적 수요까지 확보해주지는 못한다. 할인쿠폰을 뿌리고 고객이 올만한 길목에 링크를 배치하는 것만으로는 이미 광고의 생리를 잘 알아버린 고객을 유입하기에 역부족이다. 또한 만성적인 저성장 시대, 경제위기와 코로나 국면 타개를 위해 단행했던 금융완화로 초래된 인플레이션과 이를 잡기 위한 고금리 정책이 이어지면서 소비와 투자는 더더욱 위축될 전망이다. 최근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잘 나가던 스타트업들의 투자 유치 실패와 도산 소식, 유망했던 업체의 매각 소식은 말 그대로 ‘Winter is Coming’, 겨울이 오고 있다는 신호탄이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흔들리지 않는 성장 및 지지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쿠키리스(Cookieless) 시대에도 항상 내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진짜 고객 확보가 긴요한 시점인 것이다.
코로나 여파 이후에도 한일 양국에서 성장과 약진을 거듭한 브랜드가 있다. 생활용품 균일가숍 ‘다이소’다. 일본에서는 명품 거리로 유명한 긴자 한복판에 다이소 플래그십 스토어가 들어섰다. 이는 일본인 사이에서도 이례적이고 상징적인 사건으로 한동안 회자됐다. 한편 한국 다이소는 2020년에 이어 2021년에도 매출액 및 영업이익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는 어떤 의미일까?
<프로세스 이코노미>의 저자 오바라 가즈히로가 말하듯 “좋은 제품, 서비스는 누구나 만들 수 있으며, 이제 완성품만으로 차별성을 확보하기는 어려워”졌다. 재화는 넘쳐나고 불편한 것이 없다. 품질이 상향 평준화되니 어떤 것을 사도 차이가 크지 않다. 이미 충분히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비의 양극화가 나타난다. 차별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카테고리라면 필요에 의해 사용하는 제품은 핵심 기능만 충족하면 그만이다. 선택지는 다양하고 차별성은 체감하기 어려우니 로열티는 약화되고 고객은 작은 이유로 쉽게 움직인다.
대신 필요 이외의 이유가 있는 제품은 가장 비싸고 좋은 것을 산다. 그래서 어중간한 것은 도태되고 매스티지의 대표격이었던 명품 브랜드 세컨드 라인이 정리되는 추세가 나타난다. 결국 이성과 논리에 근거해 깐깐하게 따지고 가격과 프로모션에 쉽게 움직이는 소비자가 아닌, 사랑하는 마음으로 너그럽게 보아주는 팬과 같은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브랜드의 과제가 된다.
최근 브랜드 팝업이 유행처럼 번지는 현상은 상품만이 아니라 긍정적이고 특별한 브랜드 경험의 제공이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런데 경험이 중시되는 맥락은 이미 물질적 필요는 충족됐다는 전제 하에 성립한다. 모든 것이 이미 있기에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혁신적, 획기적 차이가 아니라면 물질적 충족이나 기능적 차이를 강조하는 것은 와닿지 않는다. 따라서 물질 이상의 것, 필요 이상의 ‘의미’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의미 있는 소비란 대의나 공리가 아니다. 바로 ‘나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어야 한다. 좋아하는 아이돌을 위해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소비하고 헌신하는 팬덤처럼 팬심을 가진 진짜 고객은 좋아하는 브랜드를 선택하기 위해 불편을 감수하고 가격차까지도 수용한다. 반면 고객의 ‘마음’을 얻어 특별한 의미가 있는 브랜드가 되지 못한다면? 결국 제 살 깎아먹는 ‘가격’으로 경쟁해야 한다.
그러므로 지속성장을 원하는 브랜드는 고객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당장의 이득에 흔들리지 않을 안정적인 지지 기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늘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으며,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이 ‘그저 끌리는 마음’을 이기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 팬덤은 곧 브랜드의 존재 이유가 되고 팬덤의 구심점과 결속을 강화하는 수단으로써 브랜드 커뮤니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될 것이다. 소비자가 떠나도 팬은 남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기반 비즈니스의 태동 ② 커뮤니티와 팬덤, 그리고 NFT]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