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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온전한 모습을 위해

개에 관한 단상들

by 황은화

개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가장 크게 깨달은 게 개의 코, 개코의 중요성이다.

개의 코가 얼마나 중요하고 개에게 핵심적인 기관인지 연구자들이 딱딱 방점을 찍어준다.

개는 삶을 코로 읽는다! 나로선 놀라운 깨달음이다. 그들이 그렇게까지 냄새에 의존하며 사는 줄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코로 들어온 냄새 입자를 분석해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상상한다는 걸 몰랐다.

이전에 어떤 존재가 지나갔는지, 이곳은 어떤 곳인지, 어떤 개와 짐승이 주변에 있는지, 위험한지 , 안전한지 등등... 온갖 삶의 정보를 사람이 인터넷 서칭하듯이 개는 냄새를 통해 파악하다니!!!


그래서 그렇게 코를 땅에 박고 바빴던 거였다.


그런 맥락에서 나의 개 '땡순이'와 기타 나의 지난 개들에게 뒤늦은 사과를 전한다.

나는 어려서부터 개들에게 장난 하나를 꼭 친 것이 반들반들 윤기나는 코를 손가락으로 튕겨서 따콤 때리는 장난이었다. 쉴 새 없이 하는 괴롭힘은 절대 아니고 가끔 개들이 졸거나 자고 있을 때 톡 쳐서 장난스럽게 깨우곤 했다.

그러면 녀석들은 코를 킁킁거리거나 재채기 비슷한 걸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던 거 같다.

이 자리를 빌어서 진심으로 사과한다.


"땡순아, 미안해! 아무 생각없이 네 신성한 코를 괴롭히다니 내가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 같다. 미안!!"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면, 너, 내 중요한 부위부터 머리로 들이박는 건 아니겠지....


*

산책의 의미에 대해서도 또 다른 지식 하나가 생겼다.

이것도 꽤 의미심장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을 내 사람들은 자신의 개와 산책을 한다. 꼭 필요한 일이며 개와 주인 모두에게 행복한 일이다.


이 신성한 동행을 매일 쉬지 않고 하는 다정하고 성실한 사람도 있고, 이틀, 삼일 주간으로 하는 사람도 있겠고, 주말에 몰빵해서 개와 함께하는 사람도 있겠다. 정다운 교감의 시간, 개들이 간절히 기다리는 시간들이다.


그런데 개줄을 잡고 산책하는 것만으로는 개에게 온전한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며, 개의 본성을 온전히 아는 것도 아니란다. 그건 그저 부분적인 허용에 불과하고 자신의 개에 대해서도 유감스럽지만 일부 모습만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개줄을 풀어야 한다.

개의 진짜 모습을 온전히 보려면 개의 줄을 풀어야 한다. 맘 놓고 자기 마음대로 뛰어놀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때 진짜 개의 모습이 펼쳐진다고! 시간도 10분 20분이 아닌, 충분히 긴 시간일 수록 좋다.


도시에선 가당치 않은 일이다. 예의 없고 무책임한 행위애 속한다. 얼마 전까지도 이 때문에 뉴스에 보도되는 사건 사고도 많았다. 그래서 도시에는 반드시 반려견 놀이터가 필요하다.

(갑자기 반려견 놀이터 홍보가 되는 듯!)


근사한 애견카페도 있고, 애견호텔도 있고, 애견유치원도 있고 좋은 것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제일 중요한 건 그들이 목줄 없이 뛰어노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거다.


일단 현실적으로 실천은 힘들겠지만 알고 있길 바란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자신의 개에게 온전한 자유를 주려고 노력했으면 한다.

한 달에 한 번이든, 세 달에 한 번이든, 시간 여유가 생긴 어떤 날이든

개를 위해 좋은 공간을 선물해 주기를 바래본다. 그래야 개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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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들>

외국 저자가 쓴 개에 관한 책들 속에서는 반려견 놀이터보다는 개산책 공원이란 공간이 더 자주 언급된다.

아마도 다른 나라에는 반려견 놀이터보다 개 산책이 보편화된 공원들이 많나 보다.

그리고 그 공원은 개를 풀어놓는 것이 용인되는 공간인 거 같다. 우리로서는 너무나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경준 사진 작가의 뉴욕 센트럴파크 풍경 사진

(뉴욕을 배경으로 활동하는 이경준 작가의 사진을 좋아하는데 그의 전시 사진 중 좋아하는 사진이 눈 내린 센트럴파크를 주인과 개가 뛰노는 장면을 부감으로 찍은 이미지이다. 개와 사람 모두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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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한 스푼 더 얹으면,

서울시 뿐만 아니라 각 구마다 반려견 놀이터를 짓고 있고, 신도시 주변으로 사설 반려견 놀이터들이 생겨나고 있다. 좋은 일이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반려견 놀이터는 10년 전에 정도에 만들어졌는데 그간 시설이 보강되고 보다 쾌적한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아쉬운 건 공간의 크기이다.


10년 전이야 반려견 인구가 그닥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천 오백만 명에 육박하는 수가 됐다. 세월이 흐른 만큼 반려견 놀이터의 공간도 두 배 이상 커져야 하겠다. 하지만 공간은 도무지 커지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


주말에 반려견 놀이터의 오후 풍경은 개시장을 방불케 한다.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개와 사람이 모이니 그야말로 카오스 그 잡채다. 그런 고로 사고도 빈번이 발생하고 있다.


반려견 놀이터 공간이 확대되기를, 더 넓은 공간인 개산책 공원이 만들어지길 바래본다.


왜냐? 목줄 없이 자신의 본 모습과 본 상태(감정)를 맘껏 보여주는 해피! 호두! 감자! 너희들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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